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와 개구리 왕자에 담긴 충격적인 반전
[이준목 기자]
그림 형제(Brüder Grimm)는 독일이 배출한 세계적인 동화작가이자 언어학자다. 형 야콥 그림(Jacob Grimm 1785~1863), 동생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 1786~1859) 형제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오늘날 고전의 반열에 오른 수많은 명작 동화들을 함께 만들어냈다. 이들의 작품은 독일어 기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으로 세계문학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으며, 현 시대까지도 수많은 대중문화 장르에 걸쳐 창작의 영감을 제공하는 원형이자 고전으로 꼽힌다.
현대에는 동화작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그림 형제의 진가는 언어-문헌학자였다. 이들은 독일 전역의 동화를 수집하여 수많은 걸작 동화들의 원전이 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를 편찬해냈다. 그런데 19세기 그림 형제가 처음 출간했을 당시의 동화 내용들은 지금의 우리가 아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겉보기에 동심과 낭만이 가득한 판타지로 보였던 동화의 이면에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가득한 잔혹한 이야기들이 숨어있었다.
14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 125회에서는 '세기의 베스트셀러, 그림형제 잔혹동화의 비밀' 편을 통해 세계적인 동화작가 그림 형제의 진실과 그들이 남긴 역사적 유산을 조명했다. 홍진호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그림 형제는 18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인 헤센-카셀 선제후국의 하나우 지방에서 아버지 필리프 빌헬름 그림과 어머니 도로테아 그림 사이의 5남 1녀중 각각 장남과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 당시만 해도 독일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국가였고, 그림 형제는 법무관 출신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야콥과 빌헬름 형제는 고향을 떠나 이모에게 맡겨졌다. 두 사람은 낯선 세상에서 의지할 사람은 서로 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고 사이가 더욱 끈끈해졌다.
두 사람의 형제애는 일방적인 형제들의 우애를 아득히 뛰어넘을 만큼 각별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항상 숙식을 함께하고 일상을 공유했으며 취향과 진로마저 일치했다. 혹시 학업이나 출장 등으로 형제가 잠시 떨어지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이 나눈 편지를 보면 "이렇게 함께 사는데 너무나 익숙해져서 혼자 살게 되면 죽도록 우울해질 거야", "나는 그 누구보다 형이 날 사랑한다고 느끼고 나도 그만큼 형을 진심으로 사랑해"같은 내용들이 등장한다. 형제라기보다는 연인들의 고백을 연상시킨다.
그림 형제는 대학 은사인 프리드리히 카를 폰 자비니(1779-1861) 교수를 만나 독일 언어와 문학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자비니 교수는 법학자였음에도 그림 형제에게 문학 작품들을 소개해주고 자신의 서재까지 개방하여 독일 고문학을 접할수 있게 해주는가 하면, 세계적인 대문호였던 괴테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그림 형제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힌다.
그런데 평온하던 그림 형제의 삶에 역사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나폴레옹의 등장과 프랑스 제1제국의 약진으로 신성로마제국이 붕괴되었고, 그 영향으로 그림 형제의 모국이었던 해센 선제후국도 프랑스군의 침공을 받아 위성국인 베스트팔렌 왕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림 형제는 피정복민 신세로 전락한 조국과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며 실의에 잠겼다.
한편으로 나폴레옹의 침공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인에게는 분열되어있던 신성로마제국 시절에 느끼지 못했던 민족의식을 싹트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 시기에 그림 형제는 독일 언어와 문학을 통하여 독일 민족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에 눈을 떴다.
그림 형제는 1808년부터 본격적으로 동화 수집에 나서서 독일인에게 전하는 공개 호소문을 통해 민간에 전하던 구전 동화와 설화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약 40~50명의 사람들이 형제의 호소문에 응답했고 이중 다수는 중산층 여성들이었다고 한다.
당시 10대 소녀였던 마리 엘리자베스(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 빨간 모자)와 50대의 도로테아 피만 부인(고슴도치 한스, 거위치는 아가씨) 등의 여성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수많은 고전 동화들의 원작을 그림 형제에게 처음으로 전해준 인물들로 꼽힌다. 또한 <헨젤과 그레텔>의 원작을 들려준 도로테아 빌트는 이때의 인연으로 훗날 동생 빌헬름의 아내가 된다.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증언이 있었기에 구전으로 맴돌다가 사라질 수도 있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또한 그림 형제는 이러한 동화 수집을 역사적 학문 연구로 여기고 진지하게 임했다. "우리가 동화를 수집한 방법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신뢰와 진실'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것을 보태지도, 설화의 상황과 성격을 직접 미화하지도 않았으며, 그 내용은 우리가 들은 그대로 전달했다는 것이다"라는 설명에서 그림 형제가 동화 수집 작업에 역사가의 자세로 임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형제는 동화수집 4년 만인 1812년 마침내 오늘날의 '그림 동화집'으로 알려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초판본에는 그림 형제가 수집한 88편의 이야기가 475페이지의 분량으로 수록되었다.
그림 형제는 첫 출간 이후에도 일평생에 걸쳐 그 내용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는 작업을 거듭했다. 이후 세계에 퍼지면서 각국의 정서에 맞게 수정되어 출판되기도 하면서 동화는 다양하게 변주되어 오늘날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1812년 출간한 초판본과 비교하면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원작을 살펴보면 동화답게 순수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세상과 인간의 부조리함을 풍자하면서 오히려 동심을 파괴할만한 '잔혹 동화'에 더 가까운 이야기가 많았다.
초판본의 첫 번째 이야기인 <개구리 왕자>의 줄거리는, 저주에 걸려 개구리가 된 왕자가 공주의 입맞춤을 받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사실 이 동화가 담긴 진짜 의미는 '어린 소녀가 성에 눈을 뜬 여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공주가 처음 만나게 되는 징그러운 개구리의 모습은 이성 경험이 없는 소녀가 또래 사춘기 남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의미한다. 공주와 같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고싶어하는 개구리의 모습은 여성에게 입맞추고 싶은 남성의 욕망을 상징한다.
결정적인 차이는 결말이다. 공주의 입맞춤으로 저주가 풀려 왕자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수정 엔딩과 달리, 초판본에서는 공주가 자꾸 침대로 들어오려고 질척거리는 개구리에게 화를 내며 벽에다 내던져버린다. 죽은 줄 알았던 개구리는 오히려 저주가 풀려 왕자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공주는 그제서야 왕자의 모습에 흡족해하며 두 사람은 그때부터 함께 '즐겁게 잠들었다'는 결말이다.
그런데 이는 외모지상주의를 미화하는 의도가 아니라, 이전까지 아버지의 명령에 의하여 수동적이던 공주가 자신의 의사와 결정에 적극적으로 변화한 모습을 의미한다. 다만 원작대로라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은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인물이 오히려 혜택을 입는듯한 결말이 되어버렸기에, 교육적인 동화의 내용으로는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아 결말이 수정된 것이다.
오늘날 대중들에게 가장 유명한 동화이자 그림 형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도 알려진 <백설공주> 역시 충격적인 은유와 반전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첫 장면에서 백설공주의 친모인 왕비가 바느질을 하다가 침에 찔려 피를 흘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백설공주를 낳는 장면은 남성과의 성 경험을 뜻하는 은유다.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하는 악역인 왕비는 수정본에서 계모로 바뀌었으나 초판본에는 놀랍게도 '친엄마'였다. 왕비는 사냥꾼들에게 공주를 죽인 후 그녀의 허파와 간을 가져오게 하여 식인종처럼 직접 먹는(사실은 사냥꾼이 속인 멧돼지의 내장) 엽기적인 장면도 등장한다. 친딸의 아름다움을 질투하여 식인을 해서라도 빼앗고 싶어하는 왕비의 모습을 통하여 선과 악의 대비를 극대화시키는 장면이다.
<백설공주>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독사과를 먹고 죽은 백설공주가 다시 살아나는 장면도 초판본과는 전혀 다르다. 수정판에서는 왕자의 키스를 받아 깨어나지만, 초판에서는 공주의 시신이 담긴 관을 운구하던 왕자의 하인이 본의아니게 공주를 구한 진짜 주인공이었다. 하인은 죽은 공주 때문에 고생한다고 불만을 품고 시신을 관에서 끌어내어 분풀이로 등짝을 후려 갈겼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목에 걸린 독사과가 튀어나와서 공주가 살아났다는 기막힌 반전이다.
또한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악역인 왕비가 권선징악으로 처벌을 받는 모습이다. 왕비는 석탄불에 달구어진 쇠신발을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형벌을 부여받는다. 여기서 연상되는 모습은 바로 중세의 '마녀사냥' 처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처럼 초판본은 각색된 이후의 아름다운 미화보다는 시대와 인간의 속성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이야기에 더 가까웠다.
<신데렐라>는 그림 형제의 대표작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변형이 가장 많이 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신데렐라의 어원은 본래 '재투성이'를 뜻하는 프랑스어 산드리용(Cendrillon)에서 영어로 옮기지면서 신데렐라(Cinderella)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신데렐라를 학대하던 계모가 그녀를 벽난로 옆에 재우면서 '재투성이 소녀'로 불리게 된 것이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다.
그림 형제의 초판본에는 신데렐라에게 옷과 구두를 선물해주는 요정은 등장하지 않으며 구두 역시 유리구두가 아닌 황금구두였다. 왕자가 구두의 주인공을 찾으려고 하자 계모는 발이 맞지 않는 자신의 딸들에게 발가락과 뒤꿈치를 잘라 억지로 구두에 집어넣는 엽기적인 행동을 저지른다. 왕자는 비둘기 두 마리가 진실을 알려주고 나서야 구두의 진짜 주인공이 신데렐라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된다.
<노간주나무>에도 사악한 계모가 악역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계모는 남편의 전처가 낳은 의붓아들을 목을 잘라 죽이고 그 시신으로 스튜를 만들어먹는 잔혹한 짓을 저지른다. 새로 환생한 의붓아들은 계모의 머리 위로 맷돌을 떨어뜨려 복수하고, 원래의 인간 모습으로 되돌아와서 다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이다.
도저히 동화와는 어울리지 않은 충격적인 내용들 때문인지 실제로 초판본 출간 당시의 반응은 초라했다. 동화이지만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 삽화도 한 편 없었고, 주석 판본까지 따로 낼 정도로 어두웠고 진지했던 분위기 때문에 인기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심지어 잔혹하고 비윤리적인 이야기가 기독교 정신을 위배한다는 비난 여론까지 휩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형제의 진짜 목적은 동화집을 통해 독일인들이 옛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서 같은 언어와 문화적 동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온갖 어려움과 비난 속에서도 그림 형제는 자신들의 과업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들의 노력은 결국 후대에 걸쳐 동화들의 재해석과 문학적 재평가를까 거듭하면서 인정받게 된다.
그림 형제가 학자로서의 업적만 남긴 것은 아니다. 형 야콥은 나폴레옹 정권이 패망하고 독일 연방의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며 독일 중세 연가곡 모음 문헌인 '코덱스 마네세' 등 문화재 환수 작업에 앞장서서 큰 공을 세운다.
또한 바쁜 와중에도 동화 편찬 작업 역시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림 형제는 1815년, 초판본에서 논란이 된 부분을 수정-삭제하고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보완한 2권을 출판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독일어로 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수정작업은 권선징악적인 결말을 통해 '도덕성'의 가치를 부각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고, 지나치게 잔혹한 내용이나 성적인 코드들은 차츰 배제됐다. <라푼첼>에서 주인공 라푼첼이 왕자와의 은밀한 성관계로 임신한 것을 암시한 내용들은 삭제됐다. <아이들의 사람죽이기 놀이>처럼 기본 제목이나 내용 자체가 수정이 어려운 작품들은 아예 개정판에서 삭제되기도 했다. <장화신은 고양이>와 <푸른 수염> 등은 프랑스 동화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배제됐다.
그림 형제는 "이 동화집을 통해 동화 속에 살아있는 문학 자체가 작동하고 교육을 위한 책으로서 이용되는 것이 우리가 원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림 형제의 동화는 주로 힘들고 가난한 이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끝내 행복을 찾으며, 악인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구성이 많다. 악행을 강력하게 처벌할수록 올바른 도덕적 관념이 유지된다는 당시 시대의 정서를 반영한 대목이다.
그림 동화는 당시의 참혹한 사회상을 고발하는 내용들도 다수 등장한다. <헨젤과 그레텔>은 중세부터 18세기까지 독일 및 유럽 일대에서 가난이나 비윤리적인 이유로 아동학대와 영아살인이 만연했던 시대상을 고발한 작품이다. <브레멘 음악대>는 하층계급을 착취하고 버리는 지배계급의 위선을 비판하는 동화이며,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피라미드 쌓기는 하층민의 저항과 연대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또한 <피리부는 사나이>는 '동부 유럽 이주설'과 십자군전쟁 당시의 '어린이 십자군설' 등을 모티브로 하여, 가난한 서민과 약자를 현혹하여 착취하는 모순한 시대상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823년 그림동화집의 영문판이 출간되면서 인기있는 이야기 위주로 발췌한 축약본이 발간되었다. 또한 독일어판에는 없었던 삽화의 등장으로 동화집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다. 2년 뒤 원작자인 그림 형제도 개정판에 삽화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림형제는 말년에 동화집과 더불어 또 하나의 거대한 업적으로 꼽히는 '독일어 사전'을 편찬해냈다. 1854년 1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형제의 나이는 이미 일흔에 가까웠다. 개인의 역량으로 해내기 어려운 사전 편찬이라는 대작업을 끝내 이뤄낸 형제의 끈기와 열정은 경이롭다.
동화 초판본이 많은 비난과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과 달리, 사전 편찬은 찬사 일색이었다. 현재의 독일어가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그림 형제 때문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독일 천마르크 지폐 앞면과 뒷면에는 각각 그림 형제의 얼굴과 독일어 사전이 수록되었을 정도로 그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그림 형제로부터 개인적으로 시작된 사전 편찬은 이후 독일의 국가적인 사업으로 까지 확정되며 1960년, 마침내 33권으로 이루어진 독일어 사전이 완성되기에 이른다. 그림 형제이 싹을 틔운 것으로 시작하여 완결까지 무려 133년이 걸린 장대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언어는 우리의 역사다." 야콥 그림이 남긴 어록은 그림 형제의 일대기와 업적을 요약한다. 빌헬름은 1859년, 야콥은 4년뒤인 1863년 각각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나란히 묘지에 묻히며 영면 이후에도 영원히 함께했다.
그림 형제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문화를 확인시켜준 동화와 사전 편찬을 통하여 독일 민족의 자부심과 소속감을 드높이고 통일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언어와 문화, 이야기의 힘이 시대를 뛰어넘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교훈을 남기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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