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의 해부도 같은 연주…페트렌코 지휘 베를린필
“래틀은 시원시원했죠. 굵직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 지휘자였어요. 페트렌코는 정말 세밀해요. 연습 시간에 단원들의 집중력이 최고로 올라가죠.”
베를린 필하모닉의 비올라 단원인 박경민(33)의 말이다. 그는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베를린필의 두 지휘자를 비교했다. 박경민은 2018년 베를린필의 정식 단원이 됐고, 이듬해 상임 지휘자가 사이먼 래틀에서 키릴 페트렌코로 바뀌었다.
베를린필과 페트렌코가 지난 11·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첫 동시 내한 무대에 섰다. 베를린필은 6년 전 래틀과 내한했고, 페트렌코는 2017년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한국에서 공연한 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 페트렌코와 베를린필은 특별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연주를 선보였다. 무엇보다 음악을 철저하게 해부하고 섬세하게 모든 부분을 표현한 페트렌코의 스타일이 분명했다. 특별한 감정적 표현은 배제했고, 마치 악보의 해부도를 제시하는 듯한 연주였다.
음악 칼럼니스트 최은규는 “음악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이라는 말로 이번 연주를 평가했다. “악보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봐서 멜로디나 악기 소리에 성격을 부여했다. 선율과 소리가 마치 살아있는 인물처럼 움직였다. 등장인물이 많고 그 성격이 진한 러시아 소설과도 같은 연주였다.” 그는 악기들이 다채롭게 섞이는 진행이 선명히 들린 베르크의 모음곡 연주를 첫날 공연의 백미로 꼽았다.
꼼꼼한 분석가인 페트렌코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샤이 가이’로 통한다. 언론 인터뷰는 물론, 무대 밖에서는 쉽게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지난 10일 내한 기자 간담회에서도 그는 30분 동안 약속된 질문만 받았다. 영국의 클래식FM에 따르면 페트렌코는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를 맡았을 때도 홍보물에 자신의 사진을 넣지 못하게 해 결국 지휘하는 손만 보이도록 조정했다. 베를린필의 전임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이 엄숙한 지휘의 역사에서 ‘웃는 얼굴로 사진 찍기 시작한 최초의 지휘자’로 꼽혔던 것과 대비된다.
베를린필의 음악 또한 두 지휘자의 차이만큼이나 변화했다. 무엇보다 치밀한 계획대로 음악을 쥐고 가는 페트렌코의 스타일에 맞게 베를린필의 색채도 통일됐다. 해외의 평단은 이런 스타일에 대체로 우호적이다. 영국의 리뷰 사이트인 바흐 트랙은 9월 베를린필을 전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꼽았다. 빈 필하모닉,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로열 콘세르트허바우가 뒤를 이었다. 또 최고의 지휘자로 페트렌코가 꼽혔다. 2·3위는 사이먼 래틀,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였다.
엇갈리는 평도 있다. 페트렌코와 베를린필의 지난해 뉴욕 카네기홀 연주에 대해 평론가 존 록웰은 “너무 점잖았다”고 했다. “절대적으로 숙달돼 있고 디테일이 선명하지만 열정이 사라졌다”는 평이었다. 음악 칼럼니스트 황장원도 이번 내한 공연에 비슷한 평가를 했다. “템포에 여유를 두고 음악을 부각하면 좋을 부분에서 악보대로 정박자로 몰아가느라 맛이 살아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번 서울 공연 이후 21일까지 일본에서 10회 공연하는 베를린필은 새로운 여정에 힘을 싣는다. 내한 공연의 협연자였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상주 음악가로 선정해 내년 베를린에서 협연과 실내악 공연을 연다고 밝혔다. 아시아 음악가로는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츠코에 이어 두 번째 상주 음악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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