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튼氏 집안의 한반도 130년 [김선걸 칼럼]
그는 한국서 30여년 사역하는 동안 목포의 정명학교, 영흥학교와 광주의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등을 설립했다. 광주 최초의 병원인 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도 세웠다. 평생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을 양자와 양녀로 거둬들여 돌봤다.
그의 둘째 딸은 한국에서 만난 한 젊은 선교사와 결혼했다. 이 선교사 역시 대학을 갓 졸업한 22세인 1912년 한국에 파송됐다. 미국 조지아공대를 수석 졸업하고 굴지의 기업인 제네럴일렉트릭(GE)에 취업했지만 선교사의 소명을 안고 한국으로 발길을 돌린 젊은이였다. 이 부부는 일제에 항거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군산 만세시위를 지도했고 1919년 3·1 운동 직후에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한국민의 비폭력 저항정신을 세계에 알렸다. 전주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 교장으로 재직했지만 일제의 신사 참배 요구를 거부해 폐교됐다. 일제는 눈엣가시인 이 미국인 부부를 한국에서 강제 추방했다. 그러나 해방 후 부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6·25 전쟁 중 부산에서 피난민 구호 활동에 매진했다. 전후 대전대(현 한남대)를 비롯해 40여년간 군산·전주·목포 등에 여러 학교를 설립하며 교육에 헌신했다.
이 부부의 셋째 아들도 한국에서 3대째 선교사로 일했다. 6·25 전쟁 때는 미 해군 장교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전후에 전남의 섬과 산간벽지를 돌며 200곳이 넘는 교회를 개척했다. 허름한 행색에 ‘검정 고무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결혼해 5남 1녀를 뒀는데 아들 셋을 결핵으로 잃었다. 이후 전남 순천에 결핵 진료소와 요양원을 세워 결핵과 싸웠다. 부인은 남편 사후에도 35년간 결핵 치료에 헌신했다.
이 부부의 막내아들은 지금 한국에서 의사로 일한다. 바로 인요한 신촌세브란스 외국인 진료소장이다.
위에서 1895년에 온 선교사가 유진벨(1868~1925년), 딸이 샤롯벨(1899~1974년), 사위가 윌리엄 린튼(1891~1960년), 3대째 선교사인 셋째 아들이 휴 린튼(1926~1984년)이다. 인 소장의 형인 스티브 린튼 유진벨재단 회장은 북한 결핵 퇴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외에도 인 위원장의 외삼촌은 장진호 전투에 참여하는 등 가족 모두가 한국 역사의 길목마다 등장한다.
그를 만난 적은 없다.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된 후 뉴스에서 회자되길래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다.
기록을 통해 그의 가족을 알게 된 후 칼럼을 쓰려고 맘먹었다. 그런데 굳이 군더더기 해설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필자가 평가하고 재단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이 집안이 역사 속에 남긴 담담한 ‘팩트’만으로 이들을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한반도가 열강에 약탈당하던 야만의 시절, 한국과 함께한 가족이다. 도와준 제3자가 아니다. 병자, 빈자, 고아들과 밑바닥에서 4대를 뒹군 당사자다.
거창한 선교 활동보다 병원과 학교를 짓고 그냥 같이 살았다. 이 가족은 고관대작과 같은 호사를 한 번도 누리지 못한 것 같다. 대부분이 전라도 깡촌에서 살았다.
인 위원장이 지난 10월 한 집회를 갔더니 누군가 “한국×도 아니면서 여기가 어디라고”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이 땅에서 인 위원장에게 나가라고 소리칠 자격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의 조상 때문에 과대평가할 이유는 없다. 단지 이웃처럼 그의 말에 한 번 귀를 기울이는 건 어떤가.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4호 (2023.11.15~2023.11.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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