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도 출간되어 아직도 아마존에서 팔리는 책

김홍규 2023. 11. 1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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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하이트가 쓴 <가르침의 예술> (아침이슬)을 읽고

[김홍규 기자]

▲ 책 <가르침의 예술> 표지 길버트 하이트(Gilbert Highet)가 1950년에 쓴 책 <가르침의 예술> 표지이다.
ⓒ 아침이슬
쉬운 내용인데 유독 읽기 어려운 책이 있다. 길버트 하이트(Gilbert Highet)가 쓴 <가르침의 예술>도 내게 그런 책이었다. '뼈를 때리는' 문장을 만날 때마다 한참을 꼼짝하지 못했다. 지난 교직 생활이 떠올라 읽던 책을 여러 번 덮었다. 다음 인용 문장들도 내 심장과 뇌를 오랫동안 붙잡아 두었다.
 
"가르침이란 극히 미묘한 것이다." (책, 17쪽)
"기억하라, 학생들은 그것을 아주 단번에, 너무도 민감하게 알아차린다는 것을" (책, 36쪽)
"철부지 어린아이에서부터 열심히 공부를 파는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의 학생들은 자기들을 싫어하는 교사는 귀신같이 알아낸다." (책, 92쪽)
 
위 인용문과 같은 글들은 마치 오래 전 정말 형편없던 교사 시절 학교 생활을 같이 한 옛 학생들을 만난 것처럼 몸 둘 바 모르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과거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떠올라 '미안했다', '고맙다'라는 말만 반복하다 어설프게 학생과 헤어졌던 아픈 장면들이 책을 읽는 동안 자주 소환됐다. '옛날보다는 나아졌잖아!'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보았지만, 결국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다'라는 결론에 닿으면 가슴이 저린다.

몇 년 전부터 앞으로 내 학교 생활 상한선은 5년 정도라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소통하지 못하거나 더는 그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깨닫게 되면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한 상한선이다. 그간 몇몇 학생들의 후한 평가에 기대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지 못했다.

글쓴이가 책에서 한 말 상당수는 교사로 부끄럽게 살았던 지나간 날들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좌절감을 맛보게 했다. 너무 오래 학교에서 지낸 건 아닌지, 떠날 때를 한참 놓친 것은 아닌지, 내가 정한 상한선을 이미 넘은 것은 아닌지 마음이 복잡하다.

<가르침의 예술>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길버트 하이트(Gilbert Highet)가 1950년에 펴낸 책이다. 교사 자질, 교수법, 위대한 교사들과 제자들, 일상생활 속 가르침 등을 폭넓게 다룬 책이다. 그리스 시대부터 글쓴이가 살던 시대까지 시간을 넘나든다. 대학은 물론 어린이, 청소년 교육도 담겨 있다. 아마존 도서 출판 이력과 후기를 보면, 이 책이 지닌 생명력을 알 수 있다.

가르치는 '방법'의 심연을 보여주는 책
 
"이 책은 오로지 가르치는 '방법'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책, 19쪽)
 
내가 만난 대다수의 교사는 교수법에 관심이 많았다. 나도 한때 그랬다. 어떤 기술을 사용하면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어떤 도구나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집중시킬 수 있을까?

교수 방법을 다루는 수많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연수도 '기술'과 '기법'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한때 초등학교에서 유행하던 스티커, 칭찬 도장, 과자 보상이 요즘 고등학교에서 보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가르침의 예술>은 위 인용문에 있는 '가르치는 방법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라는 선언과 달리 가르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과 철학까지 다룬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교수법을 건너뛰지도 않는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예수, 예수회 수사들, 그리고 수많은 유명 교사(교수)들의 수업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래 인용 글처럼 구체적인 단계나 기술을 언급하기도 한다.
 
"교사는 가르칠 때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교과를 준비한다. 둘째, 그 교과를 학생들에게 전달한다. 셋째, 학생들이 틀림없이 잘 배웠는지 확인한다." (책, 95쪽)
"강의를 준비하고, 강의에 앞서 자신의 강의를 검토할 때 그는 완급을 어떻게 조절할지 미리 염두에 둔다." (책, 134쪽)
 
그런데도 내가 이 책을 철학을 다뤘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글쓴이가 직접 교사의 자질과 덕목을 꼽은 부분도 있기는 하다. 길버트는 훌륭한 교사에게 필요한 덕목이 '기억력', '의지력', '자애로움'이라고 말한다(책, 84~93쪽). 또한, "19세기와 20세기 초 위대한 교사들이 공유하는 특징"으로 '예리한 비판 정신', '인간에 대한 사랑과 너그러움', '풍부한 지성'을 들었다(책, 251~261쪽).

하지만 읽는 사람의 심장을 울리고 뇌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훌륭한 교사들이 어떤 덕목과 특징이 있었는지를 열거하는 대목보다 훨씬 많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아래에 옮긴 글과 같은 말들은 가끔 '다 아는 얘기'로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하지만 가르침과 배움에서 매우 중요하다. 밝은 눈을 가진 사람이나 책은 모두가 아는 듯한 이야기를 통해 '심연'을 보여준다. 길버트는 가르치는 방법의 심연에 닿아 교육의 본질을 끌어 올린다.
 
"교사를 육성하고 고용하는 진정한 목적은 학생이 공부를 하도록 '도우라'는 것이다. 그들이 반드시 공부를 하도록 '만들' 필요는 없다."
(책, 157쪽)
"심지어 나쁜 교사도 … 따뜻함을 품고 있으면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다. … 학생을 너무 좋아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잘 가르치게 된다."
(책, 256쪽)
 
가르침과 배움의 본질에 관해 생각하게 한 책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마음이 들지 않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1950년에 나온 책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경쟁'과 '전통'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은 동의하기 어렵다(책, 171~193쪽). 글쓴이는 '협력을 바탕에 둔 선의의 경쟁'이라는 전제를 달고, 전통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 다각적으로 언급했다.

그런데도 최소한 한국에서는 가르침과 배움에서 이 두 가지가 차지하는 부정적 효과가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을 '자원'이나 '상품'으로 여기고, 선을 넘은 경쟁이 치열하게 학생들을 괴롭힌다. 아울러 학연과 지연 공동체가 넘쳐 흘러 교육을 망친다.
 
"만일 당신이 안내심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도와주고 싶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아무리 고집 세고 골치 아픈 학생이라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결국에는 달라질 것이다." (책, 190쪽)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당신의 생각이 혹 오용되거나 잘못 이해될 소지는 없는지 따져보고,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게 최선이다." (책, 328쪽)
 
<가르침의 예술>은 1950년대라는 시간적 한계와 미국이라는 공간적 제약을 넘어서는 가르침과 배움의 본질을 고민하게 하는 힘이 있다. 위에 옮긴 문장들도 그런 힘을 지닌 많은 내용 가운데 일부이다. '생계형 교사'나 '차가운 공무원 교사'를 자처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요즘 길버트의 말은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글쓴이는 교사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예술가나 지성인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가르침은 결코 기교가 아니라 '혼'을 담는 일이라고 강조하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 먼저 "가르치고자 하는 이들을 먼저 생각"하라는 길버트의 말은 마치 프레이리(Freire)가 한 다음 이야기처럼 들린다. 지나온 길을 돌아오며 마음이 어지럽다.
 
"대화 관계가 성립되면 ... 교사-학생인 동시에 학생-교사라는 새로운 관계가 탄생한다. 교사는 더 이상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며, 그 자신도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서 배우는 사람들이 된다. 학생들 역시 배우면서 가르친다."
(프레이리. 남경태·허진 옮김. 2018. <페다고지: 억압받는 사람들의 교육학(50주년 기념판)>, 100쪽. 그린비.)
"오로지 "나와 함께 해보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만이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들뢰즈. 2004. <차이와 반복>, 72쪽.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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