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바뀐채 더 늘어난 권력기관 쌈짓돈

이의재 2023. 11. 15.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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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의 금고’ 특수활동비] <상>
내년 예산 16억 줄여 편성했지만
법무부 등에 ‘정보보안비’ 신설
증빙 의무없어 용처 확인 안돼


정부가 내년 특수활동비 예산으로 올해보다 16억원 줄어든 1237억원을 편성했지만 ‘착시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활비와 유사한 ‘정보보안비’가 법무부 등에 새로 배정되면서 각 부처가 ‘쌈짓돈’처럼 쓸 수 있는 예산은 사실상 늘어났다.

14일 재정정보공개시스템 열린재정에 따르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특활비는 1237억3600만원으로 올해(1253억8400만원)보다 16억4800만원(1.3%) 감소했다. 특활비는 보안이 필요한 특수 업무를 수행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은 특활비를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 경호 등의 국정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 규정하고 있다. 유사한 성격의 특정업무경비나 업무추진비와 비교해도 증빙 의무가 가장 약해 정부의 대표적인 ‘쌈짓돈’으로 꼽힌다.


내년도 예산안은 특활비 명목으로 14개 부처에 34개 사업을 편성하고 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737억4500만원이 경찰의 몫이다. 경찰은 공공안녕정보활동(277억7000만원), 안보수사역량강화(273억1400만원) 등 수사·안보와 직결되는 사업을 앞세워 가장 많은 특활비를 배정받았다. 전년 대비 증가 폭도 27억100만원으로 부처 중 가장 컸다. 반면 두 번째로 많은 금액이 배정된 법무부(155억8300만원)는 올해보다 27억4200만원이 줄었다. 34억4300만원(88.1%)이 깎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4억6600만원) 다음으로 큰 삭감 폭이다.

특활비도 편성 과정에서는 여느 예산처럼 기재부의 심사를 거친다. 각 부처가 사업·비용을 편성해서 요구하면 예산실 예산기준과가 특활비만 따로 모아 금액을 배분하는 형태다. 기재부 관계자는 “(해당 사업이) 정보·수사 등 특활비 본연의 목적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맞춰서 적정한 소요를 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한번 배분된 특활비의 실제 용처를 확인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특활비 편성은 총액이라는 큰 틀에서 이뤄진다. 이후 구체적인 지급과 집행은 소관부처의 재량에 달렸다. 게다가 대부분의 특활비 지출은 영수증 등 증빙이 불필요한 현금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의 계산증명규칙에 등장하는 ‘경비집행 목적 달성에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의 예산 집행지침은 가급적 현금 사용을 지양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수준이다. 결산 과정에서도 구체적인 증빙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간담회, 축·조의금 등 비밀이 필요하지 않은 활동에는 특활비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지침 역시 구속력이 없다.

정부도 이 같은 ‘깜깜이 논란’을 의식해 매년 특활비 규모를 줄이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청와대에 특활비를 상납한 사실이 드러난 2017년이 본격적인 감축의 기점이 됐다. 세목상 특활비로 분류되는 예산의 규모는 2017년 8983억9500만원에서 이듬해 3분의 1 수준인 3168억1100만원으로 급감했다.

이후에도 특활비 규모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에는 2396억400만원까지 줄어들었다.

하지만 유의미한 수준의 특활비 감축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은 '이름표 분리'로 인한 착시 효과였기 때문이다. 2017년에만 4000억원 넘는 특활비를 배정받았던 국정원은 이듬해부터 특활비를 폐지하고 '안보비'라는 새 비목을 그보다 큰 규모로 편성하기 시작했다. 한 해 만에 대규모 감축이 이뤄진 배경에는 최대 사용처였던 국정원의 '이탈 아닌 이탈'이 있었던 셈이다.

비목 분리에 의존한 감축은 올해도 되풀이됐다. 올해 특활비 예산 1253억8400만원은 1년 전보다 1142억1900만원(47.7%) 줄어든 금액이다. 역시 최대 사용처인 국방부의 이탈에 의존한 결과였다. 대신 국방부는 '정보보안비'를 신설해 특활비 감소분보다 큰 1184억1700만원을 편성했다.

문제는 이들 역시 증빙 의무가 희박한 쌈짓돈 성격의 비용이라는 사실이다. 예산 집행지침은 정보보안비와 안보비에 대해서도 '특수활동비에 대한 감사원 계산증명지침을 준용한다'며 증빙 의무를 면제해주고 있다. 특활비가 줄어든 자리를 '유사 특활비'가 차지한 셈이다.

'실질적 특활비' 규모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은 정보보안비 명목으로 법무부와 과기정통부, 산업통상자원부에 합계 83억4000만원을 새로 배정했다. 이를 합쳐 다시 계산하면 증빙 없이 쓸 수 있는 특활비성 예산은 1320억7600만원으로 올해보다 증가한다.

삭감 폭이 가장 컸던 법무부(41억6200만원)와 과기정통부(37억2300만원)의 특활비 규모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순증한다. 국방부 정보보안비까지 포함한 실질적인 특활비 총액은 올해 2438억100만원, 내년 2671억6600만원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특활비 경계를 벗어난 국정원의 안보비 규모도 매년 커지고 있다. 2018년 4630억5400만원으로 출범한 안보비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8945억6000만원까지 증가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의 분류대로만 보면 특활비가 꾸준히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활비 규모를 과거와 제대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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