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로 사는 즐거움, 아끼는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

김은미 2023. 11. 1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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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주 사적인 여행> 양주안 작가의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은미 기자]

나는 '사서'라는 내 직업을 이용해 사심(?)을 가득 채우는 사람이다. 사심의 저변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특권 또한 가지고 있다. 도서관에 입수된 책과 첫 대면을 할 수 있는 특권, 읽고 싶은 책이 있을 때 1분 안에 그 책이 꽂혀져 있는 서가와 만날 수 있는 특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도서관이라는 공간 안에 마련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의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특권이 그것이다. 그 이유들이 내가 나의 직업을 사랑하는 이유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확실하다.

사서 직업의 매력, 좋은 것을 나눌 수 있다 

"저는 읽고 쓰는 사서입니다"라고 여러 지면에서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다. 가끔은 '선언'하는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는 나의 선언이 때로는 나의 나태함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직업의 특성상 책에 파묻혀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독이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많은 책을 읽고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소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책의 보물창고에서 내가 읽을 한 권의 책을 선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책 욕심이 많은 나는 늘 책상 위에 책 탑을 쌓아 놓는다. 어떤 책을 완독한 후의 마음은 항상 같은 욕심과 바람으로 귀결된다. '이 작가님을 직접 만나고 싶다. 책 속에 다 담지 못한 뒷이야기를 듣고 싶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품을 수 있는 마음이지만, 독자이면서 사서이기 때문에 이런 바람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내 직업의 매력이다.

얼마전 근무처를 옮겼고 새로운 도서관에서 새로운 기획의 북토크를 시작하기로 했다. 당초에 계획에 없었던 특별기획 사업이라 예산 확보가 쉽지는 않았지만, 일단 시작하니 길이 보였다. 우선 기획 의도를 함축한 북토크 네이밍을 해야했다. (유난히 네이밍에 목숨 거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선택된 이름이 '우주 LIKE 북토크'(온 우주가 좋아하는 북토크)이다. 아주 마음에 든다. 첫 번째 초대 작가로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던 양주안 작가님을 모시기로 했다. 출판사를 통해 이메일 주소를 얻어 정성껏 섭외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SNS 디엠으로 연락을 드릴 수도 있었으나, 좀 더 정중한 방법으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보통은 책을 여러 권 내시고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작가님을 섭외하곤 한다. 축제를 열었는데 즐기는 사람이 없다면 의미가 없고, 도서관이라는 기관의 특성상 시민 참여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베스트셀러 작가님을 모시고 북토크를 열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다. 실력 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해서 독자들에게 알리고, 좋은 책을 계속해서 낼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는 일 또한 도서관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과 몇 개월 전에 첫 에세이 책을 출판하신, 신인 양주안 작가님을 모신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물론 <아주 사적인 여행> 4쇄를 찍고 출간 직후 온라인 서점 에세이 부분 10위까지 등극하는 등 실력 있는 작가임은 증명이 되었다. 이 책을 출판사는 이렇게 소개한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금세 잊히고 만다. 그대로 무뎌진 채 지내다 여행에서 느꼈던 '나의 모습'이 모두 소진될 때쯤, 잠재적 여행자들은 다시 짐을 싸고 떠나기를 반복하게 된다. <아주 사적인 여행>의 구성은 마치 여행을 가기 전부터 여행 도중, 그리고 돌아오는 과정을 옮겨놓은 듯하다. 1부 '아주 사적인 이유'에서 이십 대 초반에 가졌던 여행에 대한 환상, 떠날 준비, 가치관을 바꿔준 첫 여행의 기억을 꺼냈다면 2부 '아주 사적인 관찰'은 본격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우연히 만난 모습들을 담았다." 

양 작가의 팬으로서, 그의 글을 읽는 독자라면 작가의 섬세함과 정갈함과 다정함에 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행간마다 진하게 담겨 있는 작가의 진심과 사랑을 읽어낼 것이라고 믿기에 나의 선택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독자와 저자 모두가 반짝반짝 빛났던 시간
 
▲ 양주안 작가 북토크 양주안 작가 북토크
ⓒ 김은미
 
드디어 지난 주말에 우리 도서관에서 열린 첫번째 <우주 LIKE 북토크>, '아주 사적인 여행'의 양 작가님과 만났던 두 시간은 유쾌함과 자유로움과 편안함과 따뜻함이 공존했던, 독자와 저자 모두가 반짝반짝 빛났던 시간이었다. 작가님의 따뜻한 성정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정말 맑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과 인상적인 문장들에 관해 청중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청중들의 다소 짓궂은 질문에도 여유롭고 친절한 미소로 성심껏 답변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관련된 뒷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고 간간이 청중들의 폭소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마이크를 든 누군가는 용기내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고, 작가의 강제 지목(?)을 받은 어떤 이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애써 감추며 수줍게 목소리를 냈다. 이것이 바로 북토크의 맛이다. 경청하는 태도, 소통하는 자유, 즉흥성의 재미와 감동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움은 책을 통해 기꺼이 시간을 나누기로 결심한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특별한 즐거움이 된다.

북토크를 마친 후 양 작가는 자신의 SNS에 '설레고 떨리고 즐겁고 재미있었다. 독자님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생각보다, 더 더, 그것보다 조금 더, 그만하면 됐다 싶은 것보다 약간 더 행복하다'라는 소회를 남겼다.

또 북토크에 참여했던 독자들은 '작가가 들려주는 겸손하고 진솔하고 유쾌한 이야기가 참 좋았다', '나이 들어 뭔가 의욕이 떨어지려고 하는 찰나, 작가의 이야기가 나를 격려해주는 따스한 말들로 들렸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나에게 작가님이 돌연히 질문을 던진 것도 재미있는 추억 중에 하나가 될 것 같다. 북토크 덕분에 주말을 알차게 채우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한다', '기대 안하고 왔다가 큰 선물을 얻어가는 기분'이라는 등 솔직담백한 여러 참여 후기를 남겨주셨다.

앞으로 양 작가님이 써내려갈 글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그 어떤 주제를 담더라도 자신 안에서 길어낸 솔직한 이야기를 쓸 거라는 믿음이 확실해졌다. 무조건 '진짜'를 담아낼 거라는 확신이다. 그리고 양 작가의 첫 책 <아주 사적인 여행>은 앞으로 그가 작가로 살아가는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의 균형을 맞춰주는 중심 축 역할을 할 것이다. 채우고 경험하고 깨달은 뒤 또다시 써 내려갈 작가의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다려지고 궁금해진다.  

작가의 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네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대를 받는 이유는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네가 덕이 있기 때문이야. 네 덕분이야"라고. 양 작가는 덕이 있는 사람이고, 그가 품고 있는 덕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의 첫 문장에서 나는 나의 직업을 통해 사심을 채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심이라는 말에 담고 싶었던 진심을 지금 밝힌다. 도서관에 방문하는 시민들로부터 듣는 "덕분에 좋은 시간이었어요. 덕분에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었어요"라고 말해주는 덕심으로부터 얻는 에너지와 행복, 그것이 바로 사서로서 나의 사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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