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대박" 코로나 세대도 신기해 한 200명 칼군무 응원 부활
“선배님들 수능 대박 나십시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하루 앞둔 15일 오전 9시 30분, 서울 강남구 중동고등학교 강당 앞에 200여명의 남학생이 모였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 왼쪽 가슴에는 명찰을 찬 학생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섰다. 야구점퍼를 입은 학생회 학생들이 “대(大)중동고” 선창을 하자 뒤에 있던 학생들이 “맞고 터져와도, 다시 일어나서, 빨리 앞장서”라며 우렁차게 외쳤다. 발을 두 번 구르며 손뼉 치는 군무는 칼로 자른 듯 딱 맞았다. 뒤에는 “힘차게 달리자”, “수능 대박 기원”이라고 쓰인 현수막도 걸렸다. 중동고 학생들이 10년 넘게 전통처럼 이어온 이른바 ‘수능 출정식’이다.
후드티에 체육복 차림의 수험생들이 오전에 배부받은 수험표를 손에 들고 차례대로 걸어 나오자 구호 소리는 더욱 커졌다. 몇몇 학생은 친구들이 팔로 만든 기마를 타고 올라가 엄지를 치켜들기도 했다. 학생회장 2학년 이지호군은 “한 달 반 동안 학교 끝나고 시간을 쪼개 연습했다”며 “가사와 군무를 하나하나 익히는 게 힘들었지만, 다들 자발적으로 열심히 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1학년 강규담군은 “연습하면서 목소리가 쉬었지만, 선배님들이 응원을 받고 수능을 잘 보면 기분이 좋으니까 더 열심히 응원했다”고 말했다. 3학년 수험생 어윤석군은 “큰 응원을 받아 부끄럽기도 했지만 학교가 자랑스럽고, 응원 덕분에 수능도 잘 볼 것 같다”고 말했다.
교문 밖에서는 학부모들의 응원도 이어졌다. 교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30여명의 학부모는 걸어 나오는 자녀들을 보고 “그동안 고생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수험생 학부모 백모(52)씨는 “키가 제 허리 정도밖에 안 되던 초등학생 때부터 12년 동안 학교에 맡겨놨는데 지난 시간이 떠올라서 눈물이 났다”며 “그저 고생했다는 말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들도 “아이들이 열심히 해온 걸 지켜봤으니 안쓰럽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2001년에 중동고를 졸업한 오종문(42)씨는 “응원하러 회사를 포기하고 왔다”며 “준비한 만큼 능력을 발휘해 꼭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4년만 수능 응원전…전교생 모여 “수능 대박”
‘출정식’, ‘장행식’이라고도 불리는 수능 응원전이 4년 만에 돌아왔다. 2020년 코로나 19 이후 방역 정책에 따라 사라졌다가 엔데믹 이후 첫 수능인 올해 부활한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소 완화됐던 지난해에도 전국 시·도교육청이 응원전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각 학교에 보내면서 시끌벅적한 응원전은 보기 어려웠다. 코로나 확산세 우려와 이태원 참사 추모 여파 때문이었다. 이날 수험표를 받기 위해 중동고를 찾은 삼수생 지승훈군은 “1학년 때 후배로서 응원전에 참여했었는데, 코로나 때 (응원전을) 못 보다가 5년 만에 이렇게 응원을 받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서초구 서울고등학교에서도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전교생이 참여하는 대규모 출정식이 열렸다. 코로나 여파가 있던 지난해엔 작은 규모로 진행했지만, 올해엔 1·2학년 학생들 800여명 등 전교생이 참여했고 학생회를 중심으로 재치 있는 현수막까지 준비했다. 교실 건물에서부터 후문까지 일렬로 선 학생들은 ‘수능 날은 답길, 너의 미래는 꽃길’, ‘우주의 기운을 모아 수능 대박’ 등 문구가 쓰인 현수막과 교기(校旗)를 흔들었다.
학생들의 장기를 살린 이색 응원도 돋보였다. 서울고 관악부 동아리 학생 12명은 ‘위풍당당 행진곡’ 연주를 준비했다. 트럼본을 연주한 1학년 황융군은 “수능 출정식은 입학식, 현충일과 더불어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라며 “수능 응원을 위해 한 달간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매일같이 연습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코로나와 함께한 ‘코로나 세대’ 학생들은 처음 경험한 수능 응원전에 새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광진구 광남고 3학년 황예림양은 “3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오늘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작년에는 선배들에게 응원 영상을 찍어서 실감이 안 났는데 올해는 옆에서 응원해주니까 더 힘이 난다”라고 말했다. 응원전을 기획한 광남고 1학년 윤홍결군은 “원래 이런 행사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선생님이 코로나가 끝났으니 해보자고 알려주셨다”라며 “응원을 해본 적이 없어서 유튜브에서 ‘2002년 월드컵 응원 영상’을 찾아보며 구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재일 광남고 교장은 “몇십년간 이어져 온 전통이었는데 코로나로 뚝 끊겨서 아쉬움이 많았다”며 “3학년 학생들이 응원을 받고 밝은 얼굴로 나가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집중’…“좋은 결과 얻기를”
곳곳에서 수능 응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학교를 방문했다. 이 부총리는 이날 서울맹학교를 찾아 수능을 치르는 시각장애 학생 4명에게 직접 수험표와 응원 떡을 나눠줬다. 이 부총리는 “전국의 모든 학생이 갈고닦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좋은 결과를 얻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장서윤ㆍ장윤서ㆍ김민정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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