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음식 중독입니까

최은서 2023. 11. 1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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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탕후루' 열풍... 설탕과 지방에 중독되어 가는 소비자, 식품기업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최은서 기자]

'마라탕후루'는 마라탕과 탕후루를 합친 말로 최근 10~20대 사이에서 가장 각광받는 식사와 디저트 코스다. 언론, 정치권, 의학계로부터는 건강을 망치는 불량식품이라고 온갖 몰매를 맞고 있는 조합이기도 하다. 심지어 탕후루 가게의 프랜차이즈는 근래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대치동 학원가에는 한 집 걸러 한 집 수준으로 많은 수준이다.

탕후루는 현대인의 건강을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고, 얼마 전 '달콤 왕가탕후루' 관계자는 국정감사에도 소환되었다.  
 
 탕후루
ⓒ 최은서
 
그런데 자극적인 식습관이 과연 현대사회에 갑자기 생겨난 현상일까? 사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단짠'(달고 짠)의 문화에 길들여져 있었다. 학창 시절 생라면에 스프를 뿌려서 맵고 짠 음식을 먹은 후 달콤한 슬러시로 입을 달랬다. 떡볶이와 튀김을 먹은 후에 설탕 코팅이 된 도넛을 후식으로 먹곤 했다. 심지어 아예 설탕 한 국자를 녹여서 만든 달고나를 떼어먹고, 초코악마빙수, 허니브레드 등 디저트 열풍이 불기도 했다.

이 단짠의 계보를 그대로 이어온 결과 국내 19세 이상 비만 유병률은 2005년 31.4%에서 2021년 37.2%를 기록했다. 20대 당뇨환자는 지난해 기준 최근 5년간 47% 늘었고, 20대 고혈압 환자는 같은 기준으로 30% 증가하였다.

과거에는 재료 그 자체로 먹거나 그대로 익혀서 먹곤 했던 과일, 야채, 고기 등의 음식을 오늘날에는 설탕, 버터, 소금, 밀가루 등 고열량 재료들과 함께 요리해서 더 달고, 짜고 자극적이게 가공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예를 들어 구운치킨→양념치킨, 딸기→탕후루).

이러한 가공식품들은 구하기가 매우 쉽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도 있고 배달 주문으로 집에서 시켜 먹을 수도 있는 환경이 됐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자극적인 먹방을 추천한다.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식습관이 꾸준히 한국 사회의 비만, 당뇨, 고혈압 유병률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오래전부터 사랑해 온 달고 짠 음식 문화도 하나의 사회 문제로 볼 수 있다.

음식에 중독될 수도 있다? 
 
 마라탕
ⓒ 최은서
 
최근 들어 식품, 의학 관련 연구자들에게 크게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 있다. 바로 '음식 중독'이다. 음식 중독이란 특정 음식을 반복적으로 과다하게 섭취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아직 공식적인 질병군은 아니지만 최근 비만, 고혈압 등 현대사회 들어 부쩍 늘어난 질병들이 현대인의 식습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여겨져 관련 연구가 계속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이 음식에 중독된 것 같아'하는 음식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음식 중독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는 물질은 '설탕과 지방'이다. 설탕은 사탕수수 같은 식물을 정제해서 만든 화합물이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섭취하면 뇌에서 도파민 분비가 반복적으로 유발돼 '보상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뇌에는 인간에게 의욕, 흥미를 불어넣는 보상회로가 있고, 어떤 행위를 하여 이 보상회로가 활성화되면 쾌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을 분비한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기분이 좋아져서 자꾸 그 행위를 하고 싶어지고 그게 중독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도파민 분비 문제의 비슷한 사례로 알코올 중독, 니코틴 중독, 마약 중독 등이 있다. 여타 다른 중독 증상과 동일 선상에서 음식 중독을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러한 보상 시스템의 특성이 음식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증거가 여러 연구를 통해 나오는 중이다.

음식 중독은 속도에 의해 좌우된다

가공식품에 둘러싸인 현대인의 식단이 사람들의 식습관을 어떻게 교란하는가.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가공식품 업계가 사람들의 입맛을 어떻게 길들여 왔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다. 중독을 일으키는 데에는 흡입하는 물질 그 자체만큼이나 그 물질이 뇌에 얼마나 빨리 도달하느냐도 중요하다.

속도는 담배를 헤로인만큼 중독성 있게 하는 결정적 요인 중 하나이다. 담배 한 모금을 흡입하면 연기가 10초 만에 입속의 니코틴을 폐, 혈액, 뇌까지 전달한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고 싶은 감정을 느낀 순간부터 담배 한 모금이 주는 만족감을 느끼는 데 단 10초면 충분하다.

그런데 혀 속에 들어온 설탕은 뇌를 활성하는데 단 0.6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담배보다 약 20배 빠른 속도다. 여기에 지방 성분까지 가세하면 뇌는 더 큰 자극을 받게 된다. 설탕과 지방이 모두 함유된 음식은 설탕과 지방이 각각 다른 경로로 뇌를 자극해서 보상 횟수를 늘리고, 뇌의 흥분 상태를 높인다. 소금 역시 지방이 주는 자극을 더욱 강화한다.

자연에서는 사실 지방과 설탕이 결합한 음식을 찾기 어렵다. 대체로 이런 음식들은  가공식품이다. 이렇게 설탕과 지방 그리고 나트륨까지 듬뿍 들어있는 가공식품은 다른 중독 물질보다 구하기 쉽고 개봉해서 바로 먹으면 된다.

식품업체가 광고를 많이 하고, 먹음직스럽게 음식을 보여줘서 유혹에 나도 모르게 빠질 가능성이 크다. 초가공 식품이란 식재료를 가공한 다음 향료나 색소, 인공감미료 같은 첨가물을 넣은 식품이다. 아이스크림이나 감자칩, 탕후루 등이 있다. 영국 의학저널에 실린 한 보고서에 따르면 초가공 식품에 성인은 14%, 청소년은 12%가  중독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음식 중독, 식품업계의 책임도 있을까 
   
 비만
ⓒ 언스플래쉬
 
그렇다면 가공식품업체는 이러한 음식 중독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공식품 업체들의 목적은 설탕에 대한 소비자들의 지복점(至福點, 욕망이 충족된 상태), 즉 설탕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만족을 찾아내 무자비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빵, 요거트, 토마토 주스 심지어 짠맛 베이스의 핫도그, 스파게티 소스, 냉동 치킨까지 설탕을 첨가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에 대한 지배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설탕, 소금, 지방을 무기로 삼고 있다. 식품 기업들은 그 시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이나 향을 예측하고 연구하는 화학실험을 한다. 기업이 소비자들의 욕구를 알아내 이윤을 내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당연한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적신호가 켜졌다. 그렇다면 기업에도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마라탕후루 현상과 같은 일련의 일이 말해주는 건, 바로 지금이 우리가 가공식품이 주는 빠른 속도의 쾌감에서 잠깐만이라도 이성을 되찾아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되짚어 볼 때란 것이다. 빠른 쾌감만큼 그 안에 우리가 지불해야하는 대가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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