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만에 '수퍼엔저' 눈앞…'자살골'된 엔화 추락, 다급해진 日
달러당 엔화가 심리적 저항선인 150엔선을 넘나들며 '엔저(低)'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상반된 통화정책을 운용하면서 금리 차가 커진 영향인데, 통화정책 정상화를 앞둔 일본은행(BOJ)의 고민도 커지는 모양새다.
15일(현지시간)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값은 150엔 중반대에서 거래됐다. 지난주 150엔 선을 돌파한 뒤(엔화 가치 하락) 13일엔 151.9엔까지 다가서며 올해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달러당 엔화값이 151.94엔을 넘을 경우 1990년 7월 이후 33년 만의 최저치다.
이런 ‘슈퍼 엔저’ 현상의 주된 원인으로는 미·일 금리 차가 꼽힌다. 값싼 엔화를 팔아 달러와 같은 고금리 통화를 사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엔저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내 추가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현재 수준의 고금리 기조를 길게 끌고 가려는 의도를 꾸준히 내비쳐 엔저 현상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지난 9일 제롬 파월 Fed 의장이 “물가상승률 목표(2%)에 도달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며 매파적 발언을 내놓은 뒤 ‘엔 매도‧달러 매입’ 기조는 더 강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무역‧해외투자 외화자금이 일본 내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짚었다. “최근 엔저로 인해 자금을 외화로 보유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일본보다 성장 기대가 큰 해외에 자금이 머물게 되면 엔저가 더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엔저 현상은 일본 당국이 경기침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통화완화 정책을 펼치면서 의도한 측면도 있다. 엔저를 앞세워 수출 경쟁력을 키운 기업이 투자를 확대하고 임금을 올려 소비를 활성화해 경제 성장을 이끌겠단 구상이다. 그러나 장기간의 경기 침체를 겪은 기업들이 수출 이익을 인건비나 투자금으로 쓰는 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민간 소비가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닛케이는 “기존에는 엔저 현상이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최근 수입 물가가 크게 오르고 수출은 늘지 않아 엔저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이날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경제대책이나 추가경정예산으로 엔화 약세에 따른 마이너스 영향을 완화하면서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통화정책 정상화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BOJ는 2016년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을 도입해 10년물 국채금리 상한선을 정해 놓고 시장 금리가 이보다 높아지면 BOJ가 국채를 사들여 금리를 낮춰왔다. 가계와 기업 자산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도록 유도해 물가‧임금 상승을 이끌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다. BOJ는 지난달 “10년물 국채금리가 1%를 초과하더라도 일정 수준 허용하겠다”며 통화정책 정상화를 위한 출구전략에 들어갔지만, 시장은 기존 정책의 미세 조정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엔저 현상에 제동을 걸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9일에도 “(통화정책 정상화를 결정하기엔) 아직 어느 정도 거리가 남아있다”며 선을 그었다. 경기회복세가 뚜렷해져야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BOJ는 내년 봄 노사 임금협상의 임금 인상 폭까지 지켜본 뒤 ‘임금 인상→소비 활성화’라는 선순환 고리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BOJ는 통화정책 정상화에 앞서 재정 리스크도 살펴봐야 한다. 국채를 사들이는 YCC정책을 운용하면서 일본 정부부채 규모는 GDP 대비 200%를 초과하는 수준이다. 세출의 30% 이상이 이자 등 국채 관련 비용으로 지출되는 상황에서 금리가 인상되면 이자비용이 많이 늘어날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은 “장기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2026년도엔 국채 관련 비용이 약 3조6000억엔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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