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첫 미군 대대장, 한국전 영웅…고 김영옥 대령 ‘백선엽 한미동맹상’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영웅인 재미동포 고(故) 김영옥 대령(1919~2005)이 ‘제11회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13일 수상했다. 국방부는 “고 김영옥 대령이 보여준 뛰어난 용맹과 애국심, 휴머니즘과 인간애는 오늘날까지도 양국 국민 모두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주관하고 중앙일보가 후원하는 이 상은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은 2013년에 만들어졌다. 한미 동맹의 의미를 되새기고 양국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미국인 1명을 매년 수상자로 선정한다.
이날 시상식은 서울에서 열린 한국·유엔군사령부 회원국 국방장관 환영 만찬의 행사로 열렸다. 수상자인 고 김영옥 대령의 유가족이 직접 참석하지 못해 김용환 김영옥평화센터 이사장이 대리 수상했다.
시상식에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감사장을, 박장희 중앙일보 대표이사가 한미동맹 메달을 각각 전달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단상에서 수상을 축하했다. 김용환 이사장은 고 김영옥 대령의 유족 측에게 감사장, 메달과 함께 중앙일보가 마련한 부상(3만 달러)을 전달할 예정이다.
고 김영옥 대령은 1919년 미국 LA의 애국지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김순권씨는 청과물 가게를 운영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대한인동지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1941년 미국 육군에 입대한 고 김영옥 대령은 능력을 인정받아 보병 장교로 진급했고, 하와이 출신의 일본계 2세대로 이뤄진 제100 보병대대의 소대장을 맡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프랑스 전선에서 무공을 세워 수훈십자장, 은성무공훈장, 동성무공훈장(이상 미국), 레지옹 도뇌르(프랑스), 동성무공훈장(이탈리아) 등을 수훈했다. 그는 전투에선 늘 제일 앞에서 이끌었고, 부대원을 누구보다 아끼는 리더십을 보였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전역한 고 김영옥 대령은 생계를 위해 세탁소를 열었다. 그러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재입대해 부모의 나라인 한국으로 갔다. 당시 그는 미군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대대장이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한동안 밀렸던 유엔군이 반격에 나설 때 가장 먼저 한탄강 이남 ‘캔자스 라인’(임진강~화천~양양)에 도달한 게 그의 부대였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는 아시아계 최초의 장군이 유력했지만, 한국군 육성을 돕기 위해 한직으로 여겨졌던 주한미군 군사고문단을 자처했다. 전쟁 부상으로 평생 몸이 불편했지만, 지역사회를 돕는 일을 쉬지 않았다. 500여 명의 전쟁고아를 돌봤고, 1972년 전역 후에는 LA에 한인건강정보센터·한미연합회·한미박물관 등을 세워 한인 사회에 기여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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