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삼촌’… 사랑 담은 웃음으로 수용자 자녀들 마음 문 열다

최기영 2023. 11. 1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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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희망의 교회로] <2부> 당신이 희망 전도사
한기철 파란나라 대표
한기철 파란나라 대표가 지난 3일 아동복지 단체 세움의 ‘복합 열림 공간’에서 모임을 마친 뒤 수용자 자녀에게 선물을 전하며 안아주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5시. 데이지꽃 모양 풍선, 반짝반짝 빛나는 장식들로 꾸며진 서울 남산 아랫자락의 한 공간이 웃음소리와 환호로 떠들썩해졌다. “준비~ 시작!” 진행자의 구호에 맞춰 두 팀으로 나뉜 사람들이 상대 팀 테이블에 놓인 플라스틱 컵을 쓰러뜨리기 위해 형형색색의 볼풀공을 던지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나이와 성별, 사는 곳도 제각각이었지만 얼굴에 한껏 번진 미소는 한 가지를 말하고 있었다. ‘행복’이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수용자 자녀들과 이들에게 기댈 어깨가 돼주는 멘토들. 모인 곳은 수용자 자녀와 가족 지원 활동을 펼쳐 온 아동복지 전문단체 세움(대표 이경림)의 복합 열림 공간이다(국민일보 2021년 2월 19일자 33면 참조).

“오늘 뭐 하고 놀까요?”(기자) “글쎄요. 언제나처럼 아이들이 주사위 던져서 나오는 대로죠. 수류탄 전쟁, 손 당구, 전기 뱀장어, 탁구공 빙고, 눈 가리고 술래잡기. 어떤 게 나올지 모르지만 엄청 재밌을 거예요(하하).”(한기철 대표)

이날 모임 시작 2시간여 전, 진행을 맡은 멘토 한기철 나그네놀이문화선교회 파란나라(이하 파란나라) 대표와 나눈 첫 대화다. 그가 타고 온 SUV 차 안엔 상자 3개, 백팩 2개, 대형 쇼핑백 2개 분량의 놀이 도구와 게임용 테이블까지, 아이들과 온종일 놀고도 남을 기구들이 가득했다.

사회복지학 전공자였던 대학 시절부터 ‘청소년과 놀이문화 연구소(소장 전국재)’ 자원 지도자와 간사 생활을 한 그에게 놀이를 통한 복지는 호흡만큼이나 떼놓을 수 없는 일상이었다. 간사 커플이었던 아내와 아동청소년 전문 선교사로서 몽골에서 생활하기도 한 그는 국내외 다음세대 선교에 동참하기 위해 5년 전 파란나라를 설립했다. 그는 “만남과 사귐은 복음의 온기가 자연스레 전달되는 통로이고 놀이는 아이들과 관계 맺는 가장 좋은 도구”라고 했다.

한 대표는 파란나라 설립 이전부터 인연을 맺었던 세움과 동행하며 수용자 자녀들의 ‘찾아가는 멘토’(찾멘)가 돼줬다. 모임을 열어 놀이하고 대화하며 일상의 숨통이 돼주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계획을 짜며 1박2일 MT를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만난 친구들이 100여명, 전국 방방곡곡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마다 발이 돼주는 차량은 5년 새 이동 거리 20만㎞를 훌쩍 넘겼다.

한 대표(가운데)가 수용자 자녀들, 봉사자들과 즐겁게 놀이하는 모습.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차 안에서 찬양 ‘더 블레싱(The blessing)’을 들으며 기도하는 게 루틴입니다. 가사 ‘히이즈위드유(he is with you)’를 되뇌며 하나님께서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해 주시기를 소망하죠. 육체적으로 힘들 때도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웃음 하나하나가 제게 새 힘을 줘요.”

법무부 교정본부 사회복귀과가 발표한 ‘2023년 수용자 자녀 현황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용자 자녀의 수는 5만4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팽배한 가족주의로 인해 ‘범죄자의 자녀’로 낙인찍힌 채 혐오의 대상이 되고 정서적 위축을 겪으며 건강한 성장 기회를 잃는 게 현실이다.

가족 중 남겨진 보호자의 고충도 상상 이상이다. 수용자 대신 피해자와 합의를 해야 하기도 하고 채무를 대신 갚거나 거처를 옮겨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건강한 양육 환경을 구축하기 힘겨울 수밖에 없다. ‘제2의 피해자’ ‘숨겨진 피해자’라 불리는 수용자 자녀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 위해 세움이 세워진 배경이다. 이경림 대표는 “사회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왜 범죄자 자녀를 도와야 하느냐’는 시각이 여전하다”며 “편견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인식을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찾멘 프로그램의 경우 대개 수용자가 출소하면 그해 말까지만 지원이 이뤄진다. 최윤주 세움 사업1부장은 “지원 아동 중엔 보호자가 출소하는 건 좋지만 찾멘 프로그램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돼 아쉬워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대표의 경우 아이들이 가족으로 느낄 만큼 놀라울 정도로 교감을 나눠주는 멘토”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한 대표는 아이들에게 ‘열쇠 삼촌’으로 불린다. 아이들의 닫혔던 마음 문을 열어주는 삼촌이자, 아이들 저마다 필요한 삶의 열쇠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삼촌이란 의미다. 수용자 자녀 대면을 위한 별도의 자원봉사자 교육을 이수한 기자도 이날 ‘미키 삼촌’이란 이름으로 모임에 참여했다.

모임은 올해의 멘토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쫑파티로 마련됐다. 맛있는 식사를 함께 나누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놀이 시간을 가진 참가자들은 함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저에게 세움은 등대 같아요. 캄캄할 때 빛이 돼줬죠. 전에는 별로 말이 없는 학생이었는데 이제는 발표도 잘하게 됐어요.”(윤현수·가명·10) “세움 선생님들, 열쇠 삼촌 만나면서 사람들이랑 지내는 게 쉬워졌어요. 나중에 저도 저 같은 상황에 있는 친구들에게 멘토가 돼주고 싶어요.”(김태민·가명·17)

3시간을 훌쩍 넘긴 파티는 겹겹이 쌓인 미소 위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채 마무리됐다. 친언니, 누나처럼 아이들을 챙기던 정다영 세움 간사는 “찾멘 끝나더라도 언제든 놀러 오면 맛난 식사를 책임지겠다”며 인사를 나눴다.

한 대표는 멘토로 만났던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선물했다는 책 한 권을 보여줬다. 책 표지엔 ‘열쇠 삼촌 지음’과 함께 그가 루틴처럼 차 안에서 듣던 ‘더 블레싱’이 제목으로 적혔다. 내용은 오랜 일기장 같은 자신의 이야기와 용기를 주는 기도제목, 기도제목에 맞춤옷처럼 덧입힌 성경 구절들이었다.

“얼마 전 한 친구에게 이 책을 줬어요. 우연히 책을 발견한 어머니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읽으셨대요. 타인도 우리 아이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과연 나는 이만큼 우리 아이를 사랑하고 있을까 싶으셨답니다. 더 감사한 건 저를 통해 하나님 믿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는 고백이었어요.”

135쪽짜리 책 중간엔 이런 고백이 있다. ‘재수할 때, 처음으로 꿈이 생겼지. 그 꿈은 ‘사랑하면서 생명 살리는 사람’이 되는 거였어. 그래서 스스로 오랜 시간 훈련한 게 ‘웃음’이었어. 나의 ‘웃음’에 사랑을 담고 싶었어. 삼촌에게 웃음은 나와 네게 건네는 사랑이야.’

함께하는 내내 한순간도 멈춤 없이 열쇠 삼촌의 얼굴에 머물렀던 웃음이 떠올랐다. 행복을 품고 희망으로 걸음을 내디딜 아이들에게 필요한 열쇠가 거기 있었다.

글·사진=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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