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불투명’ 반도체 ‘회복’ 항공‧식품만 ‘맑음’…10대 업종 기상도
글로벌 경기가 침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산업 각 부문의 대표 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5일 중앙일보가 정보기술(IT)전자·자동차·2차전지·조선 등 국내 10대 업종 매출 1~3위 기업 21곳의 올해 3분기까지 사업보고서를 바탕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을 분석한 결과 이들 중 절반이 넘는 12곳이 지난해와 비교해 영업이익이 줄었다. 매출이 뒷걸음질한 곳도 7곳에 달해 내년 전망 역시 낙관할 수 없었다. 기상도로 봤을 때 ‘맑음’이라 볼 수 있는 업종은 항공과 식품뿐이었다.〈그래픽 참조〉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의 경우 올 3분기까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5%, 영업이익은 89%가 줄어들었다. 역대급 실적을 냈다는 LG전자 역시 지난해와 비교하면 오히려 매출은 0.8%, 영업이익은 7% 각각 줄어들었다. 다만 4분기 이후 반도체 수요가 살아나는 추세 속에서 전체적인 전자 업황 전망은 ‘흐린 뒤 맑음’으로 분류된다.
올 한 해 최고의 시간을 보낸 자동차 업계 전망도 마냥 밝지만은 않다. 현대차와 기아는 모두 올 3분기까지 지난해 대비 매출은 20% 가까이, 영업이익은 2배 남짓 뛰었다. 내년 자동차 시장 수요가 소폭 증가 혹은 둔화 예상이 우세한 데다 주요 국가의 보조금 축소로 전기차 수요가 위축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성장세 둔화 과정에서 고금리 지속과 전기차 경쟁 심화 등으로 인해 2024년 이익 성장 모멘텀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기차 시장에 먹구름이 끼면서 고성장을 구가하던 배터리 업계에도 한파가 들이닥치고 있는 양상이다. 북미 지역으로 앞다퉈 진출하던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하반기부터 생산 확대 계획을 조정하고 인력을 재배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조선 업계 역시 고부가 및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쾌속 운항’ 중이지만,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의 성장세에 선박 시장의 점유율이 여전히 크게 뒤져있다는 측면에서 ‘구름 조금’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조선사들이 대형 컨테이너선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선 건조 능력을 조금씩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인 상황이다.
항공 업계는 몇 안 되는 밝은 예보가 가능한 업종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 측면에서의 개선이 기대된다. 명지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2024년엔 적어도 2019년 수준의 여객 수를 회복할 것”이라며 “비싼 항공권에도 불구하고 여객 수요는 견조할 것”이라 내다봤다. 가격 상승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출장이나 코로나19로 인해 지연됐던 수요가 하방을 지지해줄 것이란 뜻이다.
철강은 내년 업황이 잔뜩 흐려 비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에서 철강 소비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인 중국의 경기가 아직도 되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이 1조 위안(약 181조원)에 달하는 경기 부양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유의미한 효과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최대 소비 시장인 중국의 배신은 지난해 반도체에 이어 수출 2위와 3위 품목이었던 정유, 화학제품 수출에도 타격을 줬다. 국내를 대표하는 정유‧석유화학 기업인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모두 지난해보다 올해 영업이익이 60% 넘게 줄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로 수익성 악화에 빠진 사업에서 발을 빼고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나섰다.
대표적인 내수 업종인 유통과 식품 역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신증권은 이날 이마트의 목표주가를 기존 11만원에서 9만5000원으로 낮췄다. 자회사 실적이 부진해 기업 가치가 훼손됐다는 근거를 들었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소비심리 악화로 할인점의 지난달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역성장했다”며 “당분간 적자 규모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이마트의 실적 상승 동력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나마 K-푸드 붐을 타고 수출 비중을 늘리고 있는 식품 업계의 사정이 나은 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라면‧김치 등 K-푸드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면서 올 들어 지난달까지 농식품 수출이 1년 전보다 1.2%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반도체·자동차 등 기존 주력 산업 다음 세대의 먹거리가 좀처럼 자리 잡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와 자동차, 석유화학 등 20년 전의 주력 상품에 아직도 의존하고 있다”면서 “과감하게 틀을 깨지 못한다면 장기적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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