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우연히 음악이 만들어진다고?
20세기에 등장한 현대음악 장르 중에 ‘우연성의 음악’이 있다. 작곡가가 미리 만든 음악이 아니라 연주자에 대한 기본 지시 외의 음향·연주·행동 등 모든 게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불확정성 음악’이라고도 한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미국 출신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사진)였다. 그는 작곡가가 연주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고도 언제나 재생산이 가능한 음악을 가장 이상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창작자에게서 독립해 독자적인 길을 갈 수 있는 음악, 창작자의 품을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그는 우연의 요소를 도입했다.
존 케이지가 1951년 발표한 ‘상상적 풍경 제4번’이 있다. 이 작품의 연주(?)에는 12개의 라디오가 필요하다. 지휘자의 신호에 따라 연주자들이 라디오를 켜고 각기 다른 주파수에 바늘을 맞추면 라디오에서 뉴스에서부터 대담·드라마·클래식·팝·광고까지 온갖 소리가 흘러나온다.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연주자들은 음량을 크게 하기도 하고 작게 하기도 하며, 라디오를 껐다가 다시 켜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다양한 소음이 만들어진다.
이게 음악이라고? 그걸 어떻게 음악이라고 할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자. 우리 삶에서 우연에 입각하지 않은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가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우연 아닌가.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즉,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느 시기,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가 하는 것도 모두 우연이다. 그렇게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우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어쩌면 우연은 우리 삶을 한마디로 설명해주는 가장 확실한 단어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세상일이 온통 우연투성이일진대, 음악이라고 ‘우연히’ 만들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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