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종따라 엇갈리는 '주52시간 유연화'…"보상 동반" "악용 우려"
“바쁠 때는 잔업 특근 많이 해서 돈 많이 벌고, 한가할 때는 또 재충전할 수 있고 괜찮을 것 같아요.”-자동차 협력업체 생산직 종사자 A(51)씨
“보상은 확실하게 해주되 근로자 본인의 의견을 존중해서, 할 수 있는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석유화학공장 생산직 종사자 B(29)씨
“주52시간제 자체가 휴식권 보장과 과로사 방지를 위한 것인데, (정부) 개편안처럼 특정 단위 총량제로 넘어가는 것은 후퇴하는 것 같아요.”-신발 제조업체 사무직 종사자 C(38)씨
“현재 제도가 정착하는 것도 상당한 시간이 들었고, 이제 적응이 됐는데 다시 개편해야 하나요. 근로자 대표도 생산직과 사무직을 따로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제약회사 사무직 종사자 D(41)씨
정부가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관련해 특정 업종·직종에 대해 선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가운데, 실제 일하는 방식에 따라 근로자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생산직일수록 확실한 보상이 동반된 유연화에 찬성하는 반면, IT·사무직일수록 현행 체제가 유지되길 바라는 경향이 있었다.
14일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노동부 연구용역을 받아 진행한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정성 조사는 ▶IT·연구개발직 ▶제조 생산직 ▶사무직 ▶업종 무관 20·30세대 근로자 ▶업종 무관 40·50세대 근로자 ▶초3 이하 자녀를 둔 여성 근로자 등 8개 그룹 근로자 50여명에 대한 그룹별 심층면접(FGI) 방식으로 이뤄졌다. 연장근로 시간(주 12시간) 관리단위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업종별, 직종별, 연령·성별에 따라 실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해당 조사 결과는 정부 개편 방향의 근거로도 작용했다.
심층면접에 응한 근로자들은 공통적으로 “유연화를 한다면 확실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연화에 부정적인 가장 큰 이유가 ‘정말 더 일하는 만큼 길게 쉴 수 있느냐’는 점이기 때문이다. 이미 자율적인 선택으로 연장 근로를 하고 있는 근로자들도 장기 휴가 사용에 대해선 “회사에 눈치가 보일 뿐만 아니라, 나 대신 누군가가 근무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명확한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연장근로 유연화를 ‘근로시간이 늘어났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근로자들을 입을 모았다. 같은 맥락으로 총근로시간이 단축돼야 한다는 의견도 대다수였다.
이에 따라 다수 근로자는 정부가 내세웠던 ‘유럽처럼 길게 일하고 한 달 휴가를 떠난다’는 개념보단, 필요할 때 연장근로를 하고 바로바로 쉴 수 있는 체계를 원했다. 실제 노동연구원이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에 동의하는 근로자 248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확대 범위’에 대해 ‘월 단위’가 62.5%로 가장 많았고, ‘분기 단위’(14.5%)가 뒤를 이었다. ‘반기 단위’는 3.9%, ‘연 단위’는 4.8%에 불과했다. 유연화를 하더라도 관리단위 확대는 짧게 가져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이다.
업종에 따라선 의견차가 존재했다. 제조업 생산직의 경우 생산 물량을 맞추기 위한 특정 기간 잔업·특근이 많은 만큼, 연장근로를 유연화하는 대신 확실한 보상을 받아가는 것을 선호했다. 이들은 “더 일한 만큼의 확실한 보상이 필요하고, 기업이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할 때 근로자의 의사를 잘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면접 집단보다 11시간 연속 휴가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강하게 나왔다. 근로자에게 보상과 선택권이 부여된다면 유연화에 긍정적이라는 취지다. 실제 설문조사에서도 근로자의 55.3%가 관리단위 확대가 필요한 업종으로 ‘제조업’을 꼽았다.
반면 사무직은 대체로 현행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했다. 한 사무직 응답자는 “주 최대 52시간을 넘어설 경우 회사가 악용할 수 있고, 휴식권 보장 취지도 잘 안 지켜져서 결과적으로 휴식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특히 유연화를 한다면 포괄임금제는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실제 면접에 응한 사무직 근로자 7명 중 6명이 포괄임금제를 적용받고 있었다. IT·연구 개발직 근로자의 경우에도 이미 재량 근로시간 또는 선택 근로제를 적용받는 경우가 많아, 본인들 직종에 유연화 도입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에 노동연구원은 업종, 기업 규모, 사업 성격, 근무자의 특징 등을 고려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업별로, 업종별로, 직무별로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일관된 규제를 적용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엔 근로시간 기록관리를 위한 시스템 지원과 연장 근무에 대한 확실한 보상 지급 등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상이 확실하다면 근로자의 근로 의욕을 제고시킬 뿐 아니라, 기업들이 불필요한 연장근로에 따른 지출을 예방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재민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업종과 직종을 고려해 연장근로 관리단위 선택권을 부여하고, 장시간 근로를 방지하기 위한 주 상한 근로시간 설정 등 추가거인 건강권 보호에 대한 개선방안이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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