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친구들 눈치 보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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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는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다.
친구들의 눈치를 보고 비위만 맞춘다.
T의 마음을 들어보니 솔직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의견을 주장하면 친구들이 다 자기를 싫어해서 외톨이가 될 거 같다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지내다 보니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에 '기가 빨린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엄마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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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는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다. 집에서 엄마와 매일 같이 전쟁이다. 작은 일에도 꼬투리를 잡고 짜증을 내고 심지어 엄마에게 욕을 하기도 한다. 엄마도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이 지경에는 화가 솟구쳐 참을 수가 없다.
하지만 T는 학교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너무나 순하고 친구들에게 자기주장을 해본 적도 없고 화를 내거나 거절을 해본 적도 없다. 친구들의 눈치를 보고 비위만 맞춘다. T의 마음을 들어보니 솔직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의견을 주장하면 친구들이 다 자기를 싫어해서 외톨이가 될 거 같다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지내다 보니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에 ‘기가 빨린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엄마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먼저 T에게는 친구들의 자신에 대한 평가보다 스스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보듬고 존중해 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구체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가장 시급하게 익혀야 할 3문장 기술은 다음과 같다.
자신을 표현하는 기본 공식이다. 때때로 사건이 한창 진행 중일 때는 차분히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런 간단한 공식을 외워두고 글로 써보게 한다. ‘네가 0000해서(또는 했을 때) 난 0000 했어(자신의 기분을 표현), 왜냐하면 0000 했기 때문이야.’
첫 번째 문장의 빈칸에는 당신의 감정을 건드린 상대의 행동을 적는다. ‘네가 그런 식으로 말해서, 네가 내 물건을 빌려 간 뒤 돌려주지 않아서’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상대의 행동을 적는다. 단 상대의 의도에 대해 어떤 단정도 내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네가 날 만만히 생각해서” “네가 잘난 척하면서”란 표현은 곤란하다. 두 번째 문장에서는 잠시 자신이 어떤 기분인지 점검하고 가능한 한 명료하게 그 감정을 적어보자. ‘난 화가 났어’ ‘난 억울했어’ ‘난 마음이 쓸쓸한 기분이 들었어’ ‘난 질투가 났어’ 등과 같이 한두 가지로만 좁혀 명확하게 감정을 표현해 보자.
자신의 감정에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세가 중요하므로 “네가 날 화나게 해”와 같은 말로 상대를 탓해선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상대에게 책임을 주었을 때 상대는 비난받거나 공격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비난이나 공격에 대해서는 방어태세로 무장하여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도 공격하게 되어 대화보다는 싸움이 되기 쉽다.
세 번째 문장에서는 “왜 저 행동이 이런 기분을 들게 하는 걸까” “이런 기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라고 자문해 보자. 예를 들어 ‘왜냐하면 네가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거든’ ‘왜냐하면 네가 날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왜냐하면 내 감정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등등이다. 이와 같은 3단계를 반복해서 써보고 복기하면서 연습해 보자. 그래야 필요한 순간에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 있는 태도로 눈 맞춤을 하고, 중언부언 하지 말고 짧고 명확히 말하는 게 좋다.
자기표현 기술도 완벽하게 습득할 때까지는 실수와 서툰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 잘하다가 미끄러지기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때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보라. 처음부터 성큼성큼 걷는 아이가 없다. 넘어지고 무릎이 까이면서 일어나고, 다시 한 발 내디딜 때 가족들의 박수를 받으며, 한발 한발 나아가고 드디어 뜀뛰기도 하지 않던가. 감정 표현 기술을 연습하는 과정도 이와 같다. 어색함과 민망함과 좌절감을 겪으면서 차츰 능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진다.
이호분(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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