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그날만 기다린 ‘바보 LG’의 눈물
이상훈, 이동현, 박용택 등 '바보 LG'
달마아저씨 등 고인이 된 LG팬도 관심
편집자주 - LG트윈스가 13일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1994년 우승 이후 29년 만이다. LG트윈스는 세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홈구장인 잠실구장에서 우승을 확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MVP는 3개의 홈런을 터뜨린 LG트윈스 주장 오지환이 차지했다. LG트윈스가 다시 우승하기까지 29년의 세월은 땀과 눈물의 역사다. ‘바보’라 불린 그들은 왜 그러한 삶을 선택했는지, 한국시리즈 우승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본다.
2004년 당시 SK와이번스 좌완 투수 이상훈의 은퇴는 야구계에 충격이었다. LG트윈스에서 트레이드된 이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메시지와 함께 현역 선수 생활을 접었다.
이상훈의 등번호 47번은 지금도 LG 팬들을 먹먹하게 하는 숫자다. 한국 프로야구 40년 역사에서 이렇게 은퇴한 이는 없다. 이상훈은 연봉 6억원을 포기하고, 스스로 물러난 ‘바보’다.
실력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선수라는 점에서 그 결정은 충격적이었다. LG 시절인 1994년 18승, 1995년 20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한 좌완 에이스 투수였다. 1997년 37세이브, 2003년 30세이브로 구원왕까지 차지했다. 이상훈이 LG에서 선수로 뛴 기간은 단 일곱 시즌에 불과하다. 하지만 역대 LG 선수 가운데 정신적인 지주를 꼽으라면 팬들은 이상훈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떠올린다.
경외감의 대상 47번 이상훈…투혼의 상징 18번 이동현
LG 선수들에게 등번호 47번은 경외감의 대상이다. 특히 투수에게는 의미가 더 특별하다.
많은 투수가 이상훈을 롤모델로 삼았다. 대표적인 인물은 ‘롸켓’으로 불렸던 LG트윈스 출신 투수 이동현이다. 190㎝가 넘는 큰 키와 떡 벌어진 어깨, 험상궂은 인상까지, 이동현은 상대 타자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동현은 큰 키에서 내리꽂는 강속구가 일품이었다.
이동현은 고교에서 프로로 직행하자마자 선발, 중간, 마무리 투수를 오가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투수의 생명과 다름없는 팔꿈치 인대를 잃었다. 부상으로 세 번이나 수술대에 오르는 모습을 팬들은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
다시 그라운드에 서기를 바라는 팬들의 마음이 통했는지, 그는 기적처럼 돌아왔다. 하지만 장기였던 강속구를 잃어버린 채, 기교파 투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동현이 다쳤는지, 그가 기교파 투수로 변신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팬들은 알고 있다.
구단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이동현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LG트윈스만 바라본 ‘바보’ 이동현은 LG 팬들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2019년 9월29일 이동현의 은퇴식은 팬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는 마운드에서 부친에게 큰절을 올리며 이런 말을 남겼다.
이동현은 더 뛰어난 선수가 되지 못한 본인을 자책했지만, 팬들에게 그는 어떤 슈퍼스타보다 대단한, LG의 투혼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이동현은 선배 이상훈과는 다르게 우승을 경험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비운의 주인공은 이동현 한 명이 아니었다. 1994년 이후에 입단했던 LG 선수들 모두가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역대 LG 출신 선수 가운데 가장 두터운 팬을 확보한 최고의 스타, 박용택이다.
LG의 심장으로 불린 인물, LG는 곧 박용택이었다. 2002년 입단한 그는 마지막 현역 시즌이었던 2020년까지 불꽃 같은 기록을 이어갔지만, 우승 반지와는 인연이 없었다. 한국 프로야구 최다안타의 주인공이자 LG의 레전드로 불렸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은 경험하지 못했다.
박용택이 자유계약선수가 됐을 때 LG트윈스가 책정한 금액보다 약 20억원을 더 주겠다고 한 구단이 있었지만, 그는 LG를 떠나지 않았다.
박용택이 마흔 살이 넘도록 현역으로 뛰면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이유, 그는 누구보다 LG의 우승을 꿈꾼 선수였다. 수많은 팬이 잠실구장을 찾아 ‘박용택 안타’를 외치며, 우승을 갈망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박용택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증명했던 ‘바보’ 박용택. 그는 야구에 진심인 선수였다. LG 팬들은 박용택의 힘으로 우승을 일군 뒤 펑펑 눈물을 쏟아내는 ‘울보택’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용택은 현역 마지막 시즌까지 3할 타율을 기록한 강타자였지만, 우승의 대업은 후배들에게 물려준 채 화려한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최고의 선수가 된 LG 캡틴 오지환
박용택이 손꼽는 차세대 LG의 상징은 2023시즌 주장 오지환이다. 오지환은 다른 의미에서 LG 팬들의 아픈 손가락이다. 신인 시절부터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다 받았던 인물, 오지환의 별명은 ‘오지배’다. 경기를 지배한다고 해서 생겨난 별명인데 아픔이 있는 별명이다.
오지환은 강한 어깨와 탁월한 운동능력을 지닌 선수다.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수비 포지션 중 하나인 유격수를 담당한다. 다른 팀의 선수들보다 수비 범위가 넓은데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실책을 많이 저지르면서 오지배라는 불명예의 주인공이 됐다. 실책을 범할 때마다 그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고교 졸업 이후 LG에 합류해 20대 초반부터 주전 유격수가 됐던 그는 LG에서 가장 많은 마음고생을 경험한 선수다.
하지만 팬들은 넓은 수비 범위 때문에 실책성 플레이가 더 부각됐다는 걸 알고 있다. 다른 수비수들이 오지환에게 많이 의지했고, 그런 부담이 실책 플레이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박용택만큼이나 야구에 진심인 오지환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토대로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수비력을 지닌 유격수, 국가대표 유격수로 성장했다.
오지환은 2019년 시즌 뒤 4년 총액 40억원이라는 헐값에 가까운 금액으로 재계약했다. 오지환 역시 돈을 생각했다면 훨씬 좋은 조건으로 그를 필요로 하는 구단에 합류했겠지만, LG에 진심인 ‘바보’ 오지환은 결국 친정팀에 남았다. 그리고 자기의 진가를 성적으로 증명했다.
2020년 3할 타율을 기록하고, 2022년 25개 홈런을 기록하는 등 타자로서도 맹활약한 오지환은 팬들의 우승 갈증을 풀어줄 기대주로 성장했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3개의 홈런을 터뜨리는 등 시리즈를 지배한 그는 MVP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29년 인고의 세월을 버텨낸 '바보 LG 팬들'
어쩌면 진짜 LG 바보는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29년 인고의 세월을 한없이 기다려준 팬들이다. 두산이나 기아, 삼성 등 야구를 잘하는 다른 팀의 팬이었다면 그 세월 동안 여러 차례의 우승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 LG 팬들은 우직하게 한 팀만 응원했다.
LG 팬이 된다는 것은 험난한 삶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었다. 단지 LG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팀 팬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일도 있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DTD, LG 선수들과 팬들은 그 저주에 한동안 시달렸다.
LG 팬들은 극성 그리고 열성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2014년 10월2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BO 준플레이오프 3차전은 역대급 떼창 응원으로 알려져 있다. 박용택과 더불어 LG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인 ‘적토마’ 이병규가 대타로 등장하자 팬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멀리 떨어진 코엑스에서도 이병규 응원 함성을 들었다는 전설의 바로 그날이다.
상대 투수를 주눅 들게 할 정도로 열성적인 응원을 하는 LG 팬들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을야구에 번번이 오르지 못했던 이른바 암흑기 시절 LG 팬들은 감독 청문회를 요구할 정도였다. LG에서 뛰었던 선수들은 다른 팀과 비교할 수 없는 정신적인 압박감을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LG 팬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기다림의 세월이 무려 29년이다. 1994년은 국민 첫사랑으로 불렸던 배우 수지가 태어난 해다. 1994년 이후에 태어났거나 LG 팬이 된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LG는 야구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선수단의 짜임새와 실력 등은 정상급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고비를 넘지 못하면서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지난해 LG는 정규시즌에서 막판까지 우승 경쟁을 하다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가을야구에서 키움에 패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됐다. 큰 경기에 약하다는 징크스는 LG 구단 전체에 불안한 기운을 스며들게 했다.
LG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올해에도 ‘분수령 트윈스’라 불렸다. 단독 1위를 질주해도 팬들은 뒤집힐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정규시즌 1위가 확정되기 전까지 누구도 안심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도 마찬가지다. 1차전 패배 이후 2차전 1회, 0대 4로 끌려갈 때까지만 해도 올해도 역시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번져 나갔다.
하지만 오지환과 박동원의 극적인 홈런과 유영찬, 함덕주 등 중간 투수들의 역투가 이어지면서 극적인 대역전승을 일궜고 이를 토대로 대업을 이뤘다. 13일 우승이 확정된 이후 ‘바보’ LG 팬들은 29년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서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토록 바랐던 LG 우승을 끝내 보지 못한 이도 있다. LG 진성 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그 이름 ‘달마 아저씨’다. 장애 때문에 몸은 불편했지만, 특유의 넉넉한 웃음으로 LG 관중석의 마스코트 같은 역할을 했다. LG의 심장, 박용택을 응원했던 달마 아저씨는 선수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달마 아저씨는 궂은 날씨에도 잠실구장을 찾아 LG를 응원했고, 누구보다 우승의 그 장면을 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달마 아저씨는 2014년 6월 생을 마감했다. LG 구단과 선수들은 달마 아저씨의 장례식에서 예를 다하면서 떠나간 그를 추모했다. 달마 아저씨는 우승의 순간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팬이 있다. 누군가에게 추억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달마 아저씨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LG 팬들은 그렇게 서로를 기억하며 안부를 묻고 있다.
29년 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29년의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지. 이제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관해서….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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