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국가적 대사인데… 中 ‘3중전회’ 차일피일, 시진핑 속사정은?

권지혜 2023. 11. 15.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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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월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14기 1차 회의 제3차 전체회의에서 주석 3연임이 확정된 뒤 선서하는 모습. 시진핑 집권 3기 정책 방향을 결정할 20기 3중전회는 평소보다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 AP뉴시스
집권 3기 정책 로드맵 밝힐 행사
현재로선 일러야 내달 중순 가능
45년 만에 가장 늦게 열리게 돼
美와 정상회담·경제난 이유 분석

언론 “현안 많거나, 변화 없거나”
리커창 사망, 개혁 종말로 인식돼
추모 열기 속 시진핑에 불만 커져
미래 향한 새 개혁 강령 심사숙고

중국 공산당의 핵심 권력기구인 중앙위원회는 5년 임기 동안 7번의 전체회의를 열어 당과 국가기관 인사,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이중 가장 주목을 끄는 건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가 신임 중앙위를 구성한 이듬해 열리는 3차 전체회의(3중전회)다. 1978년 11기 중앙위원회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노선을 제시한 이래 3중전회는 중국의 발전 방향을 대내외에 공표하는 특별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1978년부터 지금까지 총 9번의 3중전회가 개최됐는데 이 중 7번은 9~11월에, 나머지는 2월과 12월에 열렸다.

이 같은 관례대로라면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3기 정책 기조와 방향을 제시할 20기 3중전회도 이미 열렸거나 일정이 공개됐어야 하지만 늦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이달 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과 반등 기미가 보이지 않는 중국 경제 상황을 꼽고 있다. 3중전회 시기와 제출 문건은 당 중앙정치국 심의를 거쳐 발표되기 때문에 정치국 회의가 이달 말에 열린다고 해도 3중전회는 일러야 다음 달 중순쯤 개최될 전망이다. 45년 만에 가장 늦게 열리는 회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집권 1기 첫해인 2013년 18기 3중전회에서는 ‘전면적 개혁 심화에 관한 중대한 결정’이 채택됐다. 국가 통치 체계와 능력을 현대화하고 2020년까지 빈부격차 축소, 반부패 등 주요 개혁 목표를 달성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8년 19기 3중전회는 국가주석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한 헌법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을 위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최 직전인 2월에 열렸다. 중국은 마오쩌둥 사후에 국가주석 임기제를 도입해 10년 주기 권력 승계를 제도화하고 집단지도체제를 원칙으로 삼았지만, 시 주석은 이를 모두 뒤엎고 1인 독주 시대를 열었다.

이번 3중전회에선 개혁개방 45주년, 전면적 개혁 심화 10주년을 맞아 그간의 성과를 정리하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개혁 강령이 제시될 전망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중국식 현대화, 국유기업 개혁, 민영경제 발전, 외국인 투자 유치 확대, 새로운 부동산 발전 모델 제시, 위안화 국제화 등을 핵심 키워드로 꼽고 있다. 미·중 경쟁 국면에서 경제·금융·과학기술·군사 등 전방위 분야의 자력갱생을 강화하고 시진핑 사상을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내용이 3중전회 문건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중전회가 늦어지는 건 국내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시 주석은 종종 회의 개최에 매우 유연함을 보이고 있다”며 “필요에 따라 회의를 열고 모든 면에서 준비가 이뤄지기 전에 서두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3중전회가 올해를 넘겨 개최된다면 이는 시장을 놀라게 할 새로운 개혁 정책이 없거나 현 지도부가 기존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시진핑 집권 3기는 1인 통치 체제를 공고히한 것 외에 별다른 특징이 없고, 정책의 큰 방향을 바꾸지 않는 중국 특유의 일관성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21년 당 조례 개정으로 회의 일자 및 의제 결정 권한을 쥔 시 주석은 중전회 개최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3중전회는 지난달 68세 나이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한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를 향한 중국인들의 추모 분위기와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다. 시 주석 집권 1, 2기 총리를 지낸 그는 중국 역사상 가장 무력했던 총리로 평가받지만, 그의 죽음이 개혁개방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시 주석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중국인들은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개혁 성향의 정치가로 민생을 강조했던 그를 ‘인민들의 좋은 총리’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리샤오민 교수는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리커창의 최대 기여는 그의 죽음이 사람들을 꿈에서 깨어나게 한 것”이라며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개혁을 약속하지만 그 말은 더 이상 중국 정치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이 올여름 폭우로 큰 피해를 입은 베이징 외곽과 허베이성을 찾아 주민들을 만나는 등 민생 행보에 나선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시 주석은 주택 공사 현장과 농지, 슈퍼마켓, 학교 등을 둘러보며 복구 상황을 점검했고 관영 매체는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베이징을 둘러싸고 있는 허베이성은 지난 7월 말 집중호우가 쏟아졌을 때 수도를 지키기 위해 하천 수문을 급격히 개방하면서 최대 희생양이 됐다는 소문이 돌았던 곳이다. 허베이성 1인자인 니웨펑 당서기가 소셜미디어 계정에 “수도를 위한 해자(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 역할을 잘 수행하자”는 글을 올려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었다. 인구 7420만명의 허베이성에선 7월 말 쏟아진 집중호우로 최소 29명이 숨지고 300만명 이상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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