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사람 잘 상대하는 법, 박진영 말에 무릎을 탁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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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기자]
나는 다재다능하고 실력 있는 사람 한 명을 알고 있다. 누가 봐도 딱 떨어지는 일 처리는 기본. 무엇이든 그가 만지면 손본 티가 났으며 속도도 빨랐다. 여러 중장비부터 버스 운전, 작은 도구들까지 못 다루는 기계가 없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단점이 있다면 그는 범접불가 수준의 '까칠함'이 있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런 그에게 허락을 받고 부탁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팀원 중 한 분이 그분께 부탁을 드리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쩐 일인지 일주일째 입 밖으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되도록 그를 피하고 싶었기에 그와 대면하는 수고를 잠시 접고 '에라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틀었다.
까칠함 속 숨겨진 이야기
KBS에서 <골든걸스>라는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박진영은 이름을 대면 알만한 훌륭한 여성 가수 4인 인순이,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를 섭외해 걸그룹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었다. 음악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것 없는 대선배들 코치를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소울풀한 감성, 턱과 눈썹, 온 감정을 가사에 실어 혼신 다해 노래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에게 요즘 노래처럼 말하듯이, 발음을 뭉개고, 포인트 단어만 힘줘서 노래를 부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침을 꼴깍 삼켰다. 너무 흥미롭고 뒤가 궁금한 이야기에 몰입되어 2회차까지 방송을 유료 결제하고 첫 회부터 보며 그녀들의 무대를 상상했다. 첫 회에서 박진영이 인순이를 섭외하는 장면을 보던 때였다.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걸 봤다.
"까칠하지만 여린 은미 누나는 내일 만나려고요."
"우리 넷 다 까칠한데. 우리 다 까칠해."
"다 까칠하지만, 누나들 다 여린 걸 제가 알아요."
나는 이 대목에서 무릎을 '탁'쳤다. 아 그렇구나.
다재다능하지만 까칠한 그 분, 생각해보니 나는 그의 아내와 친분이 있었다. 아내분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녀의 말을 통해 분석한 그는 여리고 정에 약하며 착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그가 매우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 마음이 늘 헤아려졌었다. 그랬기에 몇 번쯤은 편하게 다가가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늘 긴장이 됐고 그의 비위를 맞추고 마음에 있는 말이든 그렇지 않든 그가 듣기에 좋은 말들만 골라 인정하고 칭찬하되 편하고 진솔한 느낌이어야 하니까.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주변에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어디든 한두 명쯤 있게 마련이다. 웬만하면 그런 사람들은 피하고 싶고 편한 사람들과 상대하며 즐겁게 일을 하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과도 협업을 하거나 공조를 구해야 할 때가 많은 것이 삶이다. 사람들은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힘들어서 일을 못하겠다고 말하곤 한다. 일 할때 유난히 까칠한 사람, 까다롭고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과 일할 때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그는 건물 시설 관리인이다. 나는 그 건물 2층 입구 벽에 너비 250 높이 300 정도의 합판을 이용한 구조물을 하나 설치해야 했다. 그런데 그곳 천정에 이전에 설치된 롤 스크린을 떼어냈다가 다시 달아야 하는 상황이라, 허락이 필요했다. 용기를 냈다. 다음 날 점심때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통화 괜찮으세요?"하자 아니나 다를까 그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해. 전화했으면 말을 해야지 뭘 물어"라고 했다. 1차 공격이 들어왔다. 살짝 예민했다.
"아휴, 이제 점심땐데 혹시 식사하고 계실 수도 있고 워낙 바쁘신 분이라 전화 통화 하시기 힘들까 봐 그러죠. 혹시 바쁘시면 끊고 나중에 다시 전화하려고요."
"그냥 말해, 뭔데."
그는 부드럽게 말하는 걸 어색해 했다. 여전히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를 썼다. 나는 박진영이 했던 말, 즉 누나들이 까칠하지만 '여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 듯이 그도 그렇다는 것을 다시금 기억했다. 그런 뒤 침을 꼴깍 삼키고 대화를 이어갔다.
"목구조물 설치에 롤 스크린이 방해가 되는데, 저희가 떼어내도 될까요?"
"아니 내가 떼야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롤 스크린을 다시 목구조물 설치 후 천장에 위치 이동해서 매달려고 하는데 저희가 직접 달아도 괜찮을까요?"
"그건 내가 해야지."
"저희가 해도 되는데, 너무 고맙습니다. 그런데 롤 스크린을 다시 다는 시점은 저희가 목구조물에 장식을 끝낸 다음이라야 해서 정확한 시간을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저희가 원하는 시점에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알았으니까, 언제든 말만 해."
▲ 칭찬과 인정(자료사진). |
ⓒ 픽사베이 |
까칠한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특별함은 필요 없다.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사랑과 인정, 칭찬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그건 변하지 않는 명제이며 우리 모두 그것이 기본값으로 세팅된 사람들이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까칠하거나 어려운 상대를 만났더라도 걱정할 것 없다. 상대를 인정하며 다가가면 된다. 부탁하는 일이 단지 허락을 받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직접 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직접 할 마음으로 말하기
내가 그 일을 할 마음으로 말하라. 그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고, 본인이 더 뛰어나다고 판단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십중팔구 그는 자신이 그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실력 있는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고 모든 일에 주도권 갖기를 좋아한다. 그 사람 입장에 들어가 말하고 다 아는 상황도 다시 설명하며 그가 주도권을 갖도록 질문하라. 그가 모든 일을 감독하는 기분이 들도록.
특별히 배려와 존중 감사를 잊지 말라. 까칠한 사람은 존대해도 맞대어 존대를 하지 않으며 오히려 간혹 신경 쓰이는 일에는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래도 '고맙다', '감사하다', '제가 할까요.' 같은 말은 상대의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게 만든다. 그도 통화 말미엔 친절해졌다.
<인간관계론>에서 데일 카네기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도록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바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랑과 인정, 배려와 존중을 원하는 마음은 '중요한 사람이 되고픈 욕망'이라는 존 듀이의 말로 표현할 수 있겠다.
상대방이 중요한 사람이 되게 하라. 스스럼없이 내어주는 마음, 상대의 말 뒤에 숨은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 기꺼이 책임질 준비를 하는 태도. 까칠한 사람과 협업해야 하는 상황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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