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이 보고 계셨다면…” 김용수-정삼흠-노찬엽 1994년 LG의 영웅들, 감격의 환희
LG 트윈스가 프로야구 패권을 되찾은 13일 서울 잠실구장은 화려한 불꽃이 쉴 새 없이 터졌다. 오랜 암흑기를 온몸으로 버텨낸 LG팬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우승 세리머니를 끝까지 지켜봤다. 모든 행사가 끝난 뒤에도 끊임없이 LG의 응원가를 목청껏 노래했다. 잠실구장 주변 상권은 감격을 이어가려는 LG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29년을 기다려온 만큼 더욱 감동이 컸던 LG의 이번 통합우승. 이날 경기를 남다른 감정으로 바라본 이들이 있다. 바로 1994년 통합우승 주역들이다. LG의 마지막 영웅으로 남았던 이들은 이제 무거운 짐을 덜고 친정팀의 앞날을 마음 편히 응원할 수 있게 됐다. LG의 대권 탈환을 맞아 1990년대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노송’ 김용수(63)와 ‘부엉이’ 정삼흠(62), ‘검객’ 노찬엽(58)을 13일과 14일 전화로 만났다.
먼저 연락이 닿은 김용수 전 중앙대 감독은 “후배들이 마침내 29년의 한을 풀었다. 선배로서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다”고 벅찬 소감을 말했다. 김용수는 LG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990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선 선발투수로 2승, 1994년 태평양 돌핀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선 마무리로 1승 2세이브를 올렸다. 역대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를 두 차례 거머쥔 이가 바로 김용수다.
이번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를 맡았던 김용수는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LG팬들을 보며 29년 전 그때가 떠올랐다”면서 “지금은 내가 LG를 떠나있어 슬프지만, 그래도 후배들이 정말 잘해줘서 뿌듯하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김용수는 1994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마지막 땅볼을 잡은 뒤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뒤이어서는 포수 김동수와 포옹하며 감격을 나눴다. 지금도 회자되는 이 장면을 두고 김용수는 “(김)동수와 미리 준비한 세리머니다. 동수가 ‘형님은 팔만 벌리고 계세요. 내가 달려갈게요’라고 해서 나는 동수 말만 따랐다. 그 장면도 이제는 역사가 됐다”고 여운을 남겼다.
같은 마무리 포지션인 후배를 향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김용수는 “고우석은 마무리라는 중압감이 컸을 것이다. 그런 부담이 한국시리즈 초반 부진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확실히 공이 높더라. 그래도 압박감을 잘 이겨내고 5차전을 잘 마무리해 기뻤다”고 말했다.
정삼흠 전 신일고 감독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김용수와는 반대로 1990년에는 마무리, 1994년에는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마운드를 지켰다. 정삼흠은 “이번 한국시리즈 3차전을 재밌게 봤다. 역전을 거듭하는 명승부와 끝내기 병살타는 야구에서만 나올 수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어 “사실 1994년에는 내가 원래 1차전 선발투수로 나가려고 했다. 태평양을 상대로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광환 감독님께서 이상훈이 1차전, 내가 2차전을 맡는 변칙 작전을 펼치셨고, 이 점이 주효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성대했던 축승회와 LG의 한을 상징하는 일본 아와모리 소주 이야기도 곁들였다. 정삼흠은 “1990년 경기도 덕평의 인화원에서 열었던 축승회가 여전히 생생하다. 또, 1994년 일본 스프링캠프에서 다 같이 아와모리 소주를 마셨던 추억도 떠오른다”고 웃었다.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4차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던 정삼흠은 “후배들이 참 힘겨운 징크스를 깼다. 이번 우승으로 팀이 하나가 돼야 정상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을 배웠으리라고 본다. 앞으로도 승승장구해서 LG만의 신바람 야구를 이어가길 응원하겠다. 또, LG팬들이 계속 유광점퍼를 입고 가을야구를 응원하는 장면을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독립구단 연천 미라클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노찬엽 코치는 1994년 당시 LG의 주장이었다. 개성이 강했던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 LG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노찬엽은 “LG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던 선수이자 지도자로서 LG팬들께 우승을 선물하지 못해 정말 죄송스러웠다. 이제야 마음의 짐을 덜 수 있게 됐다”고 운을 뗐다.
LG의 창단 구단주인 고(故) 구본무 회장도 떠올렸다. 구 회장은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해 지금의 LG를 탄생시켰다. 창단과 함께 1990년 통합우승을 맛봤고, 1994년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를 다시 제패해 최고 인기 구단으로 성장시켰다. 구 회장의 야구 사랑은 고가의 명품시계와 아와모리 소주로 대표되기도 한다.
노찬엽은 “5년 전 작고하신 구본무 회장님이 떠올랐다. 선수들을 아들처럼 사랑해주셨던 분이다. 하루는 전체 회식 자리였는데 어떤 옆집 아저씨가 고기를 굽고 계시더라. 구단 관계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회장님이셨다. 그만큼 푸근한 매력으로 우리를 챙겨주셨다. 이 우승 장면을 보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 참 아쉽다”고 했다.
올 시즌 LG는 오지환이 주장으로서 자기 몫을 다했다. 특히 1승1패로 맞선 3차전에선 극적인 역전 3점홈런을 때려내면서 한국시리즈 MVP가 됐다. 이제는 LG의 마지막 우승 주장이라는 타이틀을 후배에게 넘겨주게 된 노찬엽은 “오지환은 어린 시절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던 선수다. 이제는 LG를 대표하는 주장이 됐는데 동료들도 잘 이끌고, 공수에서도 주축답게 활약하더라. 명품 시계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웃었다.
김용수와 정삼흠, 노찬엽은 각각 2000년과 1996년, 1997년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 시기는 각각 달랐지만, 모두 LG에서 코치를 지내며 후배들을 길렀다. 물론 LG를 떠난 뒤에도 친정팀을 향한 애정은 변치 않았다.
노찬엽은 “그동안 좋은 유망주들이 많았지만, 성적에만 급급하다 보니까 이들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 그 사이 감독도 너무 자주 바뀌었고, 구단 운영 기조도 흔들렸다”면서 “1994년은 정말 전설로 남게 됐다. 이제는 우리가 아닌 후배들이 LG의 시대를 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지금의 기운을 오랫동안 이어갔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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