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쳐도 보호 못 받는 간병노동자…“산재보호법 보완해야”
“우리가 그림자나 투명인간인가 싶을 때가 있어요.”
폭언과 폭행, 강도 높은 노동, 쉴 곳 없는 일터. 병원 필수 노동자이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 환경을 이경순 희망간병 경북대학교병원 분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간병노동자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열악한 근무 환경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5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간병노동자의 건강실태 조사결과 발표 및 노동인권 보호방안’ 토론회가 개최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간병노동자들은 근무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 분회장은 “돌보는 환자가 나아지면 보람을 느낀다”면서도 “환자에게 맞아 코뼈가 부러지는 등 폭력‧폭언에 노출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감염되거나 다칠 위험도 높다. 그럼에도 근로기준법도, 산재법도, 고용법도 적용받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한영란 희망간병 강원대학교병원 분회장도 떨리는 목소리로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떤 보호도 없는 지금 상태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 분회장의 말에 간병노동자들은 눈물을 닦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간병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에서 지난 6~7월 간병노동자 302명을 대상으로 건강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평균 야간 취침 시간은 약 5시간, 1주일 평균 근무 일수는 6일로 나타났다. 쉴 수 있는 휴게시설이 없다는 응답도 91.6%로 조사됐다.
건강상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다. 사고를 경험했을 때, 본인 스스로 책임지는 경우가 91.9%나 된다는 점 역시 문제로 꼽혔다. 문병순 희망간병 서울대병원 분회장은 “우리가 병들면 누구에게 보호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하루 겨우 쉬는 날에도 침 맞으러 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폭언이나 폭행에 노출되는 문제도 심각한 걸로 나타났다. 모욕적인 말 등 비인격적 대우를 받은 경우가 있다는 응답이 70.6%로 조사됐다. 더욱이 언어, 신체접촉 등 성희롱이나 성폭력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53.8%나 됐다. 이 같은 행위의 주된 가해자로는 환자나 보호자가 꼽혔다.
이런 어려움에도 간병노동자들은 산재보험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그들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병노동자는 병원이나 인력소개업체, 개인 소개 등으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판례 등은 병원 등이 간병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김남희 변호사는 “간병노동자는 노동을 하지만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사고와 감염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되고 있어도 산재보험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강조했다.
정수창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연구원도 “병원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노동하는 등 관련이 깊어도 의료와 돌봄 서비스 종사자 간의 단절이 심하다”라며 “현실을 고민하고 해결책을 마련해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무제공자’의 개념을 좀 더 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남우근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정책연구위원은 “노무제공자 개념을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자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하거나 간병인에 대한 특례 조항을 만드는 등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대만은 고용주(사용자)가 없더라도 노동조합을 통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특례 조문을 만들었다”라며 “현실적으로 이런 법을 바로 도입하기는 어려울 수 있으니, 특례 조문이라도 먼저 만들어 일차적인 보호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우원식 의원은 “아픈 사람을 돌보는 간병노동자가 아픈 상태로 방치된다면,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라며 “간병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 추가 입법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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