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도 혀를 내두른 일... 캐디들의 일상은 이렇습니다
[김유리]
▲ 캐디 총파업 결의대회 2022년 7월 29일 진행된 캐디 총파업 결의대회 |
ⓒ 전국여성노동조합 |
가을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날씨이다. 청명한 하늘은 골퍼에게 라운딩하기 좋은 날씨다. 산속 굽이굽이 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골프장 클럽하우스와 탁 트인 푸른 잔디가 펼쳐진다. 이런 이국적인 풍경을 일터로 삼는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밝은 미소를 띠며 즐겁고 안전한 라운딩을 하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캐디들이다. 그러나 밝은 미소 뒤에는 성차별과 열악한 근무환경이 숨겨져 있다.
아직도 성차별이 만연한 골프장
골프는 몇 년 전만 해도 접대 목적으로 즐기는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 때문에 캐디는 전문직 노동자가 아닌 "사장님 나이스샷"만 외치며 고객의 기분을 맞추는 한 여성으로 묘사되었다. 그래서 명문골프장의 암묵적 기준은 미혼의 예쁘고 젊은 여성 캐디가 많은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당시의 캐디 정년은 40세였다.
최근에서야 골프가 대중화되며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골프장의 성차별은 깊숙이 존재한다. "첫라운딩"을 첫 성관계를 가진 기생이 비녀를 꽂아 머리를 올리는 모습에 빗대는 "머리 올리다"라는 표현은 아직도 사용되고 있고, 최근 일부 골프장은 남성만 정회원 가입이 가능하도록 하여 국가인권위의 시정 권고를 받았다. 이 외 골프장 관계자가 술자리에 캐디를 불러 술을 따르게 시켰다는 상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캐디를 성희롱했다는 언론보도 등 아직도 골프장은 성차별이 존재한다.
40도가 넘는 폭염을 버텨야 하는 "육체노동"
최근 박세리 선수가 본인의 유튜브에 캐디 일일체험을 하는 영상을 올렸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프로골프선수도 캐디가 "쉬운 일"은 아니라며 쩔쩔매는 모습이 나온다. 카트 운전도 해야 하고, 볼도 닦아야 하고, 골프채도 가져다주고, 공 치는 방향도 알려주는 등 정신없이 일하다 나중에는 고객에게 직접 볼 좀 닦고 있으라고 시키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캐디 한 명이 4명의 고객의 경기를 보조하는 일은 누가 봐도 쉬운 일은 아니다.
골프장 18홀은 약 6.3Km로 서울시청에서 국회의사당까지의 거리이다. 카트를 타고 일부 이동하기는 하지만 만만치 않은 거리를 하루에 두 번 걷기도 한다. 또한, 쇳덩이로 만든 골프채를 최소 5개를 들고 움직이고, 앉았다 일어났다, 언덕을 올랐다 내려왔다 하니 인대파열은 기본이고 무릎관절이 닳아 없는 캐디도 많다. 캐디에게 근골격계 질환은 고질병이다.
근래에 캐디의 노동강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날씨다. 안개가 낀 날은 앞이 보이지 않아 무섭고, 비가 오면 몸이 무거워서 힘들다. 올여름같이 계속되는 폭염과 장마는 최악이다. 골프장 특성상 그늘을 피할 곳이 없어 내리쬐는 햇볕과 올라오는 지열을 짧게는 4시간 길게는 8시간 이상 그저 맨몸으로 버텨야 한다. 그래서 캐디는 겨울보다 여름에 온몸을 더 꽁꽁 싸맨다. 고글, 워머, 모자, 긴팔로 온몸을 감싸 인사를 해도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다. 옷이 땀에 젖어 속옷이 비치다 보니 생리대를 가슴에 두르기도 한다.
폭염으로 쓰러지거나 어지러움과 같은 증상은 일상이다. 병가자가 속출하여 캐디 가용수가 적어져 평소보다 더 많은 근무를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선 성수기에 열심히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희롱, 폭언에도 웃으며 견뎌야 하는 "감정노동"
캐디는 서비스직이다. 이들은 고객과 최접점에서 감정상태를 살피고 기분을 맞춰줘야 한다. 그래서 세상의 별별 진상들을 다 만난다. 평소 점잖은 사람도 골프장만 들어서면 진상을 부린다. 아직도 골프장은 "고객이 왕"이라는 인식이 완고하다. 캐디의 근무환경을 보면 고객은 왕이 될 수밖에 없다.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캐디는 홀로 낯선 고객 4명과 함께 다닌다. 그리고 경기를 모두 마친 후 캐디피를 받는다. 고객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상하게 만든다면 18홀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지옥을 경험한다.
악성고객은 사소한 이유로 컴플레인을 걸어 캐디가 벌을 받게 하거나, 공을 일부러 다른 곳으로 쳐 주워오게 하거나, 짧게 쳐서 진행을 늦추는 방법으로 캐디를 괴롭힌다. 욕을 하며 골프채를 집어 던지거나 휘두르며 위협하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캐디 교체를 당하거나 해고가 되기도 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캐디에게 고객의 감정상태는 생계와 연결된다.
그렇기에 고객의 성희롱은 참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고객이 바지를 벗고 노상 방뇨하는 걸 보거나, 음담패설을 듣는 건 일상이다. 실수인 척 신체접촉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름을 확인하겠다며 가슴의 명찰을 손으로 건드는 손님이 많아 대다수 캐디의 명찰은 모자에 있다.
간혹 고객이 도(?)를 넘어 회사에 신고해도 캐디더러 참으라는 대답만 돌아오고, 고객은 회사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캐디를 괴롭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고객들은 이미 서로 입을 맞춰 그러지 않았다며 부정한다. 카트에는 블랙박스가 없어 영상, 음성을 제출할 수도 없다.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인 캐디의 진술뿐이다.
성차별, 성희롱, 괴롭힘은 남녀고용평등법과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노동청에 신고해보지만 "캐디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므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라는 답변만 듣고 돌아온다. 시민이 노동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정부는 보호해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캐디는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와 고객의 말 한마디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도 보호받지 못하기에 성차별, 성희롱, 괴롭힘 같은 부당한 상황에 목소리 내지 못한다. 강도 높은 육체노동과 감정노동 그리고 부당대우를 견디고 버티는 것이 캐디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캐디,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라는 희망
캐디에게도 사회적 보호망은 존재한다. 바로 노동조합이다. 캐디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는 아니지만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된다. 노동조합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으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은 보장받을 수 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소속의 캐디노조가 이룬 성과만 봐도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
최근 단체협약을 맺은 88CC분회는 카트에 블랙박스를 일부 설치하기로 했다. 드림파크CC분회는 골프백을 차에 실어주지 않았다며 캐디를 폭행하고 난동을 부린 고객을 내장정지를 시켰고 이후 캐디들이 배치거부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상록CC분회는 캐디의 무급노동인 당번을 없애고, 배토 횟수를 절반 이상 줄였다.
이외 위 캐디분회는 고객으로부터의 성희롱, 폭언, 폭행 및 직장 내 괴롭힘 등의 폭력행위로부터 보호받으며, 육아휴직과 출산휴가도 보장된다. 또한, 회사가 부당하게 벌칙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경기보조 중 사고로 인해 캐디에게 구상권이 청구되지 않도록 했다. 이는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삼권을 행사했기에 얻은 성과이다.
평등하고 안전한 골프장이 되기를
캐디들의 소망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캐디가 인간으로서 존중받기를 원한다. 정부 및 골프장, 고객 등 이해관계자들이 평등하고 안전한 골프장을 위해 성차별적인 문화와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를 바란다. 또한, 캐디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필요하다.
더는 캐디가 산속에 감춰진 여성노동자가 아니어야 한다. 캐디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고, 전문직으로 존중받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전국여성노동조합이 캐디의 울타리가 되어 드리겠다. 모든 캐디가 오늘도 사고 없이 안전히 일을 마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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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1,12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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