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방미에…"군사채널 살릴 것" "채찍으로 변화를" 엇갈린 美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15일 이뤄지는 미ㆍ중 정상회담이 관계 회복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면 회담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두 번째다. 또 시 주석이 미국을 찾는 건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때인 2017년 4월 이후 6년 만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성과가 나올지를 놓고 미국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대체로 획기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이해관계가 맞닿는 분야에서 일부 진전이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13일(현지시간) “성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회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양국 관계가 더는 위험한 상황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군 채널 복원 발표 있을 것”
이와 관련해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군사 소통 채널의 재개가 합의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교도통신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에서 양국 군사 대화 창구를 일부 재개하는 데에 합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해 8월 중국은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반발해 미국과의 군사 대화 채널을 모두 차단했다.
미국은 상황 오판으로 인한 우발적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해 군 당국 간 소통 복원의 필요성을 꾸준히 언급해 왔다. 이날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양국 군이 소통하는 것이 실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경쟁을 관리하고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미ㆍ중) 정상회담이 끝난 뒤 군사 대 군사 채널 복원에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보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안보 채널 복원이 될 것이며 구체적 성과도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전날 CNN 인터뷰에서도 “미ㆍ중 군사 채널 복원이 바이든 대통령의 최우선순위 의제(top agenda item)”라고 했다.
대만 이슈와 대중국 수출 통제 등 첨단기술을 둘러싼 분쟁도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회담 최대 의제 중 하나는 대만 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FT는 “바이든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통해 대만에 대한 중국 주권을 원론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대만 선거에 중국이 개입하는 것은 강한 우려를 부를 것임을 경고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설리번 보좌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대만해협 전역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이를 위한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력한 진통제로 중독성이 강해 ‘좀비 마약’이라 불리는 펜타닐의 중국 제조ㆍ수출 단속과 관련된 합의가 나올 예정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이 펜타닐과 그 원료물질의 유통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그 대가로 중국 공안부 법의학연구소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FP는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이 상황을 바꾸고 싶어 한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11월 발리에서 열린 G20 회의를 계기로 양국 정상 사이에는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듯했지만, 지난 2월 정찰풍선 격추 이후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시 주석이 “미국의 목표는 중국 봉쇄와 억압”이라며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을 향해 “독재자”라고 하는 등 거친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지난달 왕이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워싱턴 DC를 방문하고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단이 베이징을 찾는 등 양국 고위급 채널의 상호 방문이 이뤄지며 분위기 변화를 예고했다.
“상호불신 깊어 적대감 완화 미미할 것”
다만 미 일각에선 중국에 대한 경각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시 주석이 2015년 미국을 처음으로 국빈 방문했을 때 남중국해 군사화 계획을 부인하면서 중국과 미국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희망한다고 말했지만 이후 자국 군부와의 만남에서 중국과 미국의 경쟁 심화는 피할 수 없으며 잠재적 충돌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짚었다. 뉴욕타임스는 “시 주석은 최근 미국을 방문한 미국 의원들에게 ‘중ㆍ미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이유는 천 가지가 있고 망칠 이유는 전혀 없다’고 했지만 상호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적대감 완화는 미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의 토머스 듀스터버그 선임연구원도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린 기고문에서 ‘대중국 유화 정책 무용론’을 폈다. 그는 “지금까지 중국에 당근을 줘서 효과를 본 적이 없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가진 채찍으로 중국의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성장률 둔화 등 거시경제 위기에 직면한 상황임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압박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APEC 공동성명 채택 위해 노력”
한편 미 정부는 지난 11일 개막해 17일까지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정상들 간 합의된 공동성명을 채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맷 머리 미 국무부 APEC 선임담당관은 13일 전화 브리핑에서 “APEC 회의 마지막 날 각국 정상들이 합의해 발표할 수 있는 강력한 공동성명을 채택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태국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당시 회원국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공동선언 채택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이 인류에 고통을 야기하고 세계 경제의 취약성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올해는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에 더해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이 겹쳐 회원국 간 입장차가 증폭될 가능성이 커 공동선언 채택이 쉽지 않을 거란 예상이 나온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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