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창살 속 수능 본다…푸른 수형복의 소년수들 막판 열공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3일 앞둔 13일 서울 남부교도소. 세 개의 나무 창살 틈으로 푸른 수형복을 입은 소년수들이 정신없이 모의고사 시험지를 넘겨보는 모습이 보였다. 책상 위에는 풀이가 빼곡히 적힌 EBS 수능특강 수학 교재가 펼쳐져 있었다. 영어 모의고사 시험지에는 빨간색 동그라미가 가득했다.
이날은 지난 두 달간 소년수들에게 수능 영어를 가르친 연세대 건축공학과 학생 정명주(20)씨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정씨는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겁먹지 말고 시험을 망쳐도 버틴다는 마음으로 하라”며 “수능 잘 보고 나중에 찾아오라”고 격려했다. 10명의 소년수가 박수를 쳤다. 몇몇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교도소 안 학교에서 '첫 수능'
이곳은 서울 남부교도소에 마련된 '만델라 소년학교'다. 올해 3월 처음 문을 연 이 곳은 법무부의 '소년범죄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소년수의 학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만델라 소년학교 소년수 10명은 올해 수능에 도전할 예정이다. 과거에도 수형자가 교도소에서 수능을 치른 적은 있지만, 교도소 내에시험장까지 설치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델라 소년학교 교장을 맡은 김종한 남부교도소 사회복귀과장은 “이전에는 교도소에 감독관이 한두명 와서 시험을 치렀지만 이번처럼 공부를 가르치고 시험장을 마련한 것은 최초”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교도소 내 시험장을 설치하고 감독관 및 관리 요원을 파견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만델라 소년학교의 의미 있는 첫걸음을 응원하기 위해 수능 응시 수수료 전액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400만원 상당의 수능 교재 등은 남부교도소 교정협의회가 지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곳 뿐 아니라 올해 전국에서 수형자 20여명이 수능을 치른다. 소년수 뿐 아니라 독학으로 수능을 준비한 성인 수형자를 포함한 수치다.
사복 교도관이 교사로…대학 진학도 목표
남부교도소 1층 학교로 통하는 철문이 열리면 넬슨 만델라의 명언이 맞이한다. 교실과 자습실, 상담실을 갖춘 학교는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교실 문마다 굵은 창살이 달려있다. 이곳에선 교원자격증이 있는 교정공무원 6명이 교사로 근무한다. 교사가 된 교도관들은 소년수들에게 권위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근무복 대신 사복을 입고 수업을 한다. 특별히 수능 대비를 위해 연세대 재학생 4명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에선 중·고등학생이었을 14~17세의 소년수 36명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수업을 듣는다. 지난 8월에는 고졸 검정고시에 28명이 응시해 27명이 합격했다. 김종한 교장은 “새벽 1시까지 영어 단어를 외울 정도로 학구열이 뜨겁다”고 말했다.
지난 8개월간 소년수들의 실력도 훌쩍 올랐다. 영어를 가르치는 임진호(29) 교도는 “알파벳 b와 d도 구분하지 못했던 소년수가 단어를 스스로 외우고 문장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모의고사에서 영어 성적 2등급을 받은 소년수도 있다고 한다. 수학 담당 김병곤(34) 교도는 “수학은 나누기도 못할 정도였다. 이제는 검정고시에 합격할 정도는 되는 수준”이라고 했다.
10명 중 4명은 내년 출소 예정이다. 출소 후 대학 진학을 꿈꾸는 소년수들도 있다. 정명주씨는 “한 학생은 물리학과나 기계공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해서 상담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소방관이나 수의사를 꿈꾸는 소년수도 있다고 한다.
학업으로 교화될까…“재범 막는 것이 진정한 반성”
만델라 소년학교에선 교과목 외에 성교육과 인성 교육, 반성문 쓰기 시간도 가진다. 임진호 교도는 “피해자에게 반성문을 쓰라 했더니 처음에는 거부감을 보였지만, 공부를 하며 스스로에 대한 사과, 부모님에 대한 사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를 단계적으로 쓰도록 했다”고 말했다.
김종한 교장은 “지난 33년간 교도관을 하면서 소년수들이 성인이 된 후 다시 교도소에 오는 것을 자주 봤다. 이 아이들은 범죄의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갈 수 있다면 그것에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윤서·최민지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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