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는 29년 만에 해냈다, 롯데-한화-키움은 얼마나 걸릴까
[이준목 기자]
쌍둥이가 해냈다. 프로야구 LG 트윈스가 마침내 29년 만의 우승이라는 한을 풀어냈다. 오랜 세월 '무관'의 꼬리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동병상련들에게는 자극과 희망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LG는 지난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t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6-2로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을 확정했다. 정규리그 1위(86승 2무 56패)를 차지했던 LG는 한국시리즈까지 석권하며 1994년 이후 무려 29년 만의 감격스러운 통합 우승이었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선수, 감독, 구단주, 팬들까지도 서로 얼싸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1995년 이후 태어난 '엘린이'들에게는 LG의 우승을 라이브로는 생애 처음으로 목격하게되는 감격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LG는 프로출범 원년부터 전신인 MBC 청룡(1982-1989)을 거쳐 1990년 럭키금성그룹(현 LG)에 인수되어 KBO리그 총 42시즌의 역사를 이어왔다. 첫 전성기는 창단 초기였던 1990년대로 이른바 '신바람 야구'를 표방하여 리그 최고의 인기구단으로 부상했고, 1990년과 1994년, 두 차례의 통합우승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1994년을 끝으로 LG는 21세기로 바뀔 때까지 정규리그-한국시리즈 우승과 인연을 맺지못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3번(1997-1998, 2002) 더 진출했지만 당시 막강 전력을 구축한 해태, 현대, 삼성 등에 밀려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특히 2002년 준우승 이후로는 '암흑기'에 접어들며 10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 실패(2003-2012)'라는 '잃어버린 10년'을 겪어야했다.
21세기들어 LG는 2013년(2위)부터야 다시 가을야구 무대를 밟기 시작했다. 이후 2022년까지 LG는 7번이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며 '중흥의 10년'을 맞이했다. 하지만 번번이 우승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잠실구장을 같은 홈으로 쓰는 '한 지붕 두 가족' 두산은 2000년대 이후에만 4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비롯하여 가을야구 단골손님으로 자리매김하면서 LG의 무관이 더 초라해보일 수밖에 없었다.
LG가 20세기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1994년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2년차였다. 그로부터 정권만 6차례(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나 바뀌었다. 1994년 이광환 감독 이후 염경엽 감독 이전까지 우승 프로젝트에 실패하여 LG를 빈손으로 떠난 감독만 11명에 이른다. 이병규-박용택같이 영구결번까지 받았던 LG 레전드들은 결국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특히 암흑기를 전전하던 시절에는 야구 팬들의 전국구 먹잇감으로 전릭하여 수많은 유행어와 패러디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암흑기를 보냈던 KIA-롯데와 함께 '엘롯기 동맹'이라는 신조어로 묶인 것을 비롯하여 콩클리쉬인 'DTD'(Down Team is Down,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탈쥐효과(LG에서 못하던 선수들도 딴 팀만 가면 잘한다.) '입쥐효과(딴 팀에서 잘하던 선수도 LG만 오면 못한다)', '도련님 야구' '감독들의 무덤' 등 온갖 조롱섞인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LG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자양분삼아 꾸준히 변화와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거액의 투자를 단행하며 FA로 영입한 김현수-박해민-박동원 등은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LG의 FA 먹튀 징크스를 끊어냈다. 외국인 에이스 플럿코가 중도에 이탈하는 악재가 있었지만 케이시 켈리와 오스틴 딘이 제몫을 다하며 외국인 농사도 성공했다.
외부 영입에만 의존했던 것도 아니다. 주장이자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오지환을 비롯해 임찬규, 고우석, 홍창기, 문보경, 문성주, 신민재 등은 모두 LG가 자체적으로 키워낸 선수들이다. LG 프런트는 한때 팬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었으나, 1994년 우승멤버였던 차명석 단장이 부임한 이후 환골탈태하며 과감한 투자와 육성의 조화를 바탕으로 팀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
LG의 마지막 화룡점정은 염경엽 감독의 영입이었다. LG는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이후 프랜차이즈 출신 류지현 감독과 과감하게 결별하고 염 감독을 영입했다. 염 감독은 키움과 SK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베테랑 감독이었지만 정작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직전 SK 감독 시절의 실패, 10여년전에는 LG 코치와 프런트로서 팀 암흑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혹평을 받으며 LG 팬들에게조차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염경엽 감독은 비난을 성과로서 잠재웠다. 비록 경기운영이나 야구스타일에서 팬들의 호불호가 갈리기는 했지만, 염 감독의 소신과 뚝심은 결국 통합우승이라는 결과물로 빛을 발했다. 염 감독 개인으로서도 생애 최초의 정규리그-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프로야구 역대로 19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사령탑에 오른 염 감독은 비로소 '명장'의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LG는 올해 정규시즌부터 팀타율(.279)부터 팀출루율(.361), 장타율(0.394), 팀 OPS(.755), 팀득점(767), 팀안타(1364), 팀도루(166)까지 모두 1위를 석권하며 리그 최강의 타선을 자랑했다. 올해 KBO리그가 전반적으로 30홈런(1명)-3할 타자(14명)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투고타저' 흐름이 뚜렷했기에 리그 흐름에 오히려 역행하는 LG의 타고투저 스타일과 1위 질주는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팀홈런만큼은 KBO리그에서 가장 넓은 잠실구장을 홈경기장으로 쓰는 팀답게 6위(93개)에 그쳤지만, 정작 한국시리즈에서는 홈런만 8개(18점)을 터뜨리며 kt를 무너뜨렸다. 켈리 외에 확실한 선발요원이 부족했던 LG는 첫 경기를 패배하며 불리하게 시작했으나, 2, 3차전에서 오지환-박동원의 홈런쇼를 비롯한 '빅볼'의 힘으로 내리 역전승을 거둔 것이 4연승 역스윕을 달성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막강한 전력으로 신구조화를 구축한 LG는 올시즌만이 아니라 2-3년간은 더 우승을 노릴수 있는 전력이라는 평가다. 더구나 올해 29년만의 우승을 이뤄내며 큰 경기에 약하다는 징크스와 우승에 대한 압박감도 털어냈다. 달콤한 '우승의 맛'을 체험한 염경엽 감독과 LG 선수단도 "내년에는 2연패에 도전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을 정도다.
2015-16년 2연속 우승을 차지한 두산 베어스를 끝으로 최근 7년간은 KBO리그에 연속 우승팀이 나오지 않고 있다. LG가 1980-90년대의 삼성, 2000년대의 현대, 2010년대의 삼성-두산처럼 KBO리그에 2020년대의 새로운 왕조로 등극할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한편으로 LG의 우승과 더불어 '장기 무관팀'들의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보다 먼저 우승팀이 확정된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모두 장기간 우승하지 못했던 팀들이 무관의 사슬을 끊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박찬호와 추신수 등이 거쳐갔던 텍사스 레인저스가 창단 62년 만에 월드시리즈를 제패했다. 일본에서는 오승환이 활약했던 한신 타이거즈가 38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서 2023년은 한미일 야구가 모두 '무관의 저주'를 풀어냈다는 공통분모로 역사에 남게 됐다.
LG가 질긴 무관의 역사를 끊어내면서 다음 순번을 가장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다. 롯데는 KBO리그 역사에서 LG보다 더 오랫동안 우승하지 못한 유일한 팀이다. 1984년, 1992년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던 롯데는 올해도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무려 31년이나 우승하지 못하는 불명예 기록을 이어갔다. 최근 2017년 이후 6년 연속 가을야구조차 탈락했다.롯데는 올 시즌을 마치고 두산의 7회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끈 명장 김태형 감독을 영입하고 프런트 역시 물갈이하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한화 이글스가 있다. 1999년 이후 24년간 우승하지 못한 한화는 LG가 올해 우승을 차지하면서 롯데 다음으로 현재 최장기간 무관 2위 자리를 물려받게 됐다. 2018년 이후 5년 연속 가을야구 탈락을 비롯하여 2009년부터 최근 15년간 가을야구 진출이 단 1회 뿐이다. 그나마 올 시즌에는 9위로 5년만에 탈꼴찌에 성공했고, '홈런왕' 노시환- '차세대 에이스' 문동주같은 리그 정상급 선수들을 배출해냈다는 게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있는 희망이다.
키움 히어로즈는 2008년 창단하여 무관의 역사는 16년으로 롯데-한화보다 짧지만 우승 경험 자체가 아예 없다. 롯데가 2회 우승, 한화가 1회 우승을 경험했고, 심지어 2010년대 중반이후 합류한 9-10구단인 NC와 kt조차 우승 경험이 있는데 비하여 키움은, 한국시리즈에 3번 올랐으나 모두 준우승에 그쳤고 정규리그 우승도 해보지 못했다. 전신인 현대 시절의 4회 우승은 키움의 역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더구나 올시즌에는 2011년 이후 12년만에 창단 두 번째로 최하위에 머물렀고, 설상가상 간판스타인 이정후마저 FA가 되어 해외진출을 타진 중이라서 앞으로의 전망이 더 암울하다.
냉정하게 말해 올해 가을야구 진출조차 나란히 실패한 롯데-한화-키움으로서는 당장 1~2년 내 우승에 도전할만한 전력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로서는 세 팀의 장기 무관과 암흑기가 더 길어질 가능성도 높다. LG가 겪었던 시행착오처럼 차근차근 꾸준한 노력과 투자,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스포츠에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은, 올해 LG의 우승이 다른 팀들에게 전하는 값진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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