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파라다이스’가 지옥으로…우리는 생존 전쟁 중”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지난달 7일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기습 공격했을 때 자폐증이 있는 한 소년(15)은 누나를 잃었다. 레임 키부츠(집단농장) 인근 축제를 찾았다가 변을 당한 그의 누나는 이 소년과 유일하게 소통이 가능한 인물이었다. 하루아침에 누나를 잃은 이 소년은 고립된 채 공포에 떨고 있으며, 부모를 잃은 이 소년의 두 조카도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가정뿐만이 아니다. 공습을 받은 이스라엘 남부 주민들은 전쟁 50일째인 지금도 심각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전쟁 피란민 보호를 위한 ‘국가위기대응센터’를 운영하는 요하난 새뮤얼스(46) 샬바국립센터 최고경영자(CEO)는 1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족과 친구, 이웃, 동료를 잃은 이스라엘인들은 끔찍한 충격에 휩싸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남부 주민들은 삶을 송두리째 잃었다”며 “다시 하마스의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 외출도 잘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샬바국립센터는 1990년 설립된 장애아동 복지시설이다. 개전 이후 갈 곳을 잃은 수만명의 피란민을 위해 지난달 12일 위기대응센터를 열었다. 예루살렘 중심부에 있는 6만평 규모의 이 센터에는 현재 약 100명 정도의 어린 소녀들이 기숙하면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예루살렘 시내 호텔에 피란 중인 시민 1000여명도 이 센터의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이들은 모두 하마스에 의해 살해당하는 가족의 모습을 목격했고, 마을 전체가 불에 타는 모습을 봤다.
새뮤얼스는 “학살은 10월 7일, 우리에게 가장 성스러운 안식일에 일어났다”며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은 이스라엘인을 살해했고, 참수했다는 정황도 있으며 여성들을 성폭행했다. 우리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가자지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키부츠는 꽃과 채소 등을 키워 수출하는 이스라엘의 농업 공동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생계를 위해 이곳에 와 노동을 하는 ‘공존’의 공간이었다.
엘리 만델바움(45) 샬바국립센터 개발부 책임자는 “이전에 주민들은 키부츠를 ‘파라다이스’라고 표현했다”며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은 마을 전체가 100% 지옥이 됐다”고 말했다. 아슈켈론, 스데로트 등의 키부츠에선 지금도 하마스의 공격이 가해져 매일 공습 경보가 울리고 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은 남부 주민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국민 전체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만델바움도 남부에 살던 친구 가족을 잃었다. 샬바 스포츠 센터를 관리하던 한 직원의 17세 아들은 하마스에 인질로 끌려가 현재 가자지구에 억류돼 있다.
이스라엘의 대다수 국민은 이번 전쟁을 ‘생존 전쟁’이자 ‘평화를 위한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 ‘10월 7일 학살’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하마스 조직을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새뮤얼스는 “이스라엘 국민은 ‘단결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이 전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다시 하마스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인도 가자지구 시민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면서 “이스라엘은 국제법을 준수하고 민간인 사상자 발생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동시에 무거운 대가(사상자 증가로 인한 국제사회의 비판)를 치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새뮤얼스는 하마스를 겨냥해 “이들은 선량한 아이, 여성 등 시민을 방패 삼아 민간인이 이용하는 학교, 병원 등의 지하에 은신해 활동하는 매우 잔인한 조직”이라고 비난했다. 만델바움은 “하마스의 이데올로기를 없애지는 못해도 권력을 파괴할 수는 있다”고 단언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의 책임론도 언급했다. 새뮤얼스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놓고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며 “취약한 우리의 정치 상황이 적들의 공격에 빌미를 준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전쟁 중이지만 시간이 지난 뒤 정부는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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