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꺾이자 우리는 날개를 폈다
세계 항공시장은 코로나19라는 최악의 위기를 빠져나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팬데믹 기간 여행 빗장으로 해외여행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마치 보복이라도 하듯 항공기에 너도나도 몸을 실었기 때문이다. 적자로 고통받던 항공사들은 분기 사상 최대실적을 갈아치웠다.
특히 저비용항공사(LCC·Low Cost Carrier)가 두각을 나타냈다. ‘굶더라도 해외여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대형항공사(FSC·Full Service Carrier)에 비해 저렴한 LCC의 항공권 가격은 승객들을 매료시켰다. 단거리 노선 수요가 늘어난 점도 호재였다.
시장조사기관인 리서치앤마켓은 2023년 전 세계 LCC의 시장 규모가 1891억 달러(256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래도 밝다. 연평균 8.7%의 성장을 기록하며 2028년에 3154억 달러(428조2000억원)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관측된다. LCC의 과거를 살펴보고 미래를 전망해본다.
저비용항공사의 시초는 1971년 미국에서 출범한 사우스웨스트항공이다. 이 항공사는 비행 서비스를 고급화하는 다른 항공사와 다르게 승객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즐기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초창기 모토는 ‘낮은 요금, 숨길 게 없는 요금, 투명한 요금’으로 삼았다.
기내식 등 불필요한 서비스를 없앴고, 보잉 737 단일기종만 운행함으로써 훈련 및 정비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였다. 노선 전략도 달리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당시 항공업계에선 대세로 불렸던 대형기로 많은 승객을 거점 공항으로 수송하고, 중소형기로 승객을 인근 지방 공항으로 옮기는 ‘허브앤스포크(hub-and-spoke)’ 전략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도시를 직접 연결하는 ‘포인트투포인트(point-to-point)’ 전략을 썼다. 고객이 허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목적지에 가길 원한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장거리 대신 단거리 노선 운항에 집중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고객의 관심을 끌면서 텍사스주의 댈러스와 휴스턴, 샌안토니오 등 3개 도시를 중심으로 운항하던 영역을 점차 넓힐 수 있었다. 실적은 상승 곡선을 그렸다. 창립 3년째인 1973년부터 시작된 흑자 행진은 무려 47년간 이어졌다. 미국 항공사들이 사상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던 1992년 1억 달러에 가까운 흑자를 냈고, 9·11 테러가 발생했던 2001년에도 5억 달러에 달하는 순이익을 올렸다. 현재는 미국 4대 항공사 중 한 곳으로 불릴 정도로 성장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역발상’ 전략은 항공 산업의 변화를 불러왔다. 저비용항공사 모델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1980년대 유럽의 라이언에어, 이지젯 등이 등장하기 이르렀다. 아시아에선 현재 최대 LCC로 평가되는 에어아시아가 생겼다. 2000년대 들어서는 LCC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국내도 LCC 바람이 불었다. 한국 최초의 저비용항공사는 한성항공이다. 2003년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충청항공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했지만, 한성항공으로 사명을 바꾸고 첫 비행에 나섰다. 첫 노선은 청주~제주였다. 한성항공은 취항 한 달 동안 평균 84%의 탑승률을 기록하는 등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국내 첫 저비용항공사는 끝내 빛나지 못했다. 자금난과 경영권 분쟁으로 110일 만에 운항을 중단하는 일을 겪었고, 이후 운항 재개에 나섰으나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적자가 누적되면서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이 회사는 이후 신보창투에 인수돼 티웨이항공으로 사명을 바꿨고, 2012년에는 출판업체인 예림당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국내 LCC 중 처음으로 성공 신화를 쓴 건 제주항공이다. 2006년 첫 취항 당시만 제주항공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는 드물었다. 기존의 항공사의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주류였다. 하지만 ‘항공여행 대중화’를 모토로 내 건 제주항공은 기존 항공사 대비 70~80% 수준의 운임을 받으며 승객을 유치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제주항공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첫해 118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꾸준히 증가했고, 2018년에는 매출 ‘1조 클럽’을 달성하는 데 이르렀다. 올해는 국적 항공사 중 세 번째로 누적 탑승객 1억명을 기록했다.
제주항공에 이어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등이 등장하면서 국내 항공시장은 대변혁기를 맞게 된다. 과거에 ‘비행기는 비싸다’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LCC가 여럿 등장하면서 항공 이용요금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게 되자 해외여행을 떠나는 수요가 크게 늘게 된 것이다. 저비용항공사 효과로 항공 여객 시장은 발전했고, 2016년 전체 항공 여객은 1억명을 넘어섰다. 이후 에어서울, 에어프레미아 등 걸출한 저비용항공사도 등장하게 됐다.
업계에선 저비용항공사가 항공시장의 성장을 주도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장거리 노선보다 단거리 노선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LCC는 단거리가 주력이다. 전염병, 전쟁 등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점도 저비용항공사에 이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 제작업체인 보잉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LCC가 주도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LCC 주요 제품군인 단일 통로형 항공기의 판매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보잉은 최근 “현재 전 세계 단일 통로형 항공기의 36%가 LCC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이 수치가 40% 이상에서 50%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곳으로는 인도와 중국이 꼽힌다. 요즘은 중국을 제치고 세계인구 1위에 오른 인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도의 LCC인 인디고는 지난 6월 에어버스에 여객기 500대를 주문했다. 이는 항공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다.
엔데믹 이후 고공비행 중인 국내 LCC는 호실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15일 “세계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으나, 여객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신규 수요 개발 등을 통해 수요를 늘려가겠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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