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릉·기암괴석 너머 찬란하게 피어오르는 아침

남호철 2023. 11. 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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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깊숙한 내포의 중심 충남 예산
이른 아침 내포의 중심 충남 예산군 가야산 정상 인근에서 본 일출. 조선 실학자 이중환은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다.


조선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이백리를 가다 보면 가야산이 있는데 이 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이 바로 내포’라며 ‘충청도에서는 내포(內浦)가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다. 내포는 ‘육지 깊숙한 곳에 위치한 포구’를 의미한다. 충남 가야산 주변에 위치한 보령, 서산, 당진, 태안, 예산 일대를 가리킨다. 산천이 평평하고 예쁜 데다 수도 한양의 남쪽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사대부들에게 ‘사람 살기 좋은 터’로 인기를 끌었다.

내포 지방의 제일 명승지인 가야산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의 경계에 위치하는 산이다. 주봉인 가야봉(해발 678m)을 비롯해 원효봉, 석문봉, 옥양봉, 수정봉, 일락산, 상왕산, 덕숭산으로 이뤄져 서해안에서 오서산(해발 791m) 다음으로 높다. 그리 높지 않은 산세 안에 선 굵은 암릉과 기암괴석을 품고 있다. 정상에 서면 서해가 가까이 다가온다.

가야산은 서울·경기권을 벗어나서 왕실 유적이 있는 특이한 지역이다.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가야산에 뒀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야산에는 흥령군묘, 명빈 박씨와 연령군묘, 남연군묘, 명종태실 등이 집중돼 있다. 가야산은 광해군 때부터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1623년 인조반정 때 광해군의 아들 이지가 도망가려 했던 곳이 바로 가야산이다.

흥선대원군이 이장한 남연군 묘.


흥선대원군은 가야산 자리에서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나옹의 금탑을 허물고 천년고찰 가야사를 불태운 후 그 자리에 경기도 연천에 있던 남연군의 유해를 이장했다. 실제로 남연군의 손자 대에서 고종과 순종 두 황제가 나왔다.

남연군은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7대손이다. 남연군의 묘는 크지는 않지만 묘의 위치를 가리키는 망주석, 묘를 밝히는 장명등, 혼유석, 석양(石羊)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장식돼 있다. 아산만을 거쳐 구만포에 상륙한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1868년 5월 남연군 묘를 도굴하는 일이 있었다.

예산군 덕산의 가을철 인기 여행지 메타세쿼이아 길. 약 450m 길 양 옆으로 나무가 길고 곧게 뻗어 있어 그림 같은 풍광이 인기다.


가을철 예산군 덕산에서 인기있는 여행지는 ‘명상 치유 숲길’ 코스 중 하나인 ‘덕산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약 450m 되는 길이에 양 옆으로 나무가 길고 곧게 뻗어 있다. 그림 같은 풍광에 인생샷을 남기고, ‘사랑의 우체통’을 통해 고마운 사람에게 마음도 전할 수 있다. 본인에게 써도 좋고 친구나 연인, 부모님 등에게 느린 엽서를 써 보는 것도 의미있다. 예산의 명물 황새를 기념하는 날인 7월 23일 배달된다고 한다. 중간에 놓인 벤치에 앉아 편안히 휴식을 즐겨도 좋다. 요즘 유행인 맨발걷기를 즐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숲 산책 후 즐기는 온천은 쌀쌀한 늦가을 여행의 백미다. 지친 몸을 온천수에 담근 채 호젓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따뜻한 워터파크에서 가족과 함께 신나는 물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600년 역사를 간직한 ‘덕산 온천’은 국가 지정 보양 온천이다. 실리카를 비롯한 유익한 천연 광물 성분 43종을 함유한다.

전통문화체험 테마파크 내포 보부상촌. 저잣거리 및 난장 등 무형문화재 공연장 및 체험공방이 마련돼 있다.


인근엔 내포 보부상촌이 있다. 한국의 전통 유통문화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전통문화체험 테마파크다. 보부상 문화의 거점인 예산 덕산지역에 2020년에 조성됐다. 보부상을 주제로 보부상 유통문화전시관, 저잣거리 및 난장 등 무형문화재 공연장 및 체험공방이 마련됐다. 내포 보부상의 역사, 상업정신 함양 등 보부상 고유의 문화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가는 줄 모른다.

예산은 윤봉길 의사를 배출한 ‘충절의 고장’이다. 윤 의사는 1908년 덕산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9세가 되던 해 농촌 계몽운동에 뛰어든 그는 서당 ‘부흥원’을 차리고 농민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조선이 일본에 박해받는 이유가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이란 비장한 글을 남긴 채 중국 망명길에 오른다. 나이 스물셋이었다.

이후 상해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독립 의지를 불태운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일본 국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과 전쟁 승리 두 가지를 축하하는 홍커우공원 기념식장에 폭탄(저격용 물통 모양의 폭탄 1개, 자결용 도시락 모양의 폭탄 1개)을 감추고 들어갔다. 행사가 무르익었을 때 그는 거침없이 폭탄을 던졌고 일본군 대장과 일본인 거류민단장은 즉사했다. 식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윤 의사는 그 자리에서 체포돼 결국 일본 가나자와 육군 공병작업장에서 25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짧은 생이었지만 가슴은 누구보다 뜨거웠고, 삶은 외로웠다.

윤 의사 생가터 주변은 현재 사적지로 조성됐다. 기념관과 동상, 사당에서 윤 의사의 기개를 느낄 수 있다. 윤 의사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인 충의사는 1968년도에 건립됐다. 생가인 광현당, 성장가인 저한당, 농촌부흥운동을 한 부흥원, 유물을 전시하고 교육과 체험 시설을 갖춘 기념관과 함께 구성됐다.

여행메모
여행 후 온천에서 따뜻한 힐링
30년 전통의 광시 한우마을

충남 가야산은 정상에 방송 중계소가 있어 차로 편하게 오를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덕산온천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바로 옆 도로변에도 주차할 수 있다.

예산에는 숙소가 제법 다양하다. 온천단지인 덕산에는 스플라스 리솜이 대표적이다. 사계절 온천 워터파크 리조트다. 2007년 개장한 봉수산자연휴양림은 숲속의 집과 광장, 산책로, 숲체험장 등 각종 편의 휴식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백제 부흥군의 거점인 임존성이나 봉수산 등산을 겸할 수 있다.

예산 상가리 주차장 맞은편에 잔치국수, 동태찌개, 도토리묵, 산채비빔밥 등을 파는 식당이 있다. 광시한우마을은 30여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부드러운 육질과 저렴한 가격 등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타운이 형성됐다.

예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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