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CPI 둔화에 피벗 기대감↑…Fed 안팎선 "갈 길 멀다" 경고(종합)
미국의 인플레이션 둔화 추세가 한번 더 확인되면서 내년 상반기 '피벗(pivot·방향 전환)' 기대감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공격적인 긴축 사이클이 끝난 것은 물론, 금리 인하도 빠른 시일 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Fed 안팎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점점 커지는 시장의 피벗 기대가 자칫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 기반한 경고로 해석된다.
Fed 내 대표적 비둘기(통화완화 선호)파로 꼽히는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14일(현지시간) 디트로이트 경제클럽에서 예상보다 둔화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대해 "꽤 좋은 보고서로 보인다. 진전이 이어지고 있다"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밝혔다. 올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투표권을 갖고 있는 굴스비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낮아지는 길에는 항상 약간의 장애물이 있다"면서 2% 물가안정목표 달성까지의 남은 과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경계했다.
같은 날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 역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웨스트민스터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인플레이션이 2%로 완만하게 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없다"면서 "인플레이션 수치는 낮아졌지만, 수요 증가와 공급 부족으로 인한 코로나19 시기 가격 급등이 부분적으로 되돌린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거비 인플레이션은 역사적인 수준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서비스 인플레이션 역시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중도파로 분류되는 바킨 총재는 내년부터 FOMC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Fed 당국자들의 이러한 발언들은 예상보다 둔화한 10월 CPI 보고서가 공개된 직후 나왔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10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했다. 직전월 상승폭(3.7%)보다 크게 둔화한 것은 물론,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3.3%)도 하회했다. 10월 CPI는 전월 대비로도 보합에 그쳐 9월 상승폭(0.4%)과 시장 예상치(0.1%)를 모두 밑돌았다.
시장은 즉각 환호했다. Fed가 더이상 추가 인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긴축 종료 전망이 강화되며 국채 금리는 급락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현재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Fed가 다음 회의에서 금리를 현 5.25~5.5%에서 동결할 가능성을 99.8% 반영 중이다. 이러한 동결 전망은 전날 85%대에서 이날 오전 CPI 공개 후 잠시 100%를 찍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내년 금리 인하 기대감도 한층 커졌다. CPI 공개 전만 해도 내년 6월 피벗에 돌입, 총 3차례 금리 인하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우세했으나, 이보다 더 이른 5월부터 4차례 인하가 단행될 것이라는 베팅이 확대됐다. 시트 픽스드 인컴 어드바이저의 브라이스 도티는 "다음 Fed의 조치는 추가 금리 인상이 아닌, 내년 여름 금리 인하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진단했다. TD 시큐리티의 오스카 무노즈 미국 수석거시전략가는 "모든 것이 Fed에 좋은 보고서"라며 "그들은 또 다른 금리 인상 가능성을 계속 유지하겠지만, 시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사실상 긴축 사이클이 끝났다는 진단을 내놨다.
관건은 이러한 디스인플레이션 기조가 여전히 뜨거운 서비스, 주거비 인플레이션 등으로까지 이어지느냐다. 누적된 긴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경제, 고용시장은 자칫 인플레이션을 다시 부추길 수 있는 요인들로 손꼽힌다. 중동발 지정학적리스크 역시 유가 불확실성을 키우는 부분이다. 굴스비 총재는 "Fed가 2%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할지 여부는 주거비 인플레이션에 달려있다"면서 "(디스인플레이션의) 시작을 보았지만 작동하기 위해서는 계속돼야 한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Fed로서는 과거 인플레이션 재반등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섣불리 긴축 사이클 종료를 예고하기보다는 필요시 언제든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매파 옵션을 유지하면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Fed 출신 대표적 매파(통화 긴축 선호) 인사인 제임스 불러드 전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도 인플레이션 반등 리스크를 경고했다. 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완화 추세인)인플레이션이 역전돼 잘못된 길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면서 "지난 12개월간 보아온 좋은 디스인플레이션이 앞으로도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여전히 FOMC의 리스크다. 그들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 헤지펀드 시타델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켄 그리핀은 Fed가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면서도 "Fed는 '인플레이션 지니'를 다시 병 안에 넣겠다는 메시지를 가져갈 필요가 있다. 너무 빨리 인하하면 2% 목표 약속에 대한 신뢰를 잃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Fed는 올해 마지막 FOMC인 12월 새로운 점도표를 통해 금리 전망을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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