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전공의의 반문 "우리만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건가요?"
세대 갈등은 여러 세대가 모인 곳 어디에든 있는 법이다. 병원 역시 예외는 아니다. 도제식 교육 문화가 자리 잡은 병원 사회에서도 기성세대 교수와 새로운 세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벽을 허물려면 대화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들어보기로 했다. 上편(‘MZ 전공의’ 눈치 본다는 의대 교수들… “교수가 왕이라는 건 옛말”)을 통해 MZ세대 전공의에 대한 기성세대 교수들의 생각을 들어봤다면, 下편에서는 당사자인 전공의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 쪽 편을 든다거나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거니와 그럴 이유도 없다. 이렇게나마 두 세대가 대화해보길 바랄 뿐이다. (편집자 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 원해… 당사자들도 변화 체감
MZ세대 전공의의 눈에도 그 시절(지금 교수들이 전공의이던 시절) 전공의와 지금의 전공의는 다르게 비춰진다. 과거엔 희생, 사명감 등을 명목으로 대가 없는 야근과 과로가 당연시됐다면, 지금은 전공의들도 노동에 대한 정직한 보상을 원한다. 의사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해졌으며, 도제식 교육에서 비롯된 수직적 조직·업무문화보다는 수평적 관계와 양방향 의사소통을 지향한다. A전공의는 “전공의특별법 제정 전후를 모두 경험한 전공의는 대부분 변화를 체감할 것”이라며 “과거와 달리 전공의들이 자신의 노동자성을 자각하고, 비정상적인 상황이 불법적으로 지속됐을 때 어떻게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B전공의 또한 “직업윤리, 사명감이 강조되는 건 지금 세대 또한 마찬가지지만, 그에 못지않게 근무조건, 여가 등도 중요해졌다”며 “‘의사라면 사명감을 갖고 세상을 위해 치열하게 일하라’는 이야기가 틀린 건 아니나, 지금 세대에게 사명감만으론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고 했다.
여느 MZ세대 직장인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보수적·수직적 조직 문화가 오랫동안 깊숙이 자리 잡은 병원이기에 다소 생소하다. B전공의는 “의사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시대가 바뀌지 않았나”라며 “인터넷, SNS만 봐도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다 볼 수 있다. 비교까진 아니어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성원들이 바뀌면서 병원 업무·조직문화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전과 비교하면 근무 시간, 휴가·휴직 등과 관련된 규정이 조금씩 지켜지고 있으며, 상하관계에서도 말이나 행동에 있어 서로 조심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A전공의는 “법적으로 전공의 근무 시간이 대폭 단축되면서 연속 근무가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형식적으로라도 신경을 쓰게 됐다”며 “세대에 상관없이 행동이나 발언에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고 말했다.
◇근로로 인정받지 못하는 근로… 교수들 언어폭력도 여전
바뀐 세대 덕에 전공의들의 업무 환경이 조금이나마 개선되고 있는 건 긍정적인 변화다. 다만 말 그대로 지금은 ‘형식적으로 신경을 쓰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아직도 상당수 전공의들은 주치의로 담당하는 환자가 있으면 아침 6시에 출근해 저녁 7시가 되던 밤 12시가 되던 남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A전공의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다른 직장인도 겪는 일이이다. 다만 전공의는 이 같은 업무를 근로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곤 하나, 의사 사회 특유의 수직적·폐쇄적 문화와 그에서 비롯되는 업무 떠넘기기, 언어·비언어 폭력 등의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다. 성인지감수성이 떨어지는 발언이나 언어폭력은 어떤 직장에서든 용인될 수 없지만, 유독 위계질서가 강한 병원에서는 다른 직장과 달리 그런 일들이 곧잘 일어나고, 그렇다고 해도 문제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전언이다. 응급상황이 빈번한 업무 환경과 도제식 교육, 그에 따른 강한 위계질서 등 직업 특성을 감안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구태다. B전공의는 “폐쇄적인 문화 때문인지 의료계는 윤리적 기준이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며 “과거에 비해 폭력이 줄었지만 근절됐다고 말하긴 어렵다. 폐쇄적 분위기로 인해 외부로 드러나진 않았을 뿐, 내부에서는 다들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성세대가 이야기하는 MZ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할 말은 한다’는 거다. 그러나 상하관계가 명확한 교수-전공의 관계에선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문제 제기할 게 있어 몇 마디 나누다보면, 금세 대화 의지가 사라질 정도로 생각 차가 크다는 게 전공의들의 설명이다. A전공의는 “‘전공의 하는 일에 비해 이 정도 연봉이면 먹고 살만한데 왜들 불만이 많은지 모르겠다’, ‘병원에서 전공의 월급을 충당하는 게 부담된다’는 이야기도 들어봤다”며 “의료직 중 가장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노동집약적 업무를 하는 실정인데, 이런 말을 들으면 쓴웃음만 나온다”고 말했다. B전공의 역시 “‘옛날엔 1년에 3번 집 갔다’, ‘주말에 집에 안 가고 병원에 살았다’와 같은 말을 들으면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지금 세대에게 설득력 있는 말로 들리진 않는다”며 “서로 생각이 다르고, 이야기해도 좋은 답변을 듣지 못할 걸 알기 때문에 애초에 터놓고 대화하기보단 맞추려 한다”고 했다.
◇일방적 희생 강요는 안 돼… 합당한 보상 필요
지금 세대 전공의들의 생각과 행동이 전적으로 옳다고 볼 순 없다. 불합리에 적극 맞서고 현실적인 주장을 하는 것까진 좋으나, 그 이유가 개인의 편익에 다소 치우친 점, 과거에 비해 의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점 등은 분명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본인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일이 같은 세대, 나아가 사회구성원 전체가 동의할 수 있는 일인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그들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 의지 또한 갖고 있다는 거다. MZ세대 전공의가 기성세대 생각처럼 ‘자기 생각만 하는 철부지’는 아닌 이유다. B전공의는 “과거 젊은 세대는 ‘이 사회를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들 개인이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며 “다음 세대에 어떤 사회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지, 이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노동자이기 전에 수련자로서 기성세대 교수들에게,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에 전하고자 하는 당부도 있다. A전공의는 “젊은 세대라고해서 무조건 편안함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정해진 임금 수준에서 업무 강도를 가능한 낮추고자 하는 게 젊은 세대만의 특징은 아니다”라며 “많은 전공의들이 수련 과정 중 학습 기회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기술이 발달해 단순 반복 작업과 같은 업무가 줄어든다면 전공의가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동시에, 피교육자로서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B전공의는 “아직까진 사명감과 희생정신이 있는 사람이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더 이상 지금과 같은 희생을 기대할 수 없다”며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의료 인력 이탈로 인한 필수·지역의료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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