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는 꺼려한 유엔사…참모부 '주도적 역할' 참여 추진
한국과 17개 유엔사 회원국 대표단이 유엔사 창설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한국의 유엔사 참모부 참여와 회원국 확대를 논의했다. 또 결과물로 공동선언을 도출, 대북 경고와 함께 유사시 함께 군사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 같은 공조를 통해 미국이 추진하는 유엔사 활성화 작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유엔사 참모부 자리 없는 한국, ‘주도적’ 참여 제안
14일 국방부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전투파병국 14개국과 의료지원국 3개국의 국방장관, 주한대사 등 대표단은 이날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한·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에 참석했다. 유엔사 회원국 대표들이 한국과 회의를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선 한국군의 유엔사 참모부 참여 의사가 공식 전달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유엔사와 참모부 참여와 관련해 상당 기간 논의가 이뤄졌다”며 “한국군이 단순 참여하는 게 아니라 유엔사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주도적 역할을 맡는 보직을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11월 9일 보도 '[단독] 文정부땐 거절한 유엔사 '한국군 참모장' 파견 추진한다')
2014년부터 ‘재활성화(Revitalization)’ 작업에 들어간 유엔사는 2017년 말 주한미군이 겸직하는 대부분의 참모부 직위를 회원사와 나눠맡고 몸집을 늘리는 ‘적정 규모화(Right Sizing)’ 계획을 세웠다. 17개 회원국이 함께 하는 명실상부한 사령부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참모부는 전시 유엔사의 작전·기획·군수를 계획 및 실행하며, 비전투원 철수 작전(NEO) 등 다국적 협조 임무에도 참여한다. 군사정전위(군정위)가 정전협정 관리를 맡는다면 참모부는 유엔사의 또 다른 중요 임무인 유사시 전력제공에 주력하는 식이다.
文 정부 꺼려한 유엔사 ‘적정 규모화’ 계획…현 정부는 적극 호응
한국은 회원국이 아닌 당사국 지위임에도 유엔사로부터 참모부 편성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50개 미만 자리로 구성된 유엔사 핵심 참모 직위를 약 80개까지 늘리는데, 이중 10여 개 자리를 한국이 맡아달라는 제안이 2020년 말부터 들어왔다. 현재는 참모부에 한국군이 없는 상태다.
유엔사의 해당 구상은 문재인 정부에서는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정부는 유엔사가 독일을 전력제공국에 포함하려 하자 무산시키는 등 유엔사와 갈등을 빚었다. 군 내부에선 “북한과 관계 개선에 유엔사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유엔사의 활발한 활동을 불편해했던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북한은 그간 유엔사를 적대시하며 국제무대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해체를 요구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선 참모부 내 한국군의 주도적 역할이 강조되는 등 기류가 달라졌다. 국방부는 참모부에 장성급 인원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1970년대 1명, 1990년대 40여 명의 한국군이 참모부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한미연합사 등을 겸직했다”며 “이번엔 겸직이 아닌 인원을 파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유엔사 적정규모화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유엔 회원국 대상 유엔사 회원국 늘리는 방안도 논의
같은 맥락에서 유엔사 회원국의 확대 방안도 이날 회의에서 다뤄졌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환영사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국의 참여를 통해 유엔사의 외연도 더욱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중 정전협정 정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그리고 한반도 방위에 대한 약속이 확인되면 한국과 유엔사 간 상호 협의로 회원국을 늘릴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미측은 이미 내부적으로 유엔사 전력제공국의 범위를 “유엔사에 장차 군사적·비군사적 지원을 할 국가”로 폭넓게 설정하면서 유엔사의 적정규모화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 유엔사 회원국 외에 미래에 전력을 제공할 수 있는 국가까지 유엔 회원국으로 염두에 두고 외연 확대를 계획했던 것이다.
미국의 이 같은 구상에 윤석열 정부가 호응함으로써 독일 등 유엔사 회원국 지위를 얻지 못했던 국가들의 참여가 조만간 가시화될 전망이다. 더불어 현 당사국 지위인 한국의 회원국 가입 논의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정부 소식통은 “회원국이 되면 유엔사 구성원의 일부로 사령부의 목표에 따라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게 실질적으로 가능해진다”며 “회원국 가입의 득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1953년 재참전 결의한 워싱턴 선언, 공동선언으로 재확인
이날 회의에선 북한을 겨냥해 유엔사 회원국의 유사시 재참전 의지를 확인하는 공동의 결과물이 발표되기도 했다. 회원국 대표들은 공동선언을 통해 “다수의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강력히 규탄했다”며 “유엔의 원칙에 반해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대행위나 무력공격이 재개될 경우 공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6·25 전쟁 전투파병국의 1953년 '워싱턴 선언'을 다시 결의한 셈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누구도 정전협정이 70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고, 재참전을 약속한 국가들이 70년간 계속 함께 하고 있을 것인지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번 회의는 그간 한국과 유엔사가 이룬 진전, 약속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회원국들은 이런 의지를 실행에 옮기는 방안으로서 한미동맹과 유엔사 회원국 사이의 연합연습과 훈련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유엔의 정치적 선언과는 다른, 유엔사의 군사조직으로서 공동대응이라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다만 군 관계자는 “유엔사의 전투사령부의 기능은 1978년 창설된 한미연합사로 옮겨졌다”며 “작전통제권이 유엔사로 넘어가 전투사령부가 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유엔사의 역할 확대를 통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미국이 유엔사를 통해 사실상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에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된다.
국방부는 앞으로 한·유엔사 국방장관회의를 정례화할 방침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단 미국도 긍정적으로 호응했다”며 “정례화를 확정하는 데는 회원국의 입장을 들어보는 등 협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은 이날 회의를 놓고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주지하듯 이른바 '유엔군'이라는 것은 냉전의 산물로, 법적 근거가 없고 일찌감치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며 “중국은 관련 국가가 '유엔'의 이름을 도용해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는 행동을 중지하고, 실제 행동으로 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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