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의 이코노믹스] 문제는 부채위기…금리 급상승 막고 경기 연착륙시켜야
금융시장 변동성 커진 한국 경제
최근의 변동성 증가는 정부의 주식 공매도 금지 조치가 주된 원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변화가 아니라도 그동안의 미국 금리 인상이나 중국 성장률 둔화와 같은 대외적인 금융 및 실물 충격에 대해 한국 금융시장은 외국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실물 경제가 받는 충격도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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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리 추세에 부채 위기 우려
원유값 불안에 ‘엔저’ 충격 겹쳐
통화·재정정책 신중히 조합해
경기침체·금융부실 차단 필요
과다부채 점진적으로 낮추고
원·엔 환율 안정적으로 관리를
」
이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내년 성장률 전망에서도 잘 드러난다. 세계 경제는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데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하향 조정되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는 미국 고금리 장기화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 가능성이라는 복합충격에 노출되고 있다.
IMF, 한국 가계·기업부채 지적
한국 경제가 다른 나라보다 변동성과 위험도가 더 높아진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부채위기 가능성 때문이다. 부채위기는 고금리 지속이나 경기 경착륙 그리고 자산 버블이 붕괴될 경우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해 발생한다. 최근 IMF 아시아·태평양 국장도 한국 경제에서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과다함을 지적한 바 있다. 하버드대 케네스 로고프 교수 역시 ‘부채 수퍼사이클(debt supercycle)’에 들어갈 경우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저금리로 부동산가격이 상승할 때는 담보가치가 높아지면서 대출이 늘어나지만, 고금리로 부동산가격이 하락할 경우 담보가치 하락으로 부채축소 즉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부채위기가 발생하면서 경제가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저금리로 부동산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고 부동산 담보대출로 인한 가계부채가 많이 늘어났다. 2분기 가계신용은 1862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100%를 넘어서고 있다. 여기에 최근 대출 금리가 7% 선까지 높아지면서 연체율도 높아지고 있다.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부실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 줄여야
높은 대중국 수출의존도와 엔저도 한국경제의 불안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대중국 수출을 늘려서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해 왔다. 대중국 수출 비중은 26%까지 높아졌다가 최근 19%로 낮아졌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면서 중국 경제 성장률은 크게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중국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수출 또한 타격을 받으면서 경상수지가 악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일본 또한 30년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략적으로 엔화를 평가절하시키고 있다. 미국은 외환시장 개입으로 통화가치를 평가절하시키는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규제하고 있다. 일본은 이런 규제를 피해 미국이 금리를 높이는 시기에 저금리와 양적 완화로 엔화가치를 평가절하시키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외환시장 개입 없이 자국 내 통화정책으로 엔화가치를 떨어뜨려 디플레이션과 장기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그 결과 엔화 환율은 달러당 150엔을 넘어서면서 일본경제는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올해 2%의 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근린 궁핍화’, 한국에 악재
문제는 일본의 ‘근린 궁핍화’ 정책이 한국의 수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보더라도 2018년의 엔저는 반도체 특수로 큰 충격을 주지 않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엔저로 인해 원화 가치가 100엔당 900원 선 이하로 떨어져 한국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되면서 외환위기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국제유가 상승도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원유 가격이 지속해서 상승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수입물가를 높일 수 있다. 여기에 원유 수입금액 증가로 경상수지도 악화할 수 있으며, 이는 다시 환율을 높여 자본유출을 불러와 한국경제에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경기 경착륙하면 부채위기 악화
금융 시장 변동성을 줄이고 한국 경제의 불안 요인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고금리 장기화와 유가 상승의 복합충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먼저 부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금융당국은 대출 금리의 급격한 상승을 관리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가계부채를 줄이고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리를 높일 경우 부동산 구입용 가계부채는 줄어들지 모르지만, 서민금융이나 생계형 대출은 줄이기가 어렵다. 또한 추가적인 금리 인상은 경기침체 심화는 물론 대출 연체율을 높일 수 있다.
부채축소 즉 디레버리징을 점진적으로 시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줄이기 위해 대출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급격한 디레버리징은 부채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IMF 아태 국장도 부채축소를 천천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저소득층 서민을 위해 정책 서민금융을 확대하고 중소상공인의 대출기한을 연장해 디레버리징의 부작용을 줄일 필요도 있다.
경기를 연착륙시켜야 한다. 대부분의 부채위기는 경기가 경착륙하면서 발생한다. 작년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에 한국의 정책당국은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금리 인상과 과도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확대재정의 정책조합을 사용했다. 비록 재정 건전성은 악화하였지만 물가와 환율이 안정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반면 현재는 고금리 지속과 유가 상승의 대외적 충격에 대응해 통화 긴축과 재정 긴축의 정책조합을 사용하고 있다. 이 정책조합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며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심해지고 금융부실과 자본유출이 초래될 위험성이 있다. 미국 역시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현재 금리를 높이는 긴축 통화정책과 재정을 확대하는 정책조합을 선택해 경기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정책당국은 재정과 통화정책의 조합을 신중히 검토해 경기를 연착륙시켜 부채위기를 피하도록 해야 한다.
엔저 현상, 한국 서비스업에 충격
경상수지 악화를 막기 위해서 엔저를 경계하고 대중국 수출의존도도 줄여야 한다. 과거와 달리 일본 제조업의 해외생산 비중이 높아 엔저가 한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달러당 150엔을 넘어서는 엔저로 인해 일본의 수출은 이미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일본 기업들의 수익 또한 많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통화가치 절하가 수출증대와 무역수지 개선에 미치는 영향이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제이 커브 효과(J-curve effect)’까지 고려하면 엔저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비록 제조업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보다 줄었더라도 여행 등 서비스업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의 서비스업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내수시장이 위축될 수 있는 문제도 있다. 원·엔 환율은 이미 860원대까지 하락하고 있다. 외환 당국은 원·엔 환율이 최소한 900원대를 유지할 수 있도록 원화가치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대중국 수출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 정책당국은 수출기업을 독려해 새로운 수출시장을 개척하는 데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또한 국제 원유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무역수지 흑자를 통해 환율을 안정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 강세에도 영향을 받지만 한국의 무역수지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국제 원유가격이 지속해서 오를 경우에는 유류세 인하 폭을 늘리거나 혹은 연장해서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
미 금리인상 1~2년 뒤에 금융위기
한국 경제는 수출의존도가 높고 내수시장이 작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원유나 가스 등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고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의 비중이 크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대외적인 충격에 민감하다. 고유가는 경상수지를 악화시켜 자본유출에 따른 외환위기의 위험을 키우고, 고금리 장기화는 부동산 버블 붕괴로 디레버리징 과정에서 금융위기와 저성장을 초래할 수 있다.
금융위기는 대부분 미국이 금리를 높이고 난 후 1~2년 뒤에 발생한다. 금리 인상은 시차를 두고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는데, 시간이 갈수록 대출자의 이자 부담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국경제가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응하고, 고금리 장기화와 고유가의 복합충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책당국의 신중한 정책 선택이 필요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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