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0개국 선거…'바이든과 친구들' 위기에 빠뜨린 '공동의 적'
2024년은 글로벌 선거의 해다.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시작으로, 4월엔 한국의 총선, 11월엔 미국의 대선이 치러지는 등 40개국에서 선거가 이어진다.
내년에 선거를 치르는 40개국은 전세계 국가의 21%에 해당한다. 인구 수 기준으로는 41%(32억명), 세계 총생산(GDP) 기준으로 42%(44조2000억 달러)의 향배를 결정할 리더십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재선 장담 못하게 된 ‘가치동맹’의 맹주
현재까지 나타난 주요국의 여론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동맹 국가 지도자들에게 일제히 ‘경고등’이 켜진 것으로 요약된다. 당장 가치동맹을 원칙으로 내세웠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부터 재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일 CNN이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가상 대결에서 45% 대 49%로 뒤졌다. 바이든의 업무 수행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9%,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1%에 달했다. 지난달 갤럽 조사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37%를 기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지난 5일 뉴욕타임스의 여론조사에선 경합주 6곳 중 5곳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내년 대선 전망이 더욱 어두워진 상황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러 요인 가운데 특히 지도자에 대한 즉각적 실망감을 초래하는 장바구니 물가와 소득 불평등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고, 그나마 현실적 대안인 금리 인상으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유리한 ‘지표’를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유권자들이 체감할 수 없다면 표심의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전하는 ‘바이든의 친구들’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적극 동참해왔던 주요 7개국(G7) 정상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내년 9월이 임기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최근 NHK 조사에서 지지율 29%를 기록하며 NHK 기준 처음 20%대로 떨어졌다. 기시다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52%에 달했다. 앞서 공개된 주요 언론사의 조사 결과도 25~36%를 각각 기록했다. 일본에서 20%대 지지율은 총리 교체나 내각 총사퇴가 필요한 마지노선으로 불린다. 스가 요시히데(管義偉) 전 총리는 지난해 8월 지지율이 29%를 기록한 직후 사퇴했다.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와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자국 기관이 실시한 조사에서 각각 20%와 29%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연일 최저 지지율 기록을 보이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PD)의 지지율도 17%에 불과하다.
이밖에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지지율은 23%까지 떨어졌고, 취임 초 80%를 넘어서던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의 지지율은 42%로 하락했다.
미국과의 가치 동맹을 급속히 강화해온 윤석열 대통령 역시 지난 10일 한국갤럽 조사 기준 3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다른 기관의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를 전후한 박스권에 머물러 있다.
‘바이드노믹스’ 지지 14%…호황에도 불만 고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국 정상들이 고전하는 배경은 치솟는 물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은 올해 3분기 4.9% 성장을 기록했다. 한국의 15배인 26조 달러의 GDP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 경제가 한국보다 2배 이상 고속 성장한 경이로운 기록이다. 이번달 실업률은 3.9%로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에서 유일한 ‘나홀로 호황’을 누리는 미국인들은 바이든 정부의 가장 큰 실책으로 경제를 지적하는 모순적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이날 공개된 파이낸셜타임즈(FT) 조사에서 미국인들의 14%만 바이든 정부의 경제정책 ‘바이드노믹스’를 긍정 평가했다. 부정 평가는 55%에 달했다. 14%의 긍정론은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 행정부가 대선 1년 전 받았던 긍정평가 비율 3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평가의 배경은 치솟는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실질임금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2012년 1월 이후 미국의 임금인상률은 물가상승률을 밑돌았다. 임금보다 물가가 더 빠르게 오르면서 미국인들이 체감하는 임금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는 뜻이다.
다만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미국의 임금인상률이 물가를 따라잡았다. 14일 발표된 10월 물가상승률도 3.2%를 기록하며 시장이 예상했던 3.3%보다 낮은 수치를 보였다. 1년 뒤 대선에서 물가와 임금의 ‘함수 관계’가 막판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인플레 ‘3중 쓰나미’…주요국 실질임금 뒷걸음
다른 주요 국가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지난 1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실질임금은 평균 -3.8%를 기록했다. 미국이 -0.7%, 일본 -3.1%, 영국 -2.9%, 독일 -3.0% 등 대부분 국가의 실질임금이 후퇴했다.
전세계 주요국들은 코로나 팬데믹 대응을 위해 대대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며 시장에 돈을 풀었다. 직후엔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경쟁이 이어지며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고, 우크라이나ㆍ중동에서 전쟁이 발생하며 원자재 가격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이스라엘 전쟁이 확대될 경우 자칫 과거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충격파가 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이러한 3개의 '인플레 쓰나미'가 이어지며 고물가가 전세계에 동시에 나타났다는 뜻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인플레이션은 서민의 고충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이 표심을 얻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미국의 경우 적정한 수준의 경기 악화를 유도하기 위해 고금리 상황을 보다 장기화하는 방안이 있지만, 이 역시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통제 사회 북·중·러는 상황 달라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국가의 정상들은 자유주의 진영 지도자들과 상황이 다르다. 통제 국가라 여론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시진핑 주석 역시 암묵적으로 이어져온 ‘2연임 초과 불가’ 원칙을 깨고 지난해 10월 3연임에 성공했다. 일각에선 시 주석의 종신집권 가능성도 제기한다. 김정은 역시 주요 행사에 딸 주애를 대동하며 4대 세습 체제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 모두 통제 국가라 객관성 있는 기관의 '여론조사 지지율'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 위기를 겪어도 이를 숨길 수 있는 게 통제 국가다. 실제 중국은 지난 8월 청년실업률 수치를 발표하지 않았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자유 진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 상황은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 확대와 정치에 대한 불신 등이 중첩되며 발현한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제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가 당장 들어설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2개의 전쟁’ 등이 마무리 된 이후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국제질서 체계가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서울=강태화ㆍ문상혁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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