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경제활동에 관한 30년이 넘는 연구
[설혜영 기자]
생각의 틀을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젠더 문제에 대한 내 고정관념은 저자 클라우디아 골딘의 생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했다. 처음 <커리어와 그리고 가정>을 읽었을 때 나는 그녀가 기나긴 여성들의 평등을 위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더 늘어난 성별 임금 격차를 보여주고, 성별 임금 격차의 원인이 젠더 불평등이 아닌 탐욕스러운 일자리라는 것을 밝힌 점이 신선하다고 느꼈다.
▲ 커리어 그리고 가정 책표지 |
ⓒ 생각의힘 출판사 |
이 연구는 저자인 골딘이 30년 전 하버드 교수 시절,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를 다룬 <젠더 갭의 이해>라는 책을 출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골딘은 1997년 <커리어 그리고 가정: 대졸 여성들, 과거를 보다>라는 논문을 쓰면서 100년간 대졸 여성들의 결혼과 출산 그리고 커리어 추구에 대한 경험을 다루게 된다.
이때 사회적 변화가 만든 평등의 물길 '조용한 혁명'을 주의 깊게 살펴본 저자는 '하버드 앤 비욘드' 프로젝트와 MBA 취득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참여하며 전문직 여성들이 남성에게 뒤처지는 이유를 분석한다.
그리고 2014년 "거대한 젠더 수렴: 그 마지막 장"이라는 전미경제학회장 강연을 통해 평등의 미래를 예견하는 그의 견해를 발표한 것이다. <커리어 그리고 가정>은 이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자그마치 30년이 넘는 연구의 산물이다.
평등의 길을 연 '혁명의 알약'
▲ 1970년대 미국 여성들의 직업 변화 (출처:생각의힘 출판사, 커리어 그리고 가정) |
ⓒ 생각의힘 출판사 |
이 변화는 커리어에 도전할 수 있는 넉넉한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소득이 더 낮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직업에 자아 정체성을 부여하게 됐고, 임금에서 평등을 관철하는 변화로 이어졌다.
또한 남녀 모두 여성을 가정에 종속시키던 가치관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였다. 무엇보다 골딘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변화는 60~70년대를 빛낸 급진적인 여성 단체들의 시끄러운 혁명이 아니라 피임약과 같은 '조용한 혁명'의 결과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우리에게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효과적인 피임수단은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라는 말이 그 의미를 짐작게 한다.
탐욕스러운 일자리가 만든 사라지지 않는 격차
어렵게 일궈온 평등의 역사가 꺾인 것은 1990년대 들어 전문 직종에서 소득 격차가 커지면서부터다. 이 격차의 원인은 기존의 젠더 격차와는 명시적인 차별과 편견이 아닌 경쟁에 달려들고 불규칙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탐욕스러운 일자리"였다.
여성에게는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과 일시적인 휴지기는 임금과 커리어에 극명한 차이를 낳는다. 저자는 성별 소득 격차를 동태적인 개념으로 보고 변화의 추이를 살폈다.
시카고 대학이 MBA 취득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취득 후 13년이 지난 시점에서 여성 소득은 남성 1달러당 64센트로 떨어지는데 아이가 없는 여성(6개월의 휴직이 필요 없었던)의 경우 동등했다.
이러한 추세는 북유럽국가들에서도 확인되는데 스웨덴의 '출산이 엄마 아빠의 소득에 미치는 영향 조사'의 아이가 15살일 때 남성이 여성보다 32% 더 번다는 조사 결과는 복지제도의 차이에도 사회경제적 변화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성별소득격차는 증상일 뿐이며, 소득 격차는 커리어 격차의 결과이고 커리어 격차는 공평성이 깨지는 데서 비롯된다."
골딘은 전문 직종의 성별소득격차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 커리어의 변화가 성평등의 역사를 역전시킬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골딘은 이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한다. 프렌차이즈 약국의 등장, 약의 표준화, 정보기술의 사용으로 서로가 대체재가 되어 줄 수 있는 구조로의 변화가 만든 성평등을 이룬 약사 직종을 사례로 들면서 노동구조의 변화를 촉구한다.
코로나 팬데믹 하에서 재택근무가 확산됐고 무엇보다 기업이 탐욕스러운 일이 유발하는 비용을 인식하게 됐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1990년 초 딜로이트와 EY 대형회계법인은 유연근무제, 멘토링, 여성네트워크를 시도하여 여성 파트너 비중을 늘린 것처럼 유연한 일자리를 향한 기업의 변화는 시작된 것이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올라타기
커리어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잠재력을 키우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의 측면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미국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국가성평등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상장법인의 성별임금격차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게다가 OECD 1위의 성별임금격차와 0.86이라는 기록적인 출산율의 무게가 변화의 상상력마저도 꺾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하지만 "혁명의 알약"이 이뤄낸 것처럼 급격한 변화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시끄러운 혁명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변화에 주목하고 그 영향력을 예견할 수 있는 치밀함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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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여성의정 기관지 18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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