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마을, 손부채 해주던 아이 눈빛을 잊지 못합니다

임경욱 2023. 11. 1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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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해외봉사] 봉사는 희망의 씨앗을 나눠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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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욱 기자]

오랜 직장에서 퇴직한 뒤 저는 코이카(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지원했습니다(관련 기사: 퇴직 후 해외에서 살아보기, 이렇게 이뤘습니다 https://omn.kr/25ecz).

지난주에는 코이카 필리핀사무소 주관으로 마닐라에서 진행하는 안전교육과 협력활동에 다녀왔습니다. 안전교육은 상하반기로 나눠 1년에 두 번씩 실시하는 교육으로 몇 차례 공지를 받아 잘 알고 있는 사항이었으나, 협력활동이란 것은 다소 생소했습니다.

11월 9일 첫째 날 실시한 안전교육은 KOICA 필리핀사무소 전 직원과 다자협력전문가(KMCO), 일반봉사단원 등 5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인 곳에서 진행됐습니다. 우리는 현장에 파견되고 이미 2개월이 조금 지난 시기라 궁금한 것도 많고, 할 얘기도 많아 정작 안전교육보다는 현장활동 중에 느꼈던 부족한 사항이나 에피소드를 공유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대부분의 단원이 문명의 이기가 미치지 않는 오지에서 활동 중인지라 그들이 쏟아놓는 애로와 고충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교육효과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전기가 며칠씩 들어오지 않아 부패할 수 있는 음식물은 보관이 어렵다거나, 통신이 두절되고 신호가 잡히지 않아 외부와 교신이 어렵다는 점, 몸이 아파 병원에서 처방을 받았는데 정작 처방받은 약을 구입할 수 있는 약국이 없었다는 경험담을 들었을 때는 그 고충이 짐작됐습니다. 난 그래도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 안전교육 후 단체사진 한 컷 KOICA 필리핀사무소 전 직원과 봉사단원들이 교육을 마치고 한자리에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 임경욱
  
특히나 식료품을 마음대로 구입할 곳이 없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원은 매일 감자와 계란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상황이었다고 하니, 그 생활의 곤란함에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더욱이 활동하는 학교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없어 날마다 도시락을 싸 들고 학교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니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원 각자가 처한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묵묵히 헌신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그들은 모두 열대우림에서 극한의 한계를 견뎌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촘촘히 모여 보람이라는 꽃으로 피어날 것을 알기에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은 참으로 소중하며, 그 열매는 그 무엇보다도 달콤할 것입니다.

둘째 날인 11월 10일에는 협력활동이 잡혀있습니다. 오전에는 KOICA 단원 13명, USPC(미국평화봉사단) 단원 8명, JICA(일본국제협력기구) 단원 5명이 모여 소속기관과 함께 자기소개를 하고, 분야별 활동내용 발표 및 네트워킹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가와 단체별로 활동분야나 활동범위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봉사자라는 존엄함에 얽혀 같은 길을 가는 동행이라는 생각에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마을 입구에서 우리 일행을 환영해 주는 주민들
ⓒ 임경욱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밴에 나눠타고 필리핀 케손주(Quezon)시에 있는 Sitio Bakal이라는 마을로 이동했습니다.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인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변변한 상수도 시설도 없는 빈민지역입니다. 그런데도 집집마다 아이들이 올망졸망 자라고 있어 가난을 몸으로 체득하며 삽니다. 마치 1970년대 우리가 그랬듯이 말이지요.

우리가 마을 어귀에 도착하자 이미 아이들과 마을주민들이 공터에 모여 더운 줄도 모른 채 환한 표정으로 일행을 환영해 줍니다. 우리 단원들은 손에 손에 푸드백을 들고 아이들을 따라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을 방문했습니다.

뭘 얼마나 많이 담았는지 푸드백(food bag, 식료품이 담긴 가방)이 너무 무겁고 집은 멀어 가다가 몇 번을 쉬었습니다. 대부분의 집은 벽을 나무로 얼기설기 엮거나 시멘트 블록으로 쌓아 겨우 칸막이만 한 곳에 지붕은 나뭇잎이거나, 억새 말린 것, 그렇지 않으면 양철을 얹었습니다.

전통적인 농촌마을답게 가족은 조부모, 부모, 아이들, 이렇게 3대가 모여 삽니다. 빈한하고 다소 꼬질꼬질해 보이지만, 한없이 순박하고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방문한 집마다 가족들이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고 기꺼이 사진도 함께 찍어줍니다. 내 손을 꼭 잡고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하는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필리핀을 지탱하는 민초들일 것입니다. 
 
 우리 단원들과 아이들이 팀을 꾸려 레크레이션을 하는 모습
ⓒ 임경욱
   
우리는 다시 아이들과 마을 공회당에 모여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아이들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우리에게 먼저 다가옵니다. 더워서 땀을 흘리는 나에게 손부채를 해주며 이야기를 붙여오는 아이의 눈이 한없이 맑아보여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이들이 태어난 나라, 살아가는 환경이 열악할 뿐이지 이들은 모두 착하디착한 천사들입니다.

우리 단원들은 팀을 짜 아이들과 레크리에이션을 하는 것으로 모든 행사를 마치고, 확신할 수 없는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왔습니다. 다소 지치고 힘든 발걸음을 아이들이 동구 밖까지 함께 해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우리의 작은 손길이 희망의 씨앗이 되길 돌아오는 길에 소망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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