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공공건축, 신아키텍츠
Q : 프랑스에서 건축가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공공건축과 어떻게 다른가요
A : 한국 사회는 빠르게 성장하면서 짧은 시간에 많은 건물이 필요하던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특히 공공건축은 합리적인 가격과 관리하기 쉬운 데 포커스를 맞춰 기능적으로 설계된 게 대부분이죠. 가끔 우리는 공공건축을 ‘시설’이라 부르기도 해요. 정치인들은 선거 유세 때 “도서관 몇 개 이상 짓겠다”며 개수만 강조하지 퀄리티는 신경 쓰지 않죠. 한국 건축 신은 눈에 확 띄는 상업공간들이 건축을 선도한다면, 프랑스 건축 신은 여전히 도서관과 미술관 등 공공건축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Q : 공공건축이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이유는
A : 저희는 공간 경험이 한 사람의 인생에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고 믿어요. 국가가 제대로 된 공공건축을 만들겠다고 투자하지 않으면, 공간은 소비재로 전락해요. 많은 돈을 내야 하지만 좋은 공간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상황이 돼요. ‘펀그라운드 진접’을 만들면서 “이렇게 건축가의 역할이 큰지 몰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진접읍이 있는 남양주는 농업도시였다가 신도시가 많이 생기면서 인구 수가 확 늘어난 곳이거든요. 그에 비해 청소년 시설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잘 놀 수 있는 공간 혹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도 ‘나를 위한 공간이구나’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Q : 1층에는 청소년을 위한 이벤트들이 펼쳐지고, 올라갈수록 고요한 분위기로 구성돼 있습니다
A : 공공건축은 위압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 많아요. 펀그라운드 진접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광장 같은 공간이길 바랐어요. 청소년에게 보드나 자전거는 소중한 이동수단이잖아요. 그것을 자연스럽게 끌고 들어올 수 있는, 안팎이 연결된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반면 3층은 숲을 닮은 정적인 공간으로 구성했어요. 천창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고, 오롯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요. 스무 개의 실린더 공간의 높이와 소재가 각각 다른 이유는 아이들이 매일 다른 자리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진정한 자신을 찾고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요.
Q : 하나의 건축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쪼개져 있는 구성은 영유아를 위한 전시 〈아기 산책〉에서도 보였습니다
A : 한국은 영유아들이 자라날 때 경험보다 안전에 중심을 두죠. 영유아들은 대부분 아파트처럼 제한된 공간에 사는 경우가 많아서 스스로 다양한 공간 경험을 안전하게 탐색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요. 전시 〈아기 산책〉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는 지시공간이기보다 영유아가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서로 연결돼 있고 막혀 있는 전시장을 따라 걷다 보면 어두운 공간과 마주할 수 있어요. 어둠을 무섭게 표현하지 않고 아늑하게 느낄 수 있도록 카펫으로 벽을 마감했습니다.
Q : 동작구에 지은 ‘까망돌도서관’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A : 한국의 도서관들을 답사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바깥은 멀쩡해 보여도 안은 창고 같은 공간이 많더라고요. 제가 파리에서 경험했던 도서관은 공부하고, 책 읽지 않아도 이용자가 몇 시간 머무는 것만으로도 환기되는 공간이었거든요. 도서관의 핵심은 채광입니다. 까망돌도서관은 천창에서 자연광이 스며들고 루버를 통해 책 읽기에 적절한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했어요. 그 과정에서 온갖 곳에 자문을 구하고 스터디를 많이 했어요. 최적의 빛이 언제 들어오는지, 어떤 각도로 해야 하는지 수많은 테스트가 필요했거든요. 공공건축물을 지을 때는 제한과 규제가 많아요. 보수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유럽의 사례를 제안하면 “그건 유럽이잖아요”라는 말이 돌아올 때가 있어요. 과정은 지난하지만 좋은 공공건축물이 주변에 하나씩 생기면 ‘한국에도 이런 거 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를 보여줄 수가 있는 계기가 돼요. 눈에 보이는 사례가 있어야 설득하기 쉬우니까요. 작은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죠.
Q : 신아키텍츠가 꿈꾸는 미래
A :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작업을 이어오면서, 저희가 만든 공간을 경험한 아이들이 멋지게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공공건축의 힘과 공간적 가치를 함께 공감하고, 논의해 갈 때 좀 더 좋은 사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하나하나를 저희만의 속도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건축가 중에서도 함께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많거든요. 작은 시도들이 모였을 때 커다란 울림이 생길 수 있다고 믿어요.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