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어린 놈이…”

태원준 2023. 11. 14.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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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대한 감수성이 한국만큼 예민한 나라를 굳이 꼽는다면 베트남 정도가 있다고 한다.

베트남어는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가 적은가에 따라 '나'와 '너'를 일컫는 호칭이 달라져서, 낯선 이를 만나면 나이부터 묻는 게 일상화했다.

이렇게 존칭이 발달한 언어와 나이를 따지는 문화의 선후관계는 닭과 달걀처럼 명확치 않은데, 나이를 묻는 것을 결례로 여기는 서양에 비해 동양이 한층 민감한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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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논설위원


나이에 대한 감수성이 한국만큼 예민한 나라를 굳이 꼽는다면 베트남 정도가 있다고 한다. 베트남어는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가 적은가에 따라 ‘나’와 ‘너’를 일컫는 호칭이 달라져서, 낯선 이를 만나면 나이부터 묻는 게 일상화했다. 이렇게 존칭이 발달한 언어와 나이를 따지는 문화의 선후관계는 닭과 달걀처럼 명확치 않은데, 나이를 묻는 것을 결례로 여기는 서양에 비해 동양이 한층 민감한 건 분명하다.

동양에서도 나이를 어디까지 따질 것인가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른 잣대를 보였다. 장유유서의 정서를 공유하는 중국과 일본도 우리처럼 한두 살 차이로 호칭의 용례가 달라지진 않고, 조선시대만 해도 ‘상팔하팔’이라 해서 위아래 여덟 살 차이까지는 친구처럼 지내라 했다. 유명한 친구인 오성과 한음이 다섯 살 차이였으니, 같은 해 태어났어도 몇 월생이냐로 구분 짓는 요즘 세태는 전통이라 하기 어렵다.

세계에서 가장 예민하다는 한국인의 나이 감수성은 일제 강점기와 군부 독재에서 연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 일제의 기수 문화와 군부의 계급 문화가 사회에 전이돼 기수나 계급이 없는 관계에서도 서열을 따지느라 나이를 들추게 됐다고 한다. 싸움이 붙었을 때 흔히 “너, 몇 살이야?” 하는 것도 우리 사복에는 계급장이 없기 때문이다. 군인이 상대 계급장을 보고 알아서 기듯이, 나이를 까면 저 친구가 알아서 기겠지 하는 기대가 이런 말에 담겨 있어서, 그리 행동하는 이들을 요즘 젊은이는 ‘꼰대’라 부른다.

돈 봉투 사건 피의자인 송영길 의원이 한동훈 법무장관을 “어린 놈이…”라고 비난했다. 맥락을 보면 흥분해 튀어나온 말인데, 그랬다는 것은 이 사람의 무의식이 나이에 얼마나 큰 권위를 부여하고 있는지 말해준다. 한 장관을 찍어 누를 게 고작 나이밖에 없다는, 계급 서열주의 군부에 맞서 싸웠던 사람이 그걸 모방한 나이 서열주의 말고는 내세울 게 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에게 한동훈은 건방져 보였을지 몰라도, 그리 말하는 송영길은 참 비루해 보였다. 한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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