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생산직부터 '주 52시간' 틀 깬다
[한국경제TV 전민정 기자·김채영 기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현행 1주 외에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연장근로를 운영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선택지를 부여하면서….][백남수/ 성동구 : 69시간이 좀 많은 것 같긴 합니다. 지금 (주 52시간제는) 괜찮은 것 같아요.][이귀옥/ 영등포구 : 실제로 52시간이라고 해도 그게 현실적으로 잘 안 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 사정에 맞춰서….]
<앵커>
정부가 지난 3월 '주 최대 69시간' 논란으로 논의가 중단된 근로시간 개편과 관련해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한 새로운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놨습니다.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되, 제조업과 건설업, 연구개발 직종 등 연장 근로가 필요한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쉴 수 있도록 근로시간을 유연화해주자는 것이 핵심인데요.
주52시간제 개편은 다시 시동이 걸렸지만, 노사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어 시행까지는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됩니다.
자세한 내용 전민정 세종주재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전 기자, 먼저 국민 6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궁금한데요. 어떻게 나왔나요?
<기자>
우선 현재 주52시간제에 대해선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장시간 근로 해소에 도움이 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최근 6개월간 1주 12시간 이상의 연장근로가 발생했는지를 묻는 질문엔 근로자의 27%가 발생한다고 답했고, '현행 근로시간 규정 탓에 어려움 겪었다'고 응답한 사업주도 14.5%에 그쳤습니다.
대부분의 사업장이 1주 52시간제로 근로시간 문제를 해소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1주에서 월 단위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선, 국민의 46.4%, 근로자 41.4%, 사업주 38.2%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동의한다'는 답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지만, 과반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일부 업종'에서만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는 의견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배 가까이 더 많았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해보자면, 국민들은 현재의 주52시간제가 안착되고 있으며, 올 초 정부가 발표한 대로 모든 업종에 대한 일률적인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는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앵커>
정부가 올 초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안이 주 최대 근무 가능 시간이 69시간까지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보류되지 않았습니까. 결국 설문조사에서도 이러한 여론이 반영된 셈이네요. 정부의 새로운 근로시간 개편 방향도 설문조사 결과 대로 가는 건가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앞서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셨다시피 국민들은 모든 업종에 대한 근로시간 유연화를 원한 건 아니었는데요. 정부는 이러한 국민의 의견을 적극 수용했습니다.
즉, 주52시간제도는 유지하되,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한 일부 업종과 직종만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 중 선택할 수 있도록 선별적으로 규제를 풀어주기로 한 겁니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발표문,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 : 설문조사 결과를 전폭적으로 수용해 주 52시간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또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두가 공감하고, 현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연장근로 단위 확대가 필요한 업종으로는 제조업과 건설업, 직종의 경우 설치·정비·생산직, 보건·의료직, 연구·공학 기술직 등이 꼽혔는데요.
일단 이들 업종이 우선 개편 대상이 돼 노사가 원하는 경우 '주 52시간' 틀에서 벗어나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앞서 69시간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의견을 밝힌 만큼 '60시간 이내' 한도로 완화하는 안이 검토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정부는 아울러 지난 개편안이 장시간 근로와 근로자 건강권에 대한 우려를 불러온 만큼 주당 상한 근로시간 설정, 근로일 간 최소 휴식 도입 등의 안전장치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앵커>
사실 그동안 일시적으로 일이 몰려드는 업종에선 연장근로 시간 단위를 확대해 달라는 요구가 많지 않았습니까. 특히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계는 숨통이 트일 것 같습니다.
<기자>
맞습니다. 그동안 스타트업과 IT업종, 조선업 등 수주산업, 바이오 연구직 등은 바쁠 때 몰아서 일하고, 한가할 때 쉬는 방식의 '근로시간제 유연화'에 대한 요구가 거셌었는데요.
실제 현장에선 주52시간 근로시간 제약으로 인해 수주나 수출 기회를 포기하거나 사업 확장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업체에선 서류상 주52시간을 지킨 것처럼 표기해놓고 실제로는 그 이상의 근로를 하는 법·규정 위반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근로자들도 추가 근로에 대해 수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바쁠 때는 주52시간 이상의 탄력적 근무를 선호하기도 하는데요.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전진 / 브릴스(IT 중소기업) 대표 : 중소기업 특성상 인력 구하기도 어렵고 (1분27초) 제조나 R&D쪽은 엔지니어로서의 역할이 있으므로 그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기 어렵거든요. (주 60시간 정도 연장근로를 하면) 1년 기준으로 10년 근무하신 분은 2,500만원에서 3천만원 더 많이 받아가요. 근로자 입장에서도 가계에 도움도 되고….]
다만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주 단위 연장근로 칸막이로 인해 겪는 어려움은 업종·직종에 관계없이 거래포기·품질저하·법위반이라는 기업의 성장과 생존에 치명적인 위험요소"라며 선별적인 근로시간 유연화 적용에는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앵커>
올해 3월 주69시간 논란 이후 개선안 발표가 꽤 늦어졌는데요. 그럼에도 여전히 근로시간 개편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이뤄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앞으로도 난관이 예상되는데요.
<앵커>
네 그렇습니다.
근로시간 제도 개선 업종과 직종을 세부적으로 선정하기 위해서는 업종·직종별 근로시간과 근로형태에 대한 객관적인 실증 데이터, 추가 실태조사가 필요한데요.
이러한 개편안 세부 방안은 노사정 대화를 통해 구체화하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입니다.
이제 관건은 사회적 합의 인데요.
다행히 오늘 대통령실이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를 요청했고, 한국노총은 대통령 직속 노사정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 중단을 선언한 지 5개월 만에 대통령실의 복귀 요청을 수용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 논의도 일단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노조 회계공시, 노란봉투법 등으로 노정관계가 격화된 상황에서 예외 업종 확대와 건강권 보장방안 마련을 위한 노사정 협의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부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 발표를 기점으로 근로시간 개편 논의와 노동개혁 정책에 다시 속도를 낸다는 구상인데요.
악화된 노정관계에 내년 4월 총선 일정까지 고려하면 구체적인 개편안을 내놓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지금까지 정부세종청사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전민정 기자·김채영 기자 jmj@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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