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보호냐, 성교육 필요냐... 한국은 지금 '금서 전쟁 중'

한림미디어랩 고윤주 2023. 11. 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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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관련 도서 금서 지정으로 촉발된 논란... 학교 내 성교육까지 시선 엇갈려

[한림미디어랩 고윤주]

올 하반기 학교도서관 내 특정 도서에 대한 금서 지정 이슈를 시작으로 성교육과 관련된 상반된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금서 지정의 경우 지난 7월 서울시교육청이 성교육 관련 도서 17권에 대해 각 학교도서관 비치 현황, 구입 시기와 가격, 도서명 등의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서울시는 정보 제출 요구의 마땅한 이유와 조사 목적을 명시하지 않아 읽기권 침해와 검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11일부터 16일까지 충남 홍성군 홍동면 밝맑도서관에서는 '금서 축제'가 열렸다.
ⓒ 이재환
  
같은 달 충청남도에서도 김태흠 지사가 일부 보수 단체의 민원을 이유로 성교육 도서 10권에 대해 도내 6개 도서관에서 열람을 금지했다. 이에 충남 홍성군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1회 홍성 금서 대축제'를 여는 등 도서 열람 제한 조치에 맞서는 행사를 개최했다.

이같은 금서 지정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이덕주 사서교사위원장은 사서교사의 도서 선정 자율성 침해라며 검열과 교권 침해에 대해 비판했다. 일부 교사 사이에서도 명확한 조사 목적을 밝히지 않은 공문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133개 시민단체들도 성교육 관련 도서의 검색 및 열람 제한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서울시의회 전병주 의원(광진1)이 제321회 정례회 교육위원회(제3차) 행정사무 감사에서 시대착오적인 도서 검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전 의원은 "일부 단체에서 특정 도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객관성이 있다기보다 주관적"이라고 지적했다. 
  
청소년의 기초 성 지식에 대한 '엇갈린 시선'

지자체 차원의 성교육 관련 도서 금서 지정이 시작되면서 동시에 청소년의 기초 성 지식 부재, 각종 성 관련 문제 등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경우도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대학생 박아무개(24)씨는 "자유롭게 정보를 읽고 수용할 권리가 있는데, 이것을 금지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특히 우리나라처럼 성교육이 부실한 경우 사실적인 성 관련 정보가 담긴 책을 금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살 아이를 키우는 김아무개(38)씨는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적나라한 교육 자료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성교육 금서 지정 자체에 찬성할 수는 없지만 적절한 선과 수위가 조절된 도서를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성교육 관련 금서 지정 문제를 넘어, 실제적인 성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이제 성인이 된 정아무개(20)씨는 고등학교 시절 성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크게 없었고, 고3 때는 더욱 없었다고 답변했다. 정씨는 "솔직히 보건 시간이든 성교육 시간이든 애들한테는 자거나 노는 시간이라 크게 기억나지 않는다"며 "최근까지 성 관련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이었다"고 답했다.
 
 여성가족부 「청소년매체이용및유해환경실태조사(2022)」 중·고등생의 성교육 경험률(2018~2022)
ⓒ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 「청소년매체이용및유해환경실태조사(2022)」 초·중·고등생의 성교육 경험 및 도움 정도(2018~2022)
ⓒ 여성가족부
    
실제 청소년이 받는 성교육의 부실 문제는 전국 단위 조사 결과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2022)에 따르면 고등학교 기준 학년이 높아질수록 성교육 경험 수치가 낮아짐을 확인할 수 있다.

성교육의 효과에 대해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됨' 응답이 고등학교는 2018년 14.9%에서 2022년 20.7%로 5.8%p 상승했다. 특히 2022년 기준, 10명 중 4명꼴인 42.8%가 성교육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학교 내 성교육 현실, 기준과 현장의 부조화

청소년 성교육 확대에 대해 정부 및 각 학교 관계자가 노력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신통치 않다. 

여성가족부가 800개 초·중·고등학교를 조사한 결과, 2022년 전국 청소년의 성교육 경험률은 2020년 대비 4.5%p 상승한 84%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성교육 도움 정도는 6.3%p 하락한 72.3%였다.

청소년 성교육은 교육부가 제정한 '성교육표준안'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이 표준안에 대한 의견도 크게 엇갈린다.

강원도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의 성교육표준안과 관련해 누구는 보수적, 누구는 개방적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양성평등, 성평등, 제3의 성과 같이 성 분야의 이념적 갈등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기준 또한 상대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몇 년 전 있었던 바나나 피임 교육에 대한 학부모 민원 사건을 언급하며 "성에 대한 접근 태도가 시대, 연령, 지역, 종교마다 달라 어려움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러한 다름에 대해 갈등을 줄이고 공감할 방안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잡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성교육표준안에 대해 "여러 이념 속에서 기준을 정하는 게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꾸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고 현시대에 맞는 성교육표준안 개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학교 내 성교육 교사 등의 어려움도 존재한다. 강원도 보건교사회 관계자는 "성 관련 교육은 시대의 흐름과 사건에도 영향을 많이 받고 아이들도 실제 사건을 보며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부분이 크다"면서 "기존 성교육표준안도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요즘 무조건적인 피임과 책임론 교육이 성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학교라는 공간은 다양한 케이스의 아이들이 있다 보니 성에 대한 사정도 저마다 다르다"면서 "성교육은 '나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하기에 아이들이 성의 변화를 겪어가는 초등, 혹은 그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성교육이 필수적이고 국가에서 지정된 의무교육 시간이 존재하지만, 실제 운영은 보건교사 재량에 맡겨져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정규 교과에 밀려 보건 교육이 사라지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확실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성교육표준안 개정 방향에 대해서는 "아이들과 이야기해 보면 성에 대해 불확실한 지식 및 믿음을 가지는 근원이 온라인 속 검열되지 않은 부적절한 매체인 경우가 많다"며 "이제는 아이들의 성 인식을 위해서라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꾸준한 성교육과 적절한 기준 개정 필요, 핵심은 건강과 존중
 

청소년들에게 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어 다양한 입장이 존재했지만, 이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성교육의 핵심은 '건강과 존중'이라는 것이다. 

현재 보건교사로 재직 중인 강원도 보건교사회 관계자는 "현장을 보면 상처받은 아이들이 참 많다"면서 "모든 일의 처음으로 돌아가 아이들이 '나'에 대해 존중하는 방법을 알아야 다른 영역은 물론, 성 영역에서도 타인을 존중하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로 나아갈 준비 중인 청소년들이 올바른 성 인식과 성 문화를 가질 수 있도록 학교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방안 모색과 성교육 개정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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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고윤주 대학생기자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대학생기자가 취재한 것으로, 스쿨 뉴스플랫폼 한림미디어랩 The H(www.hallymmedialab.com)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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