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해달라, 이런 신호 왔다" 윤심으로 친윤 때린 인요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15일 ‘윤심(尹心)’을 거론하며 지도부·중진·친윤을 향한 거취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동안 혁신위의 ‘수도권 출마’ 혹은 ‘불출마’ 권고가 “윤석열 대통령의 뜻과 같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긴 했지만 인 위원장이 이 문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인 위원장은 이날 YTN 라디오에서 “대통령에게 거침없이 얘기하기 위해 열흘 전에 ‘뵙고 싶다’고 여러 사람을 통해 말을 전했다”며 “돌아온 말씀은 ‘만남은 오해의 소지가 너무 크다. 지금 하는 임무를 소신껏, 끝까지 다 해달라. 우리 당에 필요한 것을 거침없이 해달라, 이런 신호가 왔다”고 전했다. “대통령에 직접으로 연락 온 건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대통령의 뜻이 그렇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인 위원장은 그러면서 “‘지적할 것을 지적하는 모습이 긍정적이다. 전혀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며 “당과의 갈등도 있지만 결국은 우리 혁신안을 다 받아들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권에선 이날 인 위원장이 ‘윤 대통령 측으로부터 신호’를 언급한 걸 일종의 압박 전술로 보는 분석이 많았다. ‘인 위원장의 압박이 윤 대통령의 뜻’이란 해석을 낳을 게 분명한데도 ‘신호’라는 표현까지 썼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날 대통령실은 인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든 비공개적으로든 부인하지 않았다. 3·8 전당대회 당시 김기현 대표의 당권 경쟁자였던 나경원 전 의원이나 안철수 의원 등이 윤심을 거론하면 즉각 부인하던 모습과 다른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인 위원장이 결국 ‘이거 단순히 내 뜻이 아니다. 대통령의 뜻이다’라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했다.
인 위원장의 발언은 친윤계 핵심인 장제원 의원과 김기현 대표와의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도 주목된다. 인 위원장은 이날 “어제(14일)도 제가 당에 ‘우리 혁신안을 빨리 통과시켜라. 주춤하지 마라’고 했다”고 강조했는데, 통과시키는 주체는 김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이기 때문이다. 험지 출마 관련 혁신위 권고에 대상자들이 무반응을 넘어 반발 기류가 강해지자 혁신위 내부에선 ‘조기 해체설’까지 흘러나왔고, 전날 김 대표는 “일부 혁신위원의 급발진으로 당의 리더십을 흔들거나, 기강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직격하며 갈등이 외부로 노출됐다. 김 대표의 발언이 전해지자 혁신위원들은 전날 밤 온라인 회의 때 “(김 대표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야 하는 게 아니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익명으로 흘러나오던 ‘조기 해체설’도 공개 발언으로 바뀌었다. 오신환 혁신위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당이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조기 해체밖에 없지 않으냐”며 “혁신의 방향과 큰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당면 과제인데 이분들이 결단하지 않으면 당 전체가 함께 몰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김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혁신위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그것이 번복되거나 혼선을 일으키는 모습은 혁신위와 당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재차 혁신위를 겨눴다. 김기현 대표는 그러면서 “총선은 단편 예술 작품이 아니라 종합 예술 작품”이라며 “당을 중심으로 지도부가 총선을 종합 예술 차원에서 잘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총선 관련 결정권은 혁신위가 아닌 지도부에 있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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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위원장과 혁신위원, 김 대표가 이날 오전 강성 발언을 주고받은 이후 권고 대상자들은 이날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연일 페이스북에 4200여명의 지지자 모임 사진을 올리거나 유튜브 영상을 통해 “알량한 정치 인생 연장하면서 서울 가지 않겠다”, “아무리 권력자가 뭐라고 해도 저는 제 할 말을 하고 산다”는 발언이 공개됐던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도 이날은 별다른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
혁신위에서도 “일단 기다리겠다”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인 위원장은 이날 YTN 라디오에서 “대통령과 가까운 분들이나 지도부가 굉장히 고민이 많은 것 같다”며 “국회 일정이 있는 12월 초까지는 기다리려고 한다”고 했다. 익명을 원한 혁신위원은 통화에서 “인 위원장이 ‘12월 초까지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를 던졌으니 일단 대상자의 반응을 볼 것”이라면서도 “다만 여론이 중진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고 했다.
거취 압박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양상이지만 이런 국면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험지 출마 무응답에 여론이 비판적으로 흐르고, 권고 대상자의 추가 반발 등이 나오면 인 위원장이 ‘파격 카드’를 내밀어 이들을 직접 압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권 관계자는 “인 위원장 입장에서는 칼을 빼 든 셈이어서 물러설 생각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선 “혁신위가 권고 대상자의 실명을 공표하거나 인 위원장이 대통령을 만나는 식으로 압박 방법이 다양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당초 김기현 대표에게 ‘전권을 위임 받았다’고 말했던 인 위원장 입장에선 파격 처방을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인 위원장 입장에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대 결단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비주류는 연일 주류를 겨냥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대표가 혁신위에 전권을 주면서 인 위원장을 영입해놓고 이제 혁신위를 비판하는 건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고, 이준석 전 대표는 BBS라디오에서 “인 위원장이 최근 중진과 ‘윤핵관’을 압박하는 이유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실 카펫을 깔려는 것이다. 김 대표는 1~2주 안에 쫓겨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효성·전민구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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