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물건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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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 기계 하나를 떠나보냈다.
물건에도 운명이 있고 이 운명은 누구와 관계를 맺는가, 어떤 시대 상황에 놓이는가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이다.
주인에게 간택받은 물건은 가치라는 왕관을 쓰고 모셔지는 운명이다.
사람은 평생 기능적, 심리적으로 물건에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연을 맺은 물건의 운명에는 대체로 무관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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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 기계 하나를 떠나보냈다. 목선반이라는 기계인데 주로 그릇과 봉을 가공할 때 쓰인다. 대만이 원산지인 목선반은 바다를 건너 인천항으로 들어와 나의 작업실에서 6년을 보낸 뒤 남쪽 섬으로 갔다. 새 주인의 손길을 듬뿍 받으며 쓰임을 다하길 바라면서도 언젠가 다시 미지의 장소로 옮겨가게 되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석은 어떻게 됐을까.’ 읊조리며 연락 닿을 길 없는 옛 친구의 삶을 막연히 궁금해하는 것과 결이 비슷했다. 이 일은 물건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에 변주를 주었다. 물건에도 운명이 있고 이 운명은 누구와 관계를 맺는가, 어떤 시대 상황에 놓이는가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이다.
나로 인해 화물선을 두 번이나 탄 목선반과는 달리 한 장소에서 오랜 시간 머무는 물건도 있다. 애장품이나 수집품이 그러한데 운동화, 그림, 피규어, 텀블러 등 품목도 다양하다. 주인에게 간택받은 물건은 가치라는 왕관을 쓰고 모셔지는 운명이다. 그리고 선조들이 사용했던 물건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되었다. 그중엔 아픈 운명도 있다. 오구라 컬렉션이 대표적인 예인데 일제강점기 때 불법적인 방식으로 수집한 한국 문화재 1100여점을 말한다. 일부는 되찾아왔지만 수백년간 우리의 유산이었던 가야의 창녕 금동관모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국보로 지정됐다.
물건에 깃든 사연은 우리의 생활방식과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무리 사소하다 할지언정 그만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평생 기능적, 심리적으로 물건에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연을 맺은 물건의 운명에는 대체로 무관심하다. 나는 일상의 사물 속에 나의 이야기를 포개며 삶을 공유하기로 했다. 그것이 물건과 좋은 관계를 맺는 삶이라는 확신이 들어서다. 물건의 운명이 내 삶의 궤도를 따라오고 있다면 갖가지 사연이 담긴 물건들은 얼마나 애틋할는지. 그런 물건들과 함께라면 보다 많은 날을 충만한 감각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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