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페이커는 유독 “감사하다”고 말한다

윤민섭 2023. 11. 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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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엇 게임즈 제공


올해 T1 ‘페이커’ 이상혁은 유독 “감사하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프로스포츠 선수가 팬들 또는 그들이 보내준 응원에 고마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올해 이상혁의 감사하다는 표현이 평소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팬들의 응원 외에, 지나온 과정과 놓여있는 상황에도 감사해하는 모습이 자주 보여서다.

그는 15일 2023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도 여러 번 감사하다고 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월즈 결승전은 좋은 경험이고 (나서게 돼) 감사한 마음이다. (월즈에) 진출하지 못한 시즌도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렇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다시 월즈 결승전에 도전하게 돼 굉장히 기대되고 감사하다. 준비 과정에서 노력하고 성장하는 기회를 얻어서 감사하다. 그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발전했다고 느낀다. 내가 프로게이머를 하는 의미에 대해 알아갈 수 있게 된 점이 좋다.”

“JDG와의 4강전이 끝난 뒤 상대방을 뛰어넘었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좋은 경험을 했다고 느꼈다. 그런 (엄지를 아래로 내리는) 제스처를 취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팀원들이 잘해줘서 이렇게 결승전에 올라올 수 있었다. 작년에도 많이 생각했지만, 결국 LoL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팀원들이 잘해준 덕분에 2년 연속으로 결승전에 왔다. 제게 굉장히 흔치 않은 기회이자 감사한 기회다. 열심히 해서 팀원들과 함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라이엇 게임즈 제공


이상혁이 놓여 있는 상황과 겪어온 과정에 감사하다는 표현을 전보다 자주 쓰기 시작한 건 지난 8월 손목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로 짐작된다. 당시 그는 손목 부상으로 1달간 휴식을 취했다. 복귀 경기였던 광동 프릭스전에서 승리한 후 기자회견에서 이처럼 말했다.

“휴식을 취한 한 달 동안 잘해준 팀원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도 예상치 못한 증상이 갑자기 찾아와서 조금 힘든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생긴 것에 대해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팬분들께서 걱정하지 않으시고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어 같은 달 19일 KT 롤스터와의 2023 LCK 서머 시즌 플레이오프 최종 결승 진출전에서 승리, 결승행을 확정지은 후 무대 위에서는 “많은 팬분들 앞에서 한 번이라도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말했고, 기자실을 찾아서는 “오늘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상혁의 감사 릴레이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린 9월에도 계속됐다. 그는 국가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낸 날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저는 (메달 획득에) 엄청난 기여를 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같이 노력하는 과정이 제게는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금메달을 따준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도중 이상혁에게 요즘 유독 감사하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 같은데 기자의 착각인지, 실제로 심경에 변화가 있는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감사하면서 사는 습관을 가지려고 마음 먹은 것도 있다. 실제로 지금은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자세를 바꾸려고 하는 게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을 목전에 두고 다시 한번 자신이 놓인 상황에 감사를 표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연속 준우승의 아픔부터 1달 휴식으로 이어졌던 손목 부상까지, 이상혁의 2023년은 고단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시련과 과정에 감사하며 올해 마지막까지 경기를 치르는 두 팀 중 한 팀의 미드라이너로 남았다. 그의 무한한 감사는 결국은 생애 4번째 월드 챔피언십 우승이란 결실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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