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끝나자 동남아 마약 ‘우르르’…텔레그램·가상자산 결제로 손쉽게 거래
한국이 신흥 마약 시장으로 떠오른 데는 3가지 이유가 있다. 공급 확대와 수요 급증, 거래 채널 확장이다. 엔데믹 시대 ‘리오프닝’과 함께 마약이 한국으로 몰리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마약이 여타 동남아 국가에 비해 훨씬 비싸게 거래되는 게 크다. 공급량이 폭증한 와중에 양극화, 청년 실업 등으로 지친 청년층을 중심으로 마약 수요가 급증했다. 공급과 수요가 함께 증가하면서 시장이 커지고 ‘규모의 경제’가 생겨났다. 거래와 결제 방식이 더욱 편해진 것도 한몫했다. 판매상과 매수자들은 텔레그램으로 정부 단속을 피해 손쉽게 접선한다. 결제까지 가상자산으로 하면 사실상 ‘안전’한 거래가 가능하다. 삼박자가 들어맞으며 한국 마약 시장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모양새다.
‘골든트라이앵글’ 물량 쏟아진다
최근 마약 범죄가 급증한 첫 번째 원인으로 공급 확대가 꼽힌다.
리오프닝 이후 각국 경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생산지에 묶여 있던 마약이 전 세계로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마약은 동남아시아와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특히 ‘골든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미얀마, 라오스, 태국의 접경 지역에서 생산된 마약이 한국에 집중 공급된다. 이들 지역은 지역 군벌이 장악하고 있어 정부 입김이 닿지 않는다. 자금 확보를 위해 대량 생산한 마약을 일본, 중국, 한국 등에 수출한다. 마약 범죄에 엄격하고 경제력이 높은 동북아 국가들은 동남아 국가보다 마약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유행 동안 각국 교류가 멈추며 마약 수출도 중단됐다. 운반책을 내보내지 못한 탓이다. 국제우편 등으로 보내기도 했지만, 직접 운반보다는 효율이 떨어졌다. 2021년 마약 사범 건수가 전년 대비 소폭 감소한 것도 ‘공급’이 막힌 영향이 컸다. 코로나 3년간 동북아로 향할 많은 물량이 생산지에 그대로 묶여 있었다. 그러다 리오프닝과 함께 교류가 재개되며 묶였던 마약이 급격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몇 년간 팔지 못하고 계속 만들기만 해 쌓인 대량의 마약이.
특히 리오프닝 이후 한국은 동남아 마약 공급상의 집중 목표가 됐다. 마약 가격 상승세가 심상찮아서다. UNODC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필로폰 1g당 가격은 263.4달러(약 34만원)였다. 2023년 현재 국내 마약 시장에서 공급되는 필로폰 1g당 가격은 60만원 선이다. 2년 만에 약 2배 가까이 급등했다. 이마저도 최근 마약 공급량이 급증해 가격이 10만원 정도 내려간 수준이다. 홍콩(67.3달러), 중국(66.6달러) 등과 비교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국보다 마약 가격이 비싼 국가는 일본밖에 없다. 중국은 중국 내에서도 많이 제조되는 만큼 한국처럼 마약 가격이 비싸지 않다.
2022년 마약백서에 따르면 태국(24%), 라오스(12%), 베트남(10%) 세 국가 모두 한국으로 향하는 마약량이 2021년 대비 증가했다. 물류를 위한 운반책도 함께 늘었다. 올해 가장 많이 검거된 마약 사범 외국인은 ‘태국인(855명)’이었다. 이어 중국인(453명)과 베트남인(393명)이 뒤를 이었다. 특히 마약 운반과 관련 깊은 밀수와 밀매 범죄는 태국인이 1위, 베트남인이 2위다.
김대권 건양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논문 ‘마약 범죄의 한계와 효율적 통제를 위한 제언’에서 “밀수 조직이 코로나 기간 동안 유통시키지 못한 불법 마약을 코로나19 종료 후 과잉 공급할 확률이 크다”며 “이 경우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사망자 수 증가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폭발적인 수요 상승을 일으키다
한국 사회 변화가 마약 수요를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높은 실업률과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고독감이 배가된 상황에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전 사회적으로 우울함이 증폭된 분위기가 불을 지폈다.
범죄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감이 높거나 실업률이 높을수록 마약에 빠지는 이가 많다고 설명한다. 실업률 상승과 양극화 등으로 심리·경제적 불안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마약 수요가 급등했다는 설명이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불만족스러운 생활 조건에 근거한 고립감, 외로움, 절망감과 통제력 부족 등이 마약 투약을 부추긴다”며 “특히 홀로 좋지 않은 환경에 노출됐을 때 마약에 노출되거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최근의 마약 창궐을 단순히 사회 문제만으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양극화, 1인 가구 증가 등은 과거에도 존재했던 문제기 때문이다.
수요 상승에 불을 붙인 결정적인 계기는 텔레그램과 가상자산의 등장이다.
2019년 이전까지만 해도 마약은 구매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정부 단속을 피하려면 다크웹 등을 이용해야 했는데, 일반인이 쓰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졌다. 다크웹을 이용하려면 별도 인터넷 브라우저를 설치해야 하고 PC나 노트북을 활용해야 했다. 또 ‘아는 사람들만 아는’ 특정 사이트에서만 마약을 팔았다. 우여곡절 끝에 판매책과 접선하더라도, 대금 지급이 문제였다. 막대한 현금을 갖고 다니는 등 지불 문제에서도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거래 현장에서 발각돼 체포되는 범죄자도 많았다.
텔레그램과 가상자산이 이 문제를 완벽히 해결해줬다. 텔레그램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접속한 뒤 다운만 받으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편리성이 높은데 보안도 탄탄하다. 서버가 해외에 있는 탓에 검찰·경찰의 수사 또한 불가능하다. 서버 압수수색을 못하면 수사관이 일일이 채널에 접속한 뒤 함정 수사를 통해야만 판매책을 잡을 수 있다. 이마저도 중간 판매책이나 유통책만 잡을 뿐, 판매 총책임자 검거는 더 힘들어진다.
가상자산 등장으로 안전한 금전 거래도 가능해졌다. 자신이 보유한 코인 지갑에서 상대방 지갑으로 코인을 전송하면 끝이다. 가상자산의 경우 업비트 등 거래소를 통하지 않으면 거래 기록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 판매자는 이렇게 받은 가상자산을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코인 거래소에서 현금으로 환전하면 안전하게 ‘수익화’가 가능하다.
실제로 2020년 이후 마약 거래 중심지는 다크웹에서 ‘텔레그램’으로 바뀌었다. 매경이코노미가 다크웹 분석 전문 데이터 인텔리전스 기업 S2W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2023년 텔레그램에서 마약이 언급된 건수는 247만건에 달했다. 반면 다크웹에서 언급된 건수는 847건에 그쳤다.
S2W 관계자는 “약 2년 전까지는 다크웹에서 국내 마약 거래가 활발했지만 이제는 플랫폼 운영이 중단돼 1개(Top Korea)만 남아 있는 상태”라며 “마약상 대다수가 익명성이 보장되는 텔레그램 메신저로 무대를 옮겼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4호 (2023.11.15~2023.11.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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