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에 한 번, 도자기 굽고 가마 여는 날 풍경 이렇습니다

김석우 2023. 11. 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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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색되거나 작은 흠집 있는 도자기들은 가차 없이 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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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우 기자]

이천문화재단에서 '2023 목공 인생 학교'를 개설한 덕에, 최근 목공예를 배우고 있다.(관련 기사: 이천 한봉석 목조각장에게 목공을 배우다 https://omn.kr/25vcr).

1992년 신둔면에 설립된 한도요는 흙을 빚고 유약을 칠하며 전통 장작가마로 굽는 이천의 대표적인 도예지다. 경강선 도예촌역에서 내려서 약 20분 정도 비탈길을 걸어 산등성이를 올라가야 한다. 굳이 차를 가지고 가지 않고 걸어서 간다. 한도요 가마 열리는 날 초대를 받았는데, 혹시 소주 한잔할 사람은 차를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한도요 가마 열리는 날은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잔칫집 분위기다. 석 달에 한 번 꼴로 그 동안 빚은 도자기를 전통가마에 굽고, 가마를 여는 날의 행사가 열린다.     

서광수 사기장은 멀리서 봬도 인자하신 장인의 모습 그대로다. 흰 수염 사이로 언뜻 보이는 미소와 다정한 눈빛을 느낄 수 있다.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라고 하니 벌써 60년 한길을 걸어오신 장인 중의 장인이다. 그 오랜 기간 백자의 맑고 깊은 유백색을 내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원하는 색채의 유약을 개발했다. 그래서 서광수 사기장은 백자 달항아리로 유명하다.  

이천 전통문화전수교육관에는 다양한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백자 달항아리가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고 자리한다. 언뜻 보면 대한민국 명장 서광수 사기장을 닮은 것처럼 보인다. 

불량 도자기의 무덤들

한도요를 들어가는 입구에는 굽는 과정에서 변색하거나 터진 자기들을 깨서 버린 엄청난 불량 도자기의 무덤이 보인다. 입구에서부터 최고의 품질의 작품이 아니면 처참하게 부수어 버린다는 사기장의 비장한 마음을 읽어 볼 수 있다.    
  
▲ 한도요 깨어진 도자기 한도요 입구의 깨어진 도자기들
ⓒ 김석우
 
가마로 올라가 도자기 굽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이제는 가마 속 불꽃의 색깔만 봐도 불의 온도가 몇 도인지 알 수 있어."

실제로 가마 근처에 디지털 온도측정계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몇 도에 몇 시간을 굽는지 기록된 설명서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사기장의 경험 안에 녹아 들어 있었다. 가마의 장작불은 24시간 이상 지핀다고 한다. 노령의 연세에도 장작을 직접 가마에 넣고 온도를 살피고 쉴 시간이 없다.

그러면 안에서 구워지는 도자기의 상태를 어떻게 확인할까 궁금했다. 가마의 불을 지피는 틈틈이 조그만 구멍으로 안에서 구워지는 표본 도자기를 꺼내 보셨다. 가마 안에 작은 엽전 모양의 도자기 표본을 도자기들과 같이 넣고 구워지는 도자기의 상태를 관찰하는 방법이었다. 몇 차례 표본을 보시더니 이제 되었다고 하신다. 
 
▲ 열린 가마 한도요 열린 가마 안의 모습
ⓒ 김석우
 
드디어 전통가마가 열렸다. 은은한 백색을 띠는 다양한 모양의 백자들이 가마 안에서 꺼내 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흙이 물을 만나고 다시 불과 공기를 만나 녹아서 완전히 다른 물성의 작품이 된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과 같다. 1400도 이상의 고열을 견디고 견디어,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망치 소리와 도자기 깨지는 소리가 계속 한도요에 울려 퍼진다. 가마를 굽는 과정에서 색상이 변하거나 재가 묻거나 바닥이 터진 도자기들이 깨지는 소리다.

미세한 흠집만 있어도... 도자기 생존율은 30%

서광수 사기장은 가마에서 나오는 자기들을 하나씩 매의 눈으로 살피고 조그만 흠집이 보이면 가차 없이 망치를 든다. 만일 살아서 세상에 나온다면 수천만 원이 되는 작품들이다. 깨지는 달항아리를 보면서, 마치 방금 나온 신형소나타를 흠집 났다고 폐차시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이런 철저한 도공 정신이 오늘의 사기장을 만든 것이 분명하다.
 
▲ 깨어지는 도자기들 한도요 가마 열리는 날 깨지는 도자기들
ⓒ 김석우
 
도자기 깨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마에서 바로 나온 도자기를 세심하게 살펴보지만 어두워 미세한 흠집을 못 찾아낸 작품들도 있다. 이들은 실내로 이동하여 환한 불빛 밑에서 다시 한번 정밀 선별 작업을 거친다. 한 가마에 수십 개의 도자기들이 들어 있지만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소수에 그친다. 구워진 도기에서 최종 작품 생존율은 3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달항아리는 한 번에 성형할 수 없다. 반쪽을 먼저 만들고 다시 나머지 반쪽을 만들어서 붙인다. 작은 달항아리인 경우도 같은 방법이다. 따로 만들어진 자기를 마치 한 번에 만든 것처럼 표시 안나게 붙이는 것은 쉽지 않고 균형잡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 한도요는 서광수 사기장과 두 분의 동생이 함께 운영하신다. 세 분 모두 과묵하고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신다. 도자기는 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 같다. 설봉산 삼형제 바위 같이 우애 좋은 형제 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백자를 만들고 계신다.  
 
▲ 한도요 도자기 한도요에 전시된 도자기들
ⓒ 김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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