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제자리걸음"

이영광 2023. 11. 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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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온에어' 284] 시철우 YTN 촬영기자

[이영광 기자]

지난 10월 29일, 10.29 이태원 참사가 1주기를 맞이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참사는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유가족은 거리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1년 동안 유가족은 어떻게 지냈을까?

지난 4일 <YTN 탐사보고서 기록>에서는 '별의 기억' 편을 방송했다. 유가족 목소리로 시작한 이날 방송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 전국을 다닌 이태원 참사 유가족 이야기와 함께 삼풍백화점 참사와 대구 지하철 참사 등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그리고 생존자의 목소리를 담았다.

다큐 제작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9일 해당 회차를 연출한 시철우 YTN 촬영기자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시 촬영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 
 
 <YTN 탐사보고서 기록>의 한 장면
ⓒ YTN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떤가요?
"매번 방송 끝낸 다음에 많이 아쉽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마음이 더 쓰였어요. 여전히 슬픔이 지속되는 상황에 답답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 슬픔을 우리 사회가 진심으로 보듬어 안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또한 언론인으로서 그동안 계속 관심을 기울여 오기도 했지만 무언가 제도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어요. 그 일이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의 일로 국한되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제 답답함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이태원 참사 1주기와 관련해 다른 방송에서도 많이 다루더라고요. 차별화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차별화에 대한 고민은 항상 방송 제작하는 사람에겐 있죠. 저희가 이태원 참사 관련해서는 <공백-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의 기록(이하 공백)>을 제작하면서 다른 방송과 차별화된 구성을 보여드렸잖아요. 이번에도 많은 방송에서 여러 가지 콘텐츠를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조금 다른 시각으로 참사를 바라볼 수 있는 방송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희생자와 유가족, 피해자들께 누가 되지 않는 방송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생각해 봤는데, 그게 바로 많은 분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 듣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공백>을 통해 여러 유가족분을 알게 되었고, 유가족분들의 1년을 그 누구보다 더 잘 담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러면서 왜 분향소가 필요한지, 분향소가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어떤 위안과 치유의 공간이 되고 있는지를 담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지점이 다른 방송과 다른 지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는데, 서울광장 분향소는 그야말로 희생자 유가족과 희생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진심과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습니다.

또한 이태원 참사 당일의 상황이 시청자와 희생자 유가족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여전히 커다란 충격으로 남아있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당일 영상은 사용하지 않아야 겟다고 원칙을 정했는데 그 점도 다른 방송과 차별화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1년의 기록을 담되 우리가 제작했던 <공백> 이후에 벌어진 사건을 중심으로 지난 1년을 돌아보자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2월 4일, 참사 발생 99일이 되는 날 녹사평 시민 분향소에서 서울광장 분향소로 이동하는 장면으로 다큐멘터리를 시작했습니다. 시청광장으로 분향소를 옮기고 '기억'과 '추모'의 의미를 재정립할 수 있었어요. 실제 많은 시민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는데 그 점도 타 방송과 다른 지점이 된 것 같습니다."

- 제목이 '별의 기억'이잖아요. 어떤 의미인가요?
"별은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159명을 의미합니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참사로 소중한 생명을 잃은 가족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별 가족'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서울광장 분향소에 159명의 영정 사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향소를 찾고 애도하는 많은 분은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159명의 희생이 우리 사회가 더욱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가 왜 '기억'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는 의미로 '별의 기억'을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

- 프롤로그에서 유가족 목소리를 담으셨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결론을 말씀드리면 이 슬픔은 절대 잊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시청자 여러분께 전달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취재 시작하고 1년 동안 자녀의 유골함을 집에 보관하고 계신 분들의 사연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절대 잊을 수 없기 때문이고,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저는 정말 그 마음이 너무나 공감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1년이 되어가면서 계속 끌어안고 살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절대 잊을 수도, 인정할 수도 없지만 봉안당으로 유골함을 옮길 수밖에 없는 유가족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성 안에 중요한 지점으로 담았고요. 절대 잊히지 않은 사랑하는 가족의 존재와 지울 수 없는 슬픔이 그대로 담겨있는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장면이기 때문에 프롤로그로 시청자 여러분께 전달해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 분향소에서 유가족 분들끼리 지내시면서 서로 위로받고 계신 것 같아요.  
"참사의 충격은 평생 잊히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하잖아요. 희생자 유가족분들이 삶의 희망을 발견하고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분향소입니다. 서로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가족도, 주변 지인과 동료도 참사로 인한 아픔을 100% 공감하기 힘들다고 하거든요.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희생자 유가족에게 비수가 되어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선의를 가지고 무심코 뱉은 이야기일지라도 그 분들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희생자 유가족에게 위로가 되고 삶의 희망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아픔에 공감하고 한마디 한마디를 제대로 귀담아듣는 것인데, 사실 이 모든 것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분들을 만났을 때 가장 효과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합니다. 영국에서는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같은 슬픔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정해놓고 있고요. 그런데 우리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었고 유가족분들이 스스로 수소문해서 찾고 찾아서 만남을 갖게 된거죠. 그게 유가족 협의회로 발전했는데 이 분향소라는 공간에서 서로 아픔을 공유하고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울고 웃는 치유의 과정을 경험했다고 다들 말씀하세요."

- 특별법 제정을 위해 유가족이 전국을 다녔고 단식도 했는데요. 진전이 좀 있나요? 
"사실 단식 이후에 진전된 건 있었습니다. '별의 기억'에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1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요. 녹사평에서 서울광장으로 분향소를 옮긴 이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희생자 유가족들이 아픔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고만 있다가 비로소 행동을 시작한 것인데요.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등 시민사회가 연대하고 분향소라는 공간에서 살아갈 을 얻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3월 27일, 참사 150일이 되는 날 전국을 도는 진실버스에 오르면서 유가족들의 '특별법' 제정을 위한 활동과 희생자 기억과 추모를 위한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당시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대한 국민 청원도 시작됐습니다. 진실 버스로 전국을 도는 일정이 열흘이었는데, 열흘이 채 되지 않아 청원 동의 5만 명이 달성됐습니다. 유가족들에게 커다란 힘이 됐던 순간입니다. 이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지만 국민의힘이 특별법을 반대하면서 유가족들이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게 됐습니다. 지난 6월에 159명을 기리는 159km 릴레이 행진을 하면서 그사이에 단식도 돌입한 겁니다. 열흘 동안 단식을 하셨는데 단식이 끝나는 날 국회 본회의에서 특별법이 신속처리안건 즉 패스트트랙으로 지정이 됐어요. 그리고 특별법 법률안이 지난 8월 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확정이 되면서 이제 본회의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분명한 진전이죠."

- 정부는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다 됐다는 입장인가요?
"네. 여러 차례 정부 관계자들 입에서 나왔지만 가장 확실하게 처음 나온 건 지난 8월 31일에 이상민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서 정부는 특수본 수사와 국정조사로 진상규명이 끝났고, 특별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겁니다. 지난 10월 19일 유엔 자유권 심의위원회 위원회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묻는 자유권 심사 위원의 질문에 진상규명이 끝났다고 답변한 정부 대표단의 입장 발표가 가장 최근 내놓은 정부의 입장이고요."

- 정부는 왜 참사가 일어났다고 하나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항상 이야기합니다. 핼러윈 축제는 '주체가 없는 행사'라는 입장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여러 경로를 통해서 우리 정부가 제대로 예방하지 못했고, 대비하지 못했고,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또 참사의 원인 규명은 아직도 미완으로 끝난 국정조사 이후 제자리걸음이고 사회는 당시의 아픔을 그대로 안고 돌아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 대구 지하철 참사와 성수대교 참사, 삼풍백화점 참사 등도 담으셨는데요. 
"벌써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 20년이 지났고요. 성수대교 참사는 내년이면 30년이 됩니다. 삼풍백화점도 내후년이면 30년이 되고요. 그런데 아직도 그 참사에서 생존하신 분들 그리고 참사 피해 희생자 유가족분들은 공통적으로 책임에 대해서 말씀하세요. 근데 이태원 참사까지 30년, 20년, 10년, 이 주기로 대형 참사가 반복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독립적인 조사 기구도 없고 책임자가 제대로 처벌받은 사례도 보지 못하고 있어요.

책임지지 않는 사회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분들의 말씀을 들으려고 찾아간 건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답변을 듣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의 말씀으로 책임과 진상 규명을 이야기 하는 것보다 과거 참사의 피해자나 희생자 유가족들이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거라는 생각했어요. 그분들이 책임에 대한 이야기들을 대신 해주는 걸로 스토리 라인을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공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추모하고 애도하는 공간은 기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에요. 추모하고 애도하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쉽게 잊는 것이고 참사가 반복되는 것이라는 말씀을 대구 지하철 참사, 성수대교 참사,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분들이 해주셨어요.  성격은 다르지만, 미국은 911테러가 일어난 곳에 지금도 그 상태 그대로  추모 공간을 조성해 시민들이 잊지 않게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참사는 참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곳에 그것도 먼 곳에 추모비를 건립했고,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비는 이름도 없는 조형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참사를 기억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데 얼마나 사회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지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다큐를 제작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참사를 대할 때, 공감하지 못하는 아픈 사회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여야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 시스템과 시민 안전에 대한 문제잖아요. 그럼에도 (이태원 참사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는 정치권도 대단히 문제가 있다고 보이고요. 정쟁화가 아니라 시민의 안전은 여야, 너나 할 것 없이 챙겨야 되는 당연한 의무잖아요. 그리고 우리 시민들은 안전하게 살 권리를 당연하게 가지고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하루빨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이 담긴 정부와 정치권의 전향적인 모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 시스템이라든지 안전에 관한 법률 혹은 규칙들을 제정하고 다시금 손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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