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리도카인'…양한방 의료계 또다시 갈등
봉침액에 국소마취제 '리도카인'을 섞어 환자에게 사용한 한의사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의사단체와 한의사단체가 또다시 맞서고 있다.
14일 대한한의사협회 등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봉침액에 국소마취제 리도카인을 혼합 사용한 한의사 A씨에게 지난 10일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한의사가 리도카인을 사용한 것은 면허 이외의 행위여서 유죄라는 취지의 판결이다. A씨는 2022년 10월 봉약침액과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을 혼합해 환자들의 통증 부위에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의사단체인 전국의사총연합이 리도카인을 사용하는 한의사가 있다는 제보를 받아 경찰에 고발하면서 재판을 받게 됐다. A씨는 검찰로부터 벌금 800만원의 약식기소를 받았지만, 이에 반발해 정식재판을 청구하면서 판결을 받게 됐다. 리도카인은 국소마취와 부정맥 치료 등에 쓰이는 약물로, 정맥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환자에 투여된다.
판결이 나오자 대한한의사협회는 반발하고 나섰다. 한의협은 13일 입장문을 내고 "법원의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며 "항소심에서는 국민의 진료 편익성을 고려한 판결이 내려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의사가 전문의약품을 진료에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합법이라는 게 한의협의 주장이다. 한의협은 "봉침치료와 같은 한의치료 시 환자의 통증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리도카인과 같은 전문의약품을 한의사가 진료에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당연히 합법적인 행위"라며 "현재 한의사가 사용하는 한약(생약)제제 중에도 전문의약품이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의약분업 제도를 바탕으로 한 의료법과 약사법의 전문의약품 규정에서 의약분업 대상이 아닌 한의사가 처방주체에 빠져있어 이 같은 논란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이 나오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의협은 10일 판결이 나오자 즉각 입장문을 내고 "의사는 의료행위를, 한의사는 한방 의료행위만을 할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서울남부지방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반의약품 및 전문의약품을 처방·조제하는 것은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에 대한 판결"이라며 "한의사들이 이번 판결을 숙지해 불법적인 무면허 의료행위를 이어가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길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법원 판결을 둘러싼 양쪽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8월과 9월에도 법원이 한의사가 뇌파계 및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잇달아 내놓자 의협 등 의사단체가 즉각 반발했다.
대법원은 지난 8월 한의사 B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한의사 면허자격 정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B씨는 한 일간지에 뇌파계를 이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고 한약으로 치료한다는 광고를 냈다가 3개월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고,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대법원은 "의료공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개발된 진단용 의료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이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려면 종전과 다른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면서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이어 9월에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활용한 한의사 C씨가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C씨가 초음파 진단기를 보조적으로 활용해 진료한 행위가 한의학적 원리에 의하지 않는 점이 명백하다거나 의료행위의 통상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의료법 규정상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C씨는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는데, 파기환송심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당시 한의협은 "이번 판결은 지금까지 한의사에게 굳게 채워져 있던 현대 진단기기 사용 제한이라는 족쇄를 풀어내는 소중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사법부의 준엄한 판결에 따라 관계당국은 국민의 건강증진과 편익을 위해 법적·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의협은 의료법 체계를 무너뜨리는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의사 및 한의사로 하여금 각자의 면허범위에서 의료행위 및 한방의료행위를 하도록 규정하는 의료법 체계를 송두리째 무시했다"면서 "이로 말미암아 초래될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외면한 불합리한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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