‘행복의 나라’ 한대수가 담은 세상 “고통은 살아있단 증거”

어환희 2023. 11. 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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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발간된 한대수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은 1960년대부터 40여 년간 찍은 필름 사진을 집대성했다. [사진 북하우스]

장발에 하모니카를 목에 걸고 칼칼한 목소리로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를 노래하던 20대 청년. 1968년 TBC(동양방송) 쇼 프로그램 ‘명랑백화점’에 등장한 가수 한대수(75)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한국 최초 싱어송라이터이자 ‘포크록의 대부’. 하지만 젊은 시절 그는 늘 외로웠다. 1집 ‘멀고 먼 길’(1974)의 앨범 커버는 지금 봐도 파격적이다. 수록곡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 등은 대중에게 사랑받았지만, 정권은 ‘금지곡’ 딱지를 붙였다. ‘체제 전복적인 음악’이란 이유였다.

폭압적 분위기 속에 음악만으로 인정받기 힘들었던 시절, 그를 버티게 한 건 사진이었다. 사진은 생각과 감정을 담아낼 또 다른 창구가 됐다. 지난달 20일 발간된 한대수의 필름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북하우스)은 그가 1960년대부터 2007년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집대성한 책이다. 미공개 희귀 흑백·컬러 사진 100여점을 실었다. 14일 미국 뉴욕에서 딸(한양호·16) 뒷바라지에 여념 없는 한대수를 전화 인터뷰했다. 늦둥이 딸의 교육을 위해 2016년부터 뉴욕 살이 중이다.

지난달 발간된 한대수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은 1960년대부터 40여 년간 찍은 필름 사진을 집대성했다. [사진 북하우스]

“2023년에 봐도 기괴하고 이상하죠? 바로 제 자화상이에요. 하하.” 1집 앨범 커버 사진 얘기에 그는 “카메라 삼각대를 세워두고 직접 찍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대학(뉴햄프셔주립대 수의과)을 중퇴하고,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포토그래피에서 사진학을 전공했다. “음악은 클래식만 인정하던 시대였다. 내가 하는 음악은 전부 ‘딴따라 광대 짓’이라 엄마는 늘 나를 못마땅해했다. 주변에서도 ‘장발이다’ ‘옷을 이상하게 입는다’ 등의 이유로 나쁜 말을 엄청 해댔다”고 회상했다. “반항의 의미로 현상 과정에서 온도를 높여 강렬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발간된 한대수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은 1960년대부터 40여 년간 찍은 필름 사진을 집대성했다. [사진 한대수]

황당한 이유로 한국에서 자신의 모든 노래가 금지곡이 된 뒤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오랫동안 상업 사진가로 활동했다. 그는 “1960년부터 1990년대까진 미국 광고업의 최전성기였다. 나 역시 상업사진을 찍으며, 힘들었지만 밥벌이를 할 수 있었다”며 “다만 속옷부터 건물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똑같은 걸 100장, 1000장씩 찍어내다 보니 지루하고 재미없었다”고 돌이켰다. 그러다 종군 사진작가 데이비드 덩컨 더글러스와 유진 스미스 작품을 접하며 “사진도 음악처럼 인간 심리를 자극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 반성까지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거리의 사진작가’로 나서게 된 계기다.

지난달 발간된 한대수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은 1960년대부터 40여 년간 찍은 필름 사진을 집대성했다. [사진 한대수]

“뉴욕만 해도 체감상 주민 50%가 홈리스예요. 사람들은 그들을 가로등 쳐다보듯 하며 지나치죠.” 그의 사진집 속 피사체는 모두 그의 관심과 연민 대상이다. 그의 뷰파인더는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도시 빈민으로 향했다. 뉴욕, 파리, 모스크바, 마드리드 등 대도시 노숙자들이 그의 카메라 필름에 담겼다. “나의 일부를 보는 것 같아”서 거리의 악사들도 찍었다.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보며 그는 “똑같은 한 인생, 똑같은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태어났을 텐데 쓰레기 취급을 받는 인생이 돼 버렸다. 이런 일이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달한 사회의 결과물이라면 정말 슬픈 일”이라고 개탄했다.

지난달 발간된 한대수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은 1960년대부터 40여 년간 찍은 필름 사진을 집대성했다. [사진 한대수]

1960년대 말 뉴욕과 서울 풍경을 담은 흑백 사진도 인상적이다. 동시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대조적이다. 자본주의의 화려함과 빈민의 절망이 뒤섞인 뉴욕의 모습, 개발도상국이 되기 전 가난한 나라의 수도 서울의 모습은 기록 사진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 문화와 역사의 일부를 볼 수 있다. 어떤 사진들은 외롭고 괴롭게 살아왔던 나의 인생을 거울처럼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난달 발간된 한대수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은 1960년대부터 40여 년간 찍은 필름 사진을 집대성했다. [사진 한대수]
지난달 발간된 한대수의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은 1960년대부터 40여 년간 찍은 필름 사진을 집대성했다. [사진 한대수]

“산다는 게 문제가 참 많아요. 살아 있기 때문에 고통받고, 고민도 하죠.” 평생을 보헤미안처럼 산 한대수가 정의한 삶은 ‘고통’이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뜻만은 아니다. 그의 인생관은 사진집 원제인 ‘I suffer therefore I am’에 녹아있다. “늘 고통받지만, 그것이 곧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삶이 고통이라는 것을 알면, 아침에 일어나 몸을 씻고 학교나 직장에 가고 맛있는 것을 먹는, 이런 별일 없는 보통의 일상에 감사할 수 있죠. 기왕에 태어났으니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게 내 삶의 구절입니다.”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그만의 방식이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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