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규제' 신의료기술평가…"불투명한 이중 규제"vs"검증은 필수"
허가 후 또 허가받는 '중복 규제' 비판
DTx·AI 산업 저해 원인 지적
위원회 불투명성도 지적 나와
'아직 미검증 기술' 반론도
디지털 치료기기(DTx), 인공지능(AI) 의료기기 등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대표적 '킬러 규제'로 꼽히고 있는 신의료기술평가가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앞으로의 개선 방향을 논하기 위해 주무 기관인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서 주최한 연례학술회의에서는 "업계를 고사시키는 킬러 규제"라는 업계 측의 입장과 "검증이 우선"이라는 기조의 반대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신의료기술평가는 의료 분야에서는 유일하게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킬러 규제 톱 15' 중 하나로 꼽히기까지 했다.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 검증해 허가한 제품임에도 재차 검토하는 '중복규제'라는 게 산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최근 정부는 위험성이 낮은 디지털 치료기기(DTx), 인공지능(AI) 의료기기 등에 대해 보다 신속한 시장 진입을 허용할 수 있는 '선진입 의료기술 제도'를 만들려는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에 14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열린 2023 NECA 연례학술회의 '네카가 듣는다'에서는 지난 8월 열린 '신의료기술 선진입-후평가 제도개선 공청회'에 이어 선진입 제도의 필요성을 둘러싸고 격론이 오갔다.
의료계 '미검증 기술' 혹평…"실세계 검증 필요해"
의사 출신 연자들은 대부분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해 보수적인 평가를 했다. 연준흠 인제대 의대 교수는 "유효성에 더해진 안전성을 봐야 한다"며 "검사가 유해하지 않아도, 검사 결과의 잘못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의료기술에 대해 "아직 미검증된 '미검증 혁신의료기술'이라고 불러야 한다"고까지 강하게 질타한 그는 "어떤 해를 끼칠지 모르는 만큼 장벽이 있어야 하고, NECA에서 의료기술 평가의 본질을 유지하되 개발 초창기부터 관여해 가이드라인을 잘 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임영석 울산대 의대 교수(NECA 근거창출전문위원장) 역시 "혁신의료기술은 완벽히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기술"이라며 "일정 기간 쓰인 기술이 신의료기술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근거가 부족한 기술을 국민들이 사용한 것으로 결론 날 수밖에 없다"고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어 제한적 의료기술→혁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신의료기술로 제도의 허들이 점차 완화되면서 보다 허들이 낮은 쪽으로 신청이 쏠리는 현상도 관찰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실세계증거(RWE)'와 '실세계데이터(RWD)'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플라시보 외에도 임상에서는 관리가 잘 이뤄지며 증상이 호전되는 '호손(Hawthorne) 효과'도 나타나는 만큼 무작위 배정 임상(RCT) 등의 검증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업체에서 자체 모니터링을 하되 신뢰도 확보 방안을 고려하고 책임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며 "안전성 문제 발생 때는 즉시 모니터링을 나갈 수 있는 체제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계 "생존의 문제"…평가의 불투명성도 지적
반면 산업계에서는 현행 평가 제도는 업계를 말려 죽일 수 있는 심각한 규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진환 에임메드 대표는 "생존의 문제"라며 "허가 후에 다시 신의료기술평가를 받는 동안 기업은 자금 회수 압박을 받고 견디기 어렵게 된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에임메드가 RCT 방식 임상을 거쳐 개발해 지난 2월 식약처의 승인을 받은 제1호 국산 DTx '솜즈'는 허가로부터 9달이 지났음에도 첫 처방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임 대표는 "의료 시스템은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하는 만큼 보고 또 봐야 한다"면서도 "침습적이지 않은 디지털 의료제품도 안전성을 다시 봐야 한다는 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의료제품을 위한 별도의 'D기술 트랙(D-tech Track)'(가칭) 같은 제도의 신설을 주장하는가 하면 산업계 인사가 평가 과정에 포함돼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고도 전했다.
임재준 뷰노 법무정책실장 역시 급여 목록과 비급여 목록이 존재하는 국내 의료 시스템의 특성상 "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사실상의 허가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실상의 국가 행정작용인 만큼 신의료기술평가제도와 관련한 위원회에 소속된 위원들의 명단과 함께 상세한 회의록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현행 제도에 대해 탈락한 회사에 탈락 사유를 꼭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비상식적 제도라는 규탄의 목소리가 높다. 임 실장은 "이미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해외의 의료기술평가기관은 위원회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며 "회의록이 공개된다면 어떤 우려와 제안이 있었는지 알 수 있어 기술개발하는 입장에서도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효과 없을 땐 환불해줘야"…정부 "개선책 마련할 것"
정부와 시민단체는 이 같은 지적을 일부는 수용하고, 일부는 유보하는 태도를 취했다.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장은 "비급여는 환자가 전액을 부담하는데 유효성 측면에서 결과가 안 나왔을 때의 위험성에 대한 부담은 누가 해주냐"며 "근거가 미충족됐을 때는 환불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위원회 구성과 공개 범위에 대해서는 "위원 명단과 회의 결과 공개에는 동의한다"며 "의사결정 체계 내에 산업계 인사가 들어오는 건 평가를 받아야 할 대상이 들어오는 것이기에 맞지 않는다"고 반론했다.
"환자들이 혁신 또는 선진입 의료기술에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지 않도록 예방책을 만들겠다"고 강조한 신채민 NECA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장은 "너무 산업계 쪽으로만 제도를 개선한 것 아니냐고 해서 환자 동의 등 메커니즘을 만들고 있다"며 "위원 명단·회의록 공개 등은 과거 떨어진 업체에서 위원을 찾아가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며 문화가 성숙하면 언젠가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윤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선진입-후평가 제도 개선에 대해 "안전성이 보장된 기술을 대상으로 시장에 조금 더 빨리 들어가서 근거를 쌓아 유효성을 검증하고 제대로 된 평가와 보험 등재를 거쳐 환자들에게 쓸 수 있는 게 골자"라며 "궁극적으로 평가의 허들이 낮아지거나 등재 제도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외에 다양한 업계 등의 제언에 대해서도 "충분한 정보가 공개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나가겠다"며 "환자 안전에 대한 대비책, 환불 등의 문제도 엄정히 관리하고 개선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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