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에서 하룻밤 잤더니... 이상한 일에 휘말렸다

장혜령 2023. 11. 1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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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괴인>

[장혜령 기자]

 영화 <괴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인테리어 목수인 기홍(박기홍)은 친구 경준(최경준)과 밤늦게까지 술 마시다 공사 업체인 감성 피아노에서 잠을 청한다. 어차피 다음날 공사하러 다시 올 거라는 핑계였지만 괜한 일을 한 것 같다. 그날 이후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 둘뿐이었던 내부에 사람이 왔다 간 흔적과 찌그러진 차 지붕까지 발견되자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블랙박스를 돌려보며 그날 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역추적하는 일을 벌인다.

사건의 발단은 기홍의 집주인 정환(안주민)이었다. 딱히 하는 일 없이 집 안에서 빈둥거리는 한량처럼 보인다. 아내 현정(전길)과도 그다지 친해 보이지 않는다. 자기 집이지만 겉도는 인물이다. 원래 성격인 건지, 심심한 건지 술자리를 핑계로 기홍의 삶에 들어오려 한다. 이래저래 거절할 수 없는 세입자 신세인 기홍은 자주 정환과 시간을 보내다가 친해진다. 사람 관계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한편, 정환은 차 지붕이 망가진 게 기홍보다 더 궁금한 모양이다. 탐정 놀이에 빠진 철없는 어른이다. 급기야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을 찾자고 부추긴다. 두 사람은 어느 밤, 사건 현장을 찾았다가 기이한 일을 목격한다. 블랙박스 속 인물로 보이는 사람이 창문 밖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린 거다. 분명히 여기서 뛰어내렸는데 증발해 버렸다. 둘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더해져만 간다. 정체불명의 인물은 어디로 간 것일까.

비전문 배우가 만든 자연스러움
  
 영화 <괴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괴인>은 한 인물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관객 각자의 일상을 특별하게 되짚는 기회를 마련한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이벤트처럼 찾아온 의문의 사건은 평범한 사람을 이상하게도, 외롭게도, 흥분하게도 만든다.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바뀌는 미세한 변화를 천천히 보여준다.

마치 홍상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하다. 우연히 불러온 불확실한 관계, 그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을 담담하게 그렸다.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든 인간을 톺아본다. 관계라는 게 솔직히 피곤하고 부담스럽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허전한 복합적인 마음까지도 잘 포착했다.

기홍 역을 맡은 박기홍은 목수, 정환 역의 안주민은 요리사다. 현정 역의 전길은 쌍둥이를 둔 엄마고 하나 역의 이기쁨도 전문 배우가 아니다. 찌그러진 차 지붕을 고치려고 들린 카센터에서도 실제 자동차 정비공이 맡아 연기했다. 비전문 배우가 연기한 덕분에 일상 서사가 더욱 현실적으로 보인다. 아파트 단지에 배우 모집 전단을 붙여 캐스팅한 비전문 배우의 연기는 몰입을 높인다.

우리는 누구나 괴인이다
  
 영화 <괴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영화는 나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영화 속 인물 기홍을 통해 관객은 스스로를 자기 객관화하게 된다. 괴인은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호감, 비호감을 넘나드는 내 모습, 누구나 타인에게 괴인이 되고야 마는 상황을 열거한다.

기홍이 사장일 때는 나이 많은 직원을 하대하지만, 집주인 앞에서는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우유부단함을 보인다. 피아노 교습도 선생에게 관심 있어 늘 조심스럽지만, 일회성 만남이었던 여성에게는 대담하게 행동한다. 잔소리를 늘어놓는 부모님 앞에서는 듣기 싫다고 나가버리는 아들이지만, 갈 곳 없어 떠도는 소녀 앞에서는 마음 쓰여 차비를 쥐여주는 따스한 아저씨다.

혹시 인테리어라도 맡길까 싶어 현정의 친구 비위까지 맞춘다. 카페 투어도 군소리 없이 다닐 정도로 절박하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허세도 충만한다. 며칠째 일감이 없어 본가에 가겠다는 경준에게는 쓴소리를 쏘아댄다. 기홍처럼 누구나 이중적인 면을 가진 이상한 사람이다. 누군가와 관계 맺느냐에 따라 달라질뿐더러 상황에 맞게 나를 쪼개어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 가족, 친구, 연인, 혼자일 때 나는 각자 다르지만 결국에는 나다.

이는 기홍, 정환, 현정이 사는 집 구조와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두 집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연결된 독특한 구조다. 혼자이고 싶지만 함께일 때가 그립고, 많이 모여 있을수록 부담스러워 독립하고 싶은 인간의 이중성, 좋았다가도 나빠지기도 하는 관계의 희로애락을 되짚어 보게 한다.

영화는 일상적인 대화와 행동을 136분 동안 나열한다. 딱히 줄거리라고 요약할 만한 상황이 못된다. 기홍이 몰래 피아노 학원에서 잠을 청한 이후 유연한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힘든 기묘한 스토리가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날지 모르는 우리의 삶과도 비슷해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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