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7시간'과 윤석열 '커피 한 잔'의 공통점

오태규 2023. 11. 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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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언론의 비판 '명예훼손죄'로 제압... 삐뚤어진 언론관 그대로 반복

[오태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보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순방에서 돌아온 10월 26일, 여독도 풀리지 않았을 텐데 바로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제44주기 추도식에 참석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입니다. 추도사까지 하고 그의 딸 박근혜씨와 함께 나란히 그의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그리고 12일 뒤인 11월 7일, 대구에서 두 번째로 큰 칠성시장을 돌아본 뒤 다시 박근혜씨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박근혜를 두 번이나 찾은 이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대구 달성군 박근혜씨의 자택을 방문해 인사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이 이 시점에 자신이 국정농단 주범으로 잡아넣었던 박근혜씨에 과할 정도로 공을 들이는 의도는 뻔합니다. 이 만남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10월 11일) 참패와 제22대 총선(2024년 4월 10일) 사이에 기획됐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설명해 줍니다.

보수 결집을 통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드러난 정권 심판 분위기가 내년 총선까지 이어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정치적 계산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기 손으로 감옥에 보냈던 중범죄인을, 갑자기 표변해 칙사 대접하고 나서는 행동을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물론, 윤 대통령의 이런 속셈이 성공을 거둘지 어떨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가 용을 쓴다 해도 주권자인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검사 때와 180도 달라진 박근혜씨에 대한 그의 태도는 법과 국민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과 박씨는 검사와 범죄자로 만난 악연이 있지만, 사실 매우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권위주의적이며 소통을 싫어한다'는 점입니다. 소통은 수평적 관계를 전제하는 개념이므로 권위주의와 소통 혐오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이런 특성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행동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좀체 제대로 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는 언어 구사는, 다른 사람이 나서 말뜻을 다시 설명해 줘야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유로운 문답이 오가는 기자회견을 매우 싫어합니다.

윤과 박, 권위주의적이고 소통 혐오라는 공통점

두 사람의 권위주의·불통의 증상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명예훼손죄로 엮어 틀어막으려는 태도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 때 '7시간'의 공백에 의문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명예훼손죄로 기소하도록 했습니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는 당사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지만, 박씨는 끝내 처벌 의사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7시간의 공백에 관해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타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난 2015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가토 전 지국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이 사건으로 한국의 언론자유에 대한 국제적 평판은 급락했고, 한일 사이의 외교 분쟁마저 일어났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5년에 언론자유를 탄압한다는 이유로 한국을, '자유·민주주의·인권 등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에서 '중요한 이웃 나라'로 격하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가토 지국장의 완승(무죄)으로 끝났지만, 지도자 한 사람의 잘못이 나라에 얼마나 큰 손실을 초래하는지 잘 보여줬습니다. 그로부터 1년여 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금 박근혜씨의 잘못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9월 초 갑자기 '김만배-신학림 사이의 사적 대화' 중 주요 내용을 추려 보도한 <뉴스타파>를 겨냥해 수사를 개시했습니다. 이 보도가 '대선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적인 허위 인터뷰였다'고 거창하게 떠벌이고 있지만, 이 사건을 전담하는 서울중앙지검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팀장 강백신 검사)이 내건 혐의의 핵심은 당시 대선 후보였던 윤 대통령의 명예가 이 보도로 훼손됐다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이 대장동 수사를 하면서,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브로커 조유형씨에게 커피를 타 주지 않았는데도 커피를 타 준 것처럼 왜곡 보도했다는 주장입니다. 보도는 '왜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사건을 봐줬느냐'라고 묻고 있는데, 검찰은 '커피를 타 준 사람이 윤 대통령이 아니라는 점'만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코미디 같은 일로 <뉴스타파>를 비롯해, <제이티비시> <리포액트> <뉴스버스> <경향신문> 5개 언론사 7명의 전·현직 기자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이 영장을 발부받아 이들 기자의 집을 수색하면서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일마저 벌어졌습니다. 보도와 관련해 언론사가 아닌 기자 개인의 집을 수색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여태까지 한국 언론사에 없었던 신종 언론 탄압수법입니다. 세계의 언론계도 이 사태를 싸늘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박근혜의 '산케이 기자 탄압'에서 교훈 못 얻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이 9월 14일 오전 서울 중구 독립언론 뉴스타파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한 가운데, 직원들이 압수수색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본질적으로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사건의 판박이입니다. 윤 대통령이 처벌 의사가 없다고 밝히면 끝나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간접적으로 수사를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김만배-신학림' 보도와 관련해 "희대의 정치공작 사건"이라는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성명이 윤 대통령의 의중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언론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가짜뉴스 처벌 광풍, 공영방송 장악 무리수의 진원지도 역시 윤 대통령입니다. 윤 대통령의 이런 비뚤어진 언론관을 병풍 삼아, 이동관 방통위원장과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칼춤을 추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도 총선을 앞두고 비판 언론과 공영방송을 무력화 또는 장악하려는 윤 대통령이 자초한 것입니다.

"역사는 되풀이하지만,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박근혜씨를 짧은 기간에 두 번이나 만나는 파격을 지켜보면서, 그가 박 전 대통령이 저지른 '7시간'의 비극을 '커피 한 잔'의 희극으로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전혀 그런 조짐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참고로 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형사(刑事)로 처벌하는 나라는 문명국 중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밖에 없습니다. 미국 국무부가 매년 내는 인권 보고서에서도 한국 정부가 명예훼손죄를 이용해 표현의자유를 제약한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아예 형법에서 명예훼손죄를 폐지함으로써 이런 야만적인 언론 탄압을 원천 봉쇄하는 게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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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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