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감독의 12·12…"전두광, 악마로 그리고 싶진 않았다"
12.12 군사반란 다룬 첫 상업영화
“한남동 살던 고3 때 한밤중 총성…
역사의 패배자로 기록될 승리 그렸죠”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건, 12·12라는 하룻밤을 거치면서 전두광‧노태건이 이끄는 세력이 우리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악당들로 탄생했다는 거죠.”
영화 ‘서울의 봄’(22일 개봉)에서 대규모 상업 영화로는 처음 1979년 신군부 세력의 12·12 군사반란을 다룬 김성수(62) 감독의 말이다. 전작 ‘아수라’(2016)로 부패 정치판을 실감 나게 그린 그가 신작에선 육군사관학교 내 비밀조직 ‘하나회’ 출신들이 주축이 돼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을 불법 점령했던 쿠데타 현장으로 관객을 이끈다.
김 감독이 실제 사건에 정치적 해석을 보태, 등장인물은 가명을 썼다. 극 중 쿠데타를 이끈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이 1980년 8월 27일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되기까지 총 264일, 당시 세계 최장기 쿠데타의 시작점을, 반란군 대 진압군의 9시간 무력 공방에 담아냈다. 민머리로 변신한 황정민과 마지막까지 그에 맞선 진압군의 핵심 이태신(수도경비사령관) 역 정우성의 연기 대결도 볼거리다.
극 중 전두광은 최전방 병력까지 서울로 불러들이며 “오늘 밤은 여기가 최전선이야”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란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아군끼리 총구를 들이대, 자칫 서울 전체가 피바다가 될 뻔한 사건이다. 육사 11기 동기 노태건(박해준), 국방부 장관(김의성) 등 그를 따르는 장성들은 탐욕에 눈 먼 오합지졸로 묘사된다. 오랜 군부 독재에 길들여진 육군본부의 반격은 미흡하다. 청와대 목전 세종로까지 반란군 전차가 밀려드는 상황이 피 말리게 그려진다.
"12.12 군사반란, 264일 쿠데타의 압축"
전날 언론시사회에서 그는 12·12가 “인생의 오래된 숙제”로 남은 계기로, 19살이었던 그날 저녁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반란군의 신호탄이 된 납치극 총성을 생생히 들은 순간을 꼽았다. 30대 중반에야 진상을 알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허술한가, 당혹스러웠다”면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그들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을 수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그 사람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도 12·12 그날을 승리의 날로 기념하는 자리를 갖는 게 너무 싫었다”고 했다.
‘서울의 봄’은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가 먼저 연출을 제안했다. 이 제작사가 10·26 박정희 대통령 피격사건 이면을 담아 만든 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 엔딩에서 4시간여 뒤부터의 이야기다.
Q : -처음엔 고사했다고.
“어쨌든 반란군이 승리한 얘기다. 주변에서도 ‘너는 악당을 잘 그리잖나’라고 하더라. 악당을 영화에 다루다 보면 배우의 매력이 증폭되는 순간이 있다. 나쁜 사람이지만 좋아하게 되면 큰일이다 싶었다. 근데 안 하면 안 되겠더라.”
Q : -‘아수라’에서 비리 정치인을 연기한 황정민을 다시 캐스팅했는데.
“‘아수라’ 장례식 장면에서 그의 폭주를 찍을 때 리허설을 하는데 진짜 사람을 해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민씨의 빙의 능력은 다른 어떤 배우한테도 느낀 적이 없다.”
Q : -전두광 외모는 어떻게 만들었나.
“가발을 6개나 만들었다. 매 촬영 (민머리) 분장에 4시간, 나중에는 줄어든 게 3시간 반이었다. 정민씨가 ‘빨리하지 말고 완벽하게 하라’고 하더라. 철모를 쓸 때는 처음엔 가발을 안 썼는데 ‘발가벗고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순식간에 자기 배역으로 달려 들어갈 수 있는 황정민 같은 배우도 그럴 때가 있더라. 결국 다시 분장하고 나왔다.”
황정민 "전두광, 틀린 것 알지만…움찔"
황정민 역시 언론시사회 직후 전두광을 “자기가 틀렸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자신이 지도자고 애들(추종자)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고, 그런 순간 움찔한 마음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전두광이 화장실에서 기괴하게 웃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촬영 내내 이견이 많아 마지막에 가서 찍었다. 황정민과 김 감독이 3시간 마주 앉아 고민하다가 지금의 톤으로 정하고 촬영은 한 시간 만에 마쳤다.
감독 "하나회 행태, 배우들에 늑대 무리 주문"
이태신 역은 김 감독과 청춘영화 ‘비트’(1997), ‘무사’(2001), ‘아수라’ 등을 함께해온 정우성이 맡았다. “TV 드라마에선 강직하고 불같은, 전두광보다 더 불같은 분인데 지금 시대에 원하는 리더는 마초보단 지조 있는 선비 같은, 점잖고 자기 자리를 결코 떠나지 않는 사람이라 봤다”는 그는 “우성씨와 사적으로 친한데 그런 모습이 있다”고 말했다.
전작 ‘아수라’가 정치계에서 뒤늦게 회자된 것에 대해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한 김 감독은 그럼에도 “영화는 만들고 나면 감독 손을 떠난다”고 했다. “'서울의 봄'이 해피엔딩은 아니어서 영화를 보고 나면 화가 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젊은 관객들이 많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태진아 "아내 옥경이 5년 전부터 치매…아들 이루가 대소변 받아내" | 중앙일보
- “평생 날 못 잊게 하겠다” 전 남친의 충격적인 유서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 중앙일보
- "이겼다" 구광모 만세…전설의 롤렉스·아와모리 소주 누구 품에 | 중앙일보
- 부모보다 첫경험 늦다고? Z세대가 섹스 대신 택한 것 | 중앙일보
- 서정희, 연하 건축가와 재혼 전제 열애…암투병때 간병한 연인 | 중앙일보
- 수능도 잊었다…유광점퍼 입고 LG우승 '직관'한 일타강사 누구 | 중앙일보
- '응팔 커플' 류준열-혜리, 공개 연애 7년 만에 결별 | 중앙일보
- 마약 딱 자른 GD "전신 제모 아니다, 어눌한 말투 신중하려고" | 중앙일보
- 전 직원 여성만 뽑았다…34세에 1조 쥐고 물러나는 '걸 보스' | 중앙일보
- 창문 깼는데 하필…'바이든 손녀 경호팀' 차량 털다 총알 세례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